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한국에서 중국 브랜드는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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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한국에서 중국 브랜드는 ‘주홍글씨’

입력 2006.08.15 00:00

‘중국산’은 더 까다롭게 대하는 소비자 습성에 중국계 기업들 ‘속앓이’

[경제]한국에서 중국 브랜드는 ‘주홍글씨’

‘중국산’이 우리의 식탁과 웬만한 생활용품은 장악했지만 가전이나 IT 등 상표를 드러내는 영역에서는 맥을 못추고 있다. 품질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했지만 ‘중국산=싸구려’라는 소비자의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의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에는 그다지 반감이 없지만 중국기업 브랜드에는 의구심을 품는다는 점도 독특하다. 세계 유수의 기업 가운데 우리나라의 복잡한 유통구조와 토종기업의 강력한 견제에 밀려 국내시장에서 두손 든 경우가 없지 않지만 중국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중국계 가전회사인 하이얼코리아 윤호필 이사는 “차라리 품질만 놓고 냉정하게 평가를 해서 나쁘게 나왔다면 이렇게 속상하지는 않겠다”면서 “정말 대기업 제품과 견줬을 때 브랜드 이미지에서는 뒤질지 모르지만 품질면에서는 자신 있다”고 강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이얼코리아는 “회사실적을 부풀려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7월 21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일간지에 광고를 실으면서 사용한 ‘세계 제2위의 가전회사’ ‘냉장고 세계시장 점유율 1위’라는 표현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하이얼코리아는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2005년 국내시장에 진출한 뒤 어렵사리 쌓아올린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메이드 인 코리아’ 팔아도 외면

사실 하이얼코리아가 현재 판매중인 LCD TV는 중국산이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에서 생산한 OEM 제품, 즉 ‘메이드 인 코리아’다. 하이얼코리아 측이 드러내놓고 홍보하지 않는데도 마니아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판매는 여전히 부진하다. AV코리아 전문 리뷰어 정민영씨는 “하이얼코리아가 처음 내놓은 제품은 ‘메이드 인 차이나’로 가격이 워낙 싸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 국내 중소기업에서 OEM 생산을 한 이후 수요가 줄었다”고 말했다. 국내 OEM 생산을 하면서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중국산이 이렇게 비쌀 수 있나’라는 의문이 소비자의 잠재된 ‘차이나 알레르기’를 슬그머니 되살린 셈이다. 여기에 국내 중소 LCD TV 생산업체가 고객 서비스와 AS에 집중 투자를 하면서 하이얼코리아는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IBM PC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거대 공룡으로 떠오른 중국계 PC생산업체 레노버의 한국법인인 한국레노버도 ‘차이나 디스카운트’의 불똥이 튈까봐 상당히 조심한다. 올해부터 회사 이름을 딴 보급형 노트북 브랜드 ‘레노버3000’ 시리즈를 내놓은 상태라 회사 입장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브랜드팀 한호경 차장은 “초반이라 아직 뭐라 평가하기 이르지만 앞으로 이슈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며 경계했다.

한국레노버측은 IBM의 PC사업부문을 인수한 레노버가 중국기업인 건 맞지만 본사를 중국이 아닌 미국에 둔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국레노버 마케팅&BU본부 최석원 본부장은 “한국레노버는 아시아퍼시픽본부에 소속돼 비즈니스를 진행하기 때문에 별도 본부가 있는 중국레노버와는 사실상 연관성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렇게 설명한다고 소비자의 머리 속에 박혀있는 중국회사라는 이름표가 가려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결국 제품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지 않냐”고 말했다.

한국레노버측은 매출이 꾸준하게 상승하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현재 한국레노버의 성적은 ‘과거의 영광’을 감안할 때 썩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레노버가 인수하기 이전의 일이긴 하지만 ‘씽크패드’는 국내 노트북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던 제품이다.

“중국기업이 인수한 자체가 불만”

노트기어 김정민 대표는 레노버가 우리나라에서 고전하는 이유에 대해 “중국 브랜드를 품질만으로 평가하지 않는 소비자의 불신 때문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씽크패드’라는 세계적인 브랜드 뿐 아니라 IBM 연구소, 기술진까지 모두 인수했지만 인수주체가 중국기업이라는 걸 소비자는 불만스럽게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한국레노버측은 “IBM이 국내 컴퓨터 시장의 오랜 파트너였던 LG와 결별한 뒤 다시 레노버에 흡수되는 과정에 그동안 한국시장에서 쌓아올린 모든 걸 잃었고 맨손으로 다시 시작하다보니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가 나온 것일 뿐 메인파트너로 선정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선보인 중국의 중저가 노트북 하시(HASEE) 노트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시 노트는 중국내 노트북 판매에서 레노버 다음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업체이다. 하시 노트 수입사인 기해전기 정대영 부장은 “처음에는 ‘중국산이라 쓰다보면 터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면서 “기대에는 못미치지만 우리나라 IT경기가 바닥인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실적”이라고 자평했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사양의 국내 대기업 제품보다 50만~60만 원 저렴한 하시 노트가 중국 브랜드가 아니라면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차이나 디스카운트’는 자업자득?

지난 몇 년간 IT부문에서 중국이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글로벌 기업의 단순 조립생산기지 역할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조금씩 기술을 축적하고,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대형 M&A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핵심 노하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아직 마무리가 약하기는 하지만 ‘중국산’이라고 무조건 싸구려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다나와 노트북 담당 최호섭씨는 “디자인이나 마감에서 조금 차이가 날 뿐 기본적인 성능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LCD모니터도 전문가급 제품에서는 기술적 차이가 있지만 일반 제품은 우리나라 제품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왜 차이나 디스카운트는 여전할 걸까. 우선 과거에 중국산 제품을 산 뒤 받은 상처가 아직 말끔하게 치유되지 않은 탓이다. 노트북인사이드 콘텐츠팀 정동훈씨는 “중국산 제품은 아무리 첨단 IT기기라도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한결 같이 ‘초저가’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물건 팔기에만 급급하다가 1~2년 후에 홀연히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다”고 꼬집었다. AS나 기술지원이 끊기면서 손해를 본 소비자가 중국산 제품을 좋게 생각할 리 없다는 것이다.

물건을 ‘띄워서’ 파는 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메뉴의 한글화나 한국 소비자의 특성에 맞는 디자인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쌓인 불만이 결국 중국산을 무조건 무시하는 악순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거래 관행도 ‘차이나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꼽힌다. 알려진 것처럼 LCD모니터 시장에서 대만과 중국기업은 우리나라 기업과 세계시장을 양분하는 거대세력이다. 세계시장에서 이들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는 삼성·LG 못지 않지만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하급으로 분류돼 제값을 받지 못한다.

모니터포유 신수근 대표는 “한 명의 업자와 총판 계약을 맺은 후 본사에서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또 다른 총판을 내세워 경쟁을 시키는 무리수를 두다가 공멸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적과 관계 없이 한 번 맺은 계약을 끝까지 신뢰하며 고가 정책으로 브랜드 가치까지 관리하는 일본업체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브랜드 이미지나 디자인은 소비자의 감성과 직결돼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중국제품은 이를 소홀히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