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사서함]우체국에 묵혀둔 예금 찾으세요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우정사서함]우체국에 묵혀둔 예금 찾으세요

입력 2006.06.20 00:00

[우정사서함]우체국에 묵혀둔 예금 찾으세요

어렸을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상(賞)이 저축상이었다.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림이나 노래에서 돋보이는 실력을 보여준 것도 아닌데 왜 상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부자라고 상을 주나. 저축을 많이 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결국 부자만 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원천적인 불공정 게임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대충 이런 생각이었다.

저축이 국가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길이 없었지만, 저축장려정책은 꾸준히 지속됐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모든 어린이는 예금통장을 하나씩 갖게 됐고, 선생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저축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당장 먹을 게 없던 집에서 저축하라고 아이 손에 쥐어줄 돈은 없었다. 선생님의 독려가 계속되면 마지못해 부스러기 돈이라도 가져가 성의를 표시하는 정도였다. 그러니 저축총액이라고 해봤자 보잘것없을 수밖에 없었다. 졸업 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학교에서 예금통장을 만들어주는 것은 요즘도 마찬가지다. 다만 저축 많이 했다고 상 주는 학교가 거의 없어졌을 따름이다.

학교의 예금통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체국의 것이다. 학생 예금은 금액이 적고 불입시기가 불규칙해 관리비용만 많이 들 뿐이라며 시중은행들이 기피한 까닭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국민은 우체국예금통장을 가져본 적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혹시 어릴 때 학교에서 만든 우체국예금통장에 찾지 않은 돈이 있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면 당장 확인해볼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우체국(epostbank.go.kr) 홈페이지에서 이름과 주민번호만 치면 된다. 우체국과 은행연합회, 대한손해보험협회가 공동으로 휴면계좌통합조회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조회를 통해 지난 한 달간 우체국에 잠자고 있던 11억 원이 주인에게 돌아갔다. 한 계좌당 평균 4465원으로 73만9000건. 이번 달에는 235억 원의 휴면보험금을 주인에게 돌려주게 된다. 휴면계좌란 만기일 후 일정기간이 지나 청구권이 소멸된 예금. 은행은 5년이고, 우체국은 10년이 소멸시효다. 이 시기가 지나면 금융기관의 잡수익으로 들어간다. 멀쩡한 내 돈을 남의 잡수익으로 넘겨주기 싫으면 한번쯤 조회시스템을 이용해볼 만하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프랑코를 고발한 ‘게르니카’

[우정사서함]우체국에 묵혀둔 예금 찾으세요

큐비즘(입체주의)을 창시한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의 대표작은 ‘게르니카’이다. 그럼에도 현재 서울에서 전시되고 있는 ‘피카소 전’에는 ‘게르니카’가 빠졌다. 어쩌면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게르니카는 이미 나들이가 거부된 지 오래이다. 자국에서도 에스파냐와 스페인은 마치 중국의 티베트처럼 앙숙이다. 아직도 에스파냐가 무적함대 ‘아르마다’ 시절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있음인지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최 때도 게르니카의 전시는 거절당하고 말았다.

파리 시절의 피카소는 몽마르트르 뒷골목 풍경이 창작세계의 주조색이 되었다. 가난에 찌든 서민들의 파리한 삶에서 ‘청색시대’를 펼쳐 나갔다. 그 무렵 고국에는 내란이 일어나 독재자 프랑코 총통은 히틀러의 도움을 얻어 게르니카를 폭격했다.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되었다. 그 참상은 큐비즘의 대표작 ‘게르니카’로 묘사되었다. 주검을 품에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 칼날에 앞가슴이 어긋나버린 말이며 갈기 찢긴 사지들의 흩어짐 등 아비규환의 극치야말로 입체주의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생전에 작품을 팔아 거부가 되었던 피카소는 1만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물론, 청색시대 이전의 작품 가운데 아프리카 흑인에게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는 ‘아비뇽의 아가씨’는 큐비즘과 거리가 멀다.

만년의 피카소는 반전운동에도 참가했던 평화주의자였으며 프랑스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6·25 전쟁을 고발한 ‘한국의 학살’이라는 작품도 있다.

1966년에 ‘스페인 내란’ 30주년 기념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발행한 ‘게르니카’ 우표이다.

여해룡 <시인·칼럼니스트> yhur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