아파트 담보대출 부채상환, 가정경제에 큰 부담
집은 비용이 워낙 커서 대다수 가정경제를 멍들게 하는 주범이다. 사진은 분양사무실에 몰린 청약 대기자들. <경향신문>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을 돌아 큰 길로 접어들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가 목적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큰 길에서 작은 길로 접어드는 운전자가 경적을 울렸다. 남자는 깜짝 놀라 비켜 섰다. 그 사이 차는 지나갔고, 남자가 차를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저런 때는 경적소리가 듣기 좋은 음악이면 좋겠다.”
자동차회사 임원을 만나 이런 얘기를 했는데, 그분은 관심이 없었다. 경적소리도 법으로 규정하는 거라는 설명만 들었다. 선택사항으로 추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설계가 조금만 바뀌어도 안전시험 등 큰 비용이 들어 곤란하다고 한다.
‘나라면 썬루프보다 음악벨을 선택하겠는데….’
값싸고 오래 가면 좋던 시대는 지났다. 멋지고 편하고 맘에 들어야 한다. 당연히 개성이 중시된다. 어떤 경우엔 단 하나뿐인 물건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남들을 놀라게 하는 불법경적이 아닌,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경적은 시대 흐름에 맞는 적절한 상품이 아닐까.
재무설계 첫 번째 원칙, 남 따라 하지 않는 나만의 계획 상품과 서비스의 이런 변화는 재무설계 원칙과 통한다. 남들 다 한다거나 수익률 좋다고 따라 하는 식의 재무관리는 곤란하다. 남들에게 맞는 것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게 딱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재무설계의 첫 번째 원칙이다.
집은 비용이 워낙 커서 대다수 가정경제를 멍들게 하는 주범이다. 그런데 그 집은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신의 재무형편과 선호도에 따라 선택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최악인 경우는 그럴 듯한 정보에 혹해 자신의 조건과 미래를 따져보지 않고 따라 하는 것이다. 김태환씨(가명·38)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김씨에게는 두 자녀가 있고 부인이 집 근처 회사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였다. 그런데 회사 동료의 권유로 서울 인근 지하철역 예정지역에 있는 아파트를 샀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많이 오를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겨우 매입 부대비용을 보상받을 정도만 올랐을 뿐이다. 김씨에게 그런 정보가 왔다는 건 이미 그때 그런 정보가 가격에 반영된 것이지 않았을까. 김씨가 새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면서 가정경제에도 영향이 많았다. 추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2억500만 원을 빌렸는데, 그 가운데 2700만 원은 처가에서 무이자로 빌린 것이지만, 나머지 1억7800만 원은 새 아파트를 담보로 연리 5.7%로 은행에서 빌렸다. 원금은 갚지 못하고 이자만 매달 84만5500원씩 부담하고 있다. 거치기간이 2년 남았는데, 그 후엔 원금까지 갚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자만 갚기도 버거운데, 2년 후 원금까지 갚는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다.
“결국 우리가 은행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거 아닌가요?”
지난 1년 동안 이자만 꼬박꼬박 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38평형으로 이사하면서 그동안 월 50만 원씩 납입하던 장기주택마련저축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됐다. 그래도 앞서 공제혜택을 본 금액을 환불하지 않기 위한 5년 기한을 채우기 위해 당분간 더 불입하지는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5년이 지나면 해약해 대출상환에 활용하기로 했다. 이런 금전손해보다 더 큰 어려움은 직장이 멀어지면서 부인이 직장을 그만둔 것이었다. 외벌이로 바뀌면서 김씨 가정경제는 많이 어려워졌다.
부채상환부담 가정경제 악순환의 고리 김씨 소득은 세후 월 412만 원이다. 그런데 대출이자가 84만6000원이다. 소득의 무려 20%가 넘는 액수다. 이자부담이 이렇게 높다 보니 당연히 비슷한 소득대의 다른 가정에 비해 보험료나 저축 비중은 상당히 낮다.
주택대출 원리금이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릴 경우 다른 재무설계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진다. <경향신문>
포도에셋 재무상담을 받은 고객 가운데 김씨와 비슷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가정과 비교해보았다. 아파트 값이 3억~5억 원 사이이면서 아파트 담보대출 잔액이 남은 가정들(B그룹)과 비교해봐도 역시 김씨 가정의 재무상태는 좋지 않다. B그룹의 평균소득은 월 548만 원으로 김씨보다 훨씬 높다. 소득대비 저축률은 비슷하지만, 부채상환비율은 김씨가 훨씬 높다. 게다가 김씨는 현재 이자만 갚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에는 주택 소유여부나 대출과 상관없이 소득만 B그룹과 비슷한 500만 원대 가정들(A그룹)과 비교해보았다. A그룹의 저축률은 20%가 넘고, 부채상환율은 7.6%밖에 되지 않았다. 집값 상승과 과도한 아파트 담보대출이 가정경제를 힘들게 한다는 점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과부하를 자산가치 상승이 보전해주었는데, 만약 거품이 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담보대출 유무와 상관없이 소득대별로 저축, 보험료, 부채상환액 비율을 비교해보았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저축액은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높아지고 소득대비 저축률도 높아진다. 반대로 보험료와 부채상환액은 소득이 많을수록 다소 많아지지만, 소득대비 비율은 소득이 높을수록 오히려 낮아진다. 빈곤이 악순환 하는 부채상환 비용임을 알 수 있다.
소득이 많을수록 대출 잔액은 많아지지만 소득대비 비율은 월평균 소득의 9배로 비슷하다. 순자산가치는 조금 다르다. 소득이 많아질수록 소득대비 순자산가치의 배율은 높아진다. 300만 원대 소득인 가정은 소득대비 32배의 순자산을 갖고 있지만, 700만 원대 가정은 소득대비 41배의 순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큰 재무변동 전에 재무상담 필요 김씨는 아파트를 산 다음 재무상담을 신청했다.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바뀌고, 대출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대책을 찾은 것이다. 물론 그 상태에서도 상황을 더 나쁘게 하지 않기 위해 재무상담은 필요하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것은 이렇게 한 가정의 재무상태를 크게 뒤흔들 정도의 재무결정을 할 때에는 사전에 재무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게 좋다.
1년 전 40대 초반 공기업 오모 부장의 말이 생각난다.
“집 사기 전에 상담받았어야 했는데…”
회사 일이 바빠 상담을 계속 미루다 결국 아파트를 사고 난 다음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대출 원리금이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리니 다른 중장기 설계가 끼어들 자리가 없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지나치게 큰 돈이 묶이고 대출상환 부담이 커지면 정말 해야 할 필요자금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자녀교육비와 노후는 물론 각자 개성에 맞는 돈 쓰임새 계획이 있을 텐데 말이다.
김씨 가정은 위에서 말한 장기주택마련저축을 중지하면서 생긴 지출여력 50만 원과 전부터 잉여자금으로 통장에 쌓이던 자금으로 교육비와 노후를 대비한 자금을 설계했다. 먼저 두 부부의 보험이 보장기간이 65세까지인 부실한 것들이었다. 기존 보험에 월 15만 원을 추가해 보험의 보장내역과 보장기간(80세)을 늘렸다.
또한 교육자금 설계를 하면서 소득공제를 볼 수 있도록 월 20만 원씩은 세제적격연금펀드에 가입했고, 월 30만 원씩은 소득공제는 되지 않지만 받을 때 비과세되는 비적격연금 상품에 가입했다.
이광구〈포도에셋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