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쓸지 지출항목 정하고 사후에 낭비요소 점검하는 습관 갖도록
"다녀왔습니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서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아내와 아이들이 현관에 나와 아빠를 반긴다. 그런데 오늘은 막내 보리가 안 보인다. ‘어디 갔나?’ 그런데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 않은가.
“어! 보리 공주는 인사 안 해?”
조금은 장난기 있는 질책에 보리는 몸을 꼬며 엉뚱한 말을 한다. 사실은 텔레비전 보느라 귀찮아서 인사하러 안 나온 거면서 말이다.
“아빠가 약속 안 지켜서 인사 안 하는 거야.”
그래도 아빠는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어! 무슨 약속?”
“시험점수 평균 5점 이상 오르면 1만 원 준다고 했잖아?”
보리는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말한 걸 가지고 약속이라고 우긴다. 이 대목에서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보리야, 아빠는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 현관 신발정리하는 거 잘하라고 했지. 그리고 여기 네 가방 좀 봐. 여기 놔두면 지나가다가 발에 채어 안 좋잖아. 제자리다 갖다 놔야지~.”
그제야 일어나 가방을 옮기는데,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싱크대 옆에 둔다. 거기가 ‘제자리’라고 우기면서.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필요가 없다. 갈수록 사회에 나와서도 공부를 평생 해야 하는데, 계속 부모가 관리해 줄 수 없다.
그러나 부모가 정말 신경써야 할 대목은 올바른 생활자세다. 신발 가지런히 놓기, 가방 제자리에 놓기, 이 닦고 자기, 책상 정리하기, 이불 개기 등. 이건 같이 사는 사람들(어릴 때는 가족)을 존중하는 기본 질서이기도 하다. 공부는 좀 못 해도 생활자세가 올바른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생활자세가 올바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공부도 사실 더 잘 한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건 올바른 생활자세 기말시험이 오늘 끝난 온달이는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다. 오늘은 또 몇 명이나 죽였냐고 말을 걸어본다. 온달이는 대답을 건성으로 하고 게임에 집중한다.
“온달, 의자를 당겨 앉고 허리를 펴고 해야지~.”
이런 정도 요구라면 온달은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 게임을 하지 말라는 요구만 아니면 부딪칠 일이 없다. 그러면서 하나 더 요구한다.
“온달, 책상 정돈하고 하면 더 재밌을 텐데~.”
자녀에게 스스로 용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좋다.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 놀기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가장 믿고 따르는 엄마랑 놀면서, 그리고 가끔 혼내기도 해서 엄마랑 노는 맛이 다른 아빠랑도 놀면서, 나아가 할머니·할아버지의 배려와 귀여움도 받으면서, 아이는 자기 중심의 놀이와 생활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런 관계는 친척, 이웃, 친구 등으로 확대된다. ‘나’를 해치지 않고 존중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녀가 어릴 때 엄마·아빠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은 요즘 세태는 문제가 있다. 한 고객은 아이가 어릴 적에 늘 밤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하루는 출근길에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빠, 우리집에 자주 놀러 와라.”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부모와 떨어지거나 또는 아빠랑 떨어져서 조기유학을 가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의 인격형성 대안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 나리는 이번 2학기를 필리핀에서 보냈다. 석 달 동안 필리핀에서 보내는데 공식 경비는 330만 원이 들었다. 마닐라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포함한 필리핀 실상을 체험하고 다스마란 도시로 옮겨 어학연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민다나오에서 국제평화단체들이 주관하는 평화프로그램을 체험했다.
국제화시대에 맞게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 체험을 시켜보자는 학교 측 의도였다. 영어연수도 상대적으로 값싸게 받고,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평화체험도 주요 행사였다. 아이들에게는 민다나오의 자연상태도 감동이었고, 원주민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는 모습이 마음 속에 깊이 와닿았다고 한다. 문화다양성이라는 말도 배우고 왔다.
나리는 공식일정이 끝나고 바기오에 있는 친구 집에 더 머물렀다. 처음 석 달 동안 용돈으로 25만 원을 줬다. 바기오에 더 머물겠다고 해서 20만 원을 더 보냈다. 나리는 평소 한국에서 쓰던 것에 비해 훨씬 많이 쓴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 더 머물지 석 달 더 머물지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때 이런 메일을 보냈다.
‘나리야, 이 정도 투자는 괜찮아. 근데, 그동안 돈을 어디에 썼고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쓸 건지를 알아야 아빠가 대비하지 않겠니?’
그러면서 그동안 쓴 것을 정리해 보라고 했다. 다음날 엑셀파일과 함께 이메일이 도착했다. ‘아빠, 나 정말 당혹스러워. 요새 느끼는 건데, 엄마 아빠는 나한테만 너무 투자를 많이 했어. 사실 투자할 가치는 나보다 온달이가 더 많을 텐데 말이야. 아빠, 이렇게 투자했는데 투자가치 없으면 어떻게 해? 아빠의 투자솜씨를 믿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열심히 영수증 정리하고, 제법 반성하고 고마워 하는 분위기였다. 돈 액수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뜻에서 이렇게 답신을 했다.
‘나리야, 이런 말이 있어. 부모에게 전화하는 것보다 편지 쓰는 게 더 효도다. 편지 쓰는 게 전화보다 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맘도 더 깊어야 하는 거기 때문이지. 돈은 어떨까? 어떻게 보면 돈 드리는 게 가장 쉬운 효도지. 부모 입장에서도 가장 감동이 적은 게 돈일 수 있지. 가장 좋은 건 전화 자주 하고 가끔 편지 쓰고, 필요한 만큼 용돈도 드리는 거지. 물론 공손한 맘이 전제되어야 하는 건 필수고.’
용돈 예산정하기와 아낄 수 있었나 점검하기 이번 기회에 나리가 용돈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을 스스로 느낀 건 큰 수확이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게 아닌지라 당연히 오차가 있다. 정리한 시점까지 쓴 돈이 41만 원인데, 행방불명(?) 된 돈이 6만 원이나 된다. 많이 썼다고 미안해 하는 나리에게 한 가지 더 주문했다.
‘나리야, 앞으로는 돈 들어갈 대목을 미리 정하고, 용돈정리를 한 다음에 아낄 수 있었던 건 뭐였는지를 점검해 봐라.’
이번 기회에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게 됐고, 앞으로 큰돈을 만질 때는 ‘여기다 이 정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미리 하고 절약해서 쓸게’ 하는 답신이 왔다. 이번 필리핀 체험은 나리에게 용돈관리 요령을 깨닫게 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자녀 둘인 30대 중반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 대학학자금까지 다 대주고, 결혼할 때 작은 아파트라도 마련해 주고 싶다고 했다. 노후자금을 희생하거나 부부 둘 다 앞으로 20년 이상 경제활동을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이런 걸 수치로 확인해 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아이의 생활자세, 자립심, 돈 관리능력 등은 별개 문제다. 이런 주제를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되겠지’ 식으로 가볍게 처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광구〈포도에셋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