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래
다가올 제4의 물결은 ‘부의 대이동’
엘빈 토플러 지음, 김증웅 옮김, 청림출판, 1만9800원.
왜 과거에 비해 물질은 풍요로운데 마음은 더 공허해지는 걸까. 5분 후에 일어날 일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초고속 변화의 시대에 미래학자의 예단은 신뢰할 만한가.
하지만 그 저자가 앨빈 토플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 20일 국내 발간된 ‘부의 미래’는 출간 한 달 전에 사전주문 및 예약판매 4만 부를 돌파하는 등 돌풍을 예고했다.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계에선 이례적인 사건이다. ‘미래쇼크’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 베스트셀러로 전 세계 지식인 독자층을 사로잡았던 그가 1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어서 앨빈 토플러가 제시할 ‘제4의 물결’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부의 미래’는 제목 그대로 미래의 부(富)가 어떻게 변화하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지 논거한 책이다. 단순히 경제학적 관점의 부가 아니라 문화와 문명이라는 좀 더 커다란 구조 속에서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부의 형성, 변화, 이동과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토플러는 혁명적 부의 창출의 요인으로 시간·공간·지식을 꼽는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요인을 경제사회 전반을 주관하는 기반(fundamental, 펀더멘털),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작용하고 있는 심층 기반(deep fundamentals)으로 규정했다.
먼저 그는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상황이 속도의 충돌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경제발전의 속도를 사회제도나 정책 등이 못 따라가기 때문이라는 것. 기업은 시속 100마일의 속도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부와 관료조직, 정책과 법·제도는 30마일도 안 되는 속도로 거북걸음을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런 속도의 차이는 결국 상호 충돌을 야기하고 변화, 발전의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는 부의 공간적 이동에 관해 주목하며 아시아, 특히 중국이 세계의 부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역사를 보면 아시아가 가졌던 부의 주도권(발달된 기술)이 산업혁명이라는 변혁으로 유럽으로 넘어갔고, 2차대전으로 인해 미국으로 옮겨 갔으며, 다시 지식혁명이라는 제3물결과 함께 그 흐름이 아시아로 이동한다는 것. 특히 개개인이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지역적인 경제파워로는 승부할 수 없으며, 진행되고 있는 재세계화와 우주공간으로의 도약이 부의 혁명적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앨빈 토플러는 또 함께 화폐경제에 속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경제인 비화폐 경제에 주목한다. ‘제3의 물결’에서 제시한 자신의 사용이나 만족을 위해 서비스 제품, 또는 경험을 생산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인 프로슈머와 프로슈밍(생산소비)에 관해 심도 있는 통찰을 내놓으면서 프로슈머경제가 급성장해 폭발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양한 프로슈머의 사례를 들어 프로슈밍이 어떻게 시장과 세계경제를 변화시키는지, 프로슈머가 어떻게 화폐경제에 소위 ‘공짜 점심’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힌다.
토플러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이 가장 돋보이는 백미는 바로 세계의 지각변동을 다룬 부분이다. 그는 한·중·일, 유럽과 미국 등 세계경제의 근간을 좌우하고 있고, 좌우하게 될 각국의 현재와 미래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분석한다. 무엇보다 각국이 직면한 위기가 농업·산업·지식 혁명의 산물인 부 창출 시스템에 상호충돌하고 있는 물결투쟁 때문이며, 이밖에도 속도, 공간, 지식이라는 심층 기반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그 대안도 제시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제시하는 부의 미래가 낙관적이란 사실이다. 그는 미래사회에 이런 희망적 메시지를 남기며 책을 마무리했다. ‘모든 사항을 고려했을 때, 이것도 한 번 살아볼 가치가 있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미지의 21세기에 들어온 것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한다!’
<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라인강변에 꽃상여 가네
조병옥 지음, 한울, 1만1000원.
어쩌면 이 책은 남편과 두 아들을 둔 한 여성이 노총각을 만나 사랑에 빠진 후 겪는 파란만장한 러브스토리다. 또 이 책은 전립선암에 걸려 마지막으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42일 동안 단식치료를 하며 투병생활을 하는 남편을 돕는 지순한 아내의 간병기다. 또 이 책은 일제시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쌀을 얻기 위해 일본군에게 순결을 잃은 소녀가 이화여대 음대 교수가 되고 독일 유학생과 지성인의 정신적 지주가 된 한 여성의 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은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은 공광덕 박사와 그의 아내이자 음악가인 조병옥이 민주화운동가로서, 재독음악가로서 겪은 이야기와 유럽 망명지에서 만난 홍세화, 이응로 화백, 음악가 윤이상 등이 등장하는 민주화 실록이기도 하다.
읽는 사람의 관심사에 따라 `잘 나가는 여교수가 전과자 총각과 결혼, 식당의 요리사까지 하며 ‘망가진 모습’을 담은 통속적인 멜로물로, 또는 식민통치와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여성이 민주화운동가인 남편의 삶을 통해 동백림사건의 허구를 고발하는 치열한 고발장으로 등 다른 빛깔로 느껴지겠지만 핵심은 한 열정적이고 다재다능한 여성이 특별한 자기 이야기를 담은 수기이다.
억울하게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초라한 노총각 공광덕 박사는 후배의 맞선자리에서 만난 당시 이대음대 작곡가 교수인 저자를 보고 ‘저주로 눈이 멀어도 좋을 만큼’ 강력한 사랑에 빠져 함께 독일로 간다. 공광덕·조병옥 부부의 집은 윤이상 선생이나 이응로 화백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한 연결고리로 수많은 인사들이 보금자리를 거쳐간 유럽 속의 모국이었다. 그래서 이 수기에는 리영희 선생, 이해동 목사, 고 안병무 교수, 이우재 전 의원, 유재건 의원, 정범구 전 의원, 홍세화 선생, 북한의 여연구, 독일작가 루이제 린저 등과의 만남과 증언록이 이들의 삶과 사랑을 증언해준다.
70대의 나이에 전문작가도 아니어서 세련된 문장은 아니지만 과장하거나 중언부언하지 않은 진솔하고 담백한 문장이 더욱 감동을 준다. 교수 출신에 독일 유학 등의 배경까지 전혜린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다. 42일간의 단식치료 기간을 배경으로 회상 형식으로 쓴 수기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