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종단철도 불발로 ‘시동’조차 요원…경제적 득실·노선 선택 등 과제 산적
5월 25일 예정됐던 남부철도 시험운행이 북측의 거부로 무산된 가운데 문산역에 시범열차가 대기하고 있다.
한반도 남단에서 북한을 거쳐 러시아로 횡단하는 ‘철의 실크로드’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현실화되는 듯했던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장밋빛 꿈은 점차 잿빛으로 바뀌고 있다. 수년간 ‘철의 실크로드’를 연구해온 교통개발연구원 안병민 박사는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장밋빛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만㎞에 달하는 ‘철의 실크로드’는 현실적으로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형편이다. 5월 25일 남북간에 시험운행될 예정이던 경의·동해선 열차는 북측의 취소 통보로 결국 기적을 울리지 못했다. 한반도종단철도(TKR)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상운송보다 시간·비용 절감 기대
흔히 TKR - TSR 연결 노선을 말하면 ‘남한-북한-러시아-유럽’으로 연결되는 환상적인 여행을 떠올린다.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올해초 독일 베를린까지 가는 월드컵 응원 열차 계획을 밝히면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부각됐다. 이 계획은 결국 꿈에 그쳐야만 했다.
여행을 위한 객차 운행은 TSR연결 운행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미래기술실용화센터 오지택 팀장은 “시간이 20일 가까이 걸리는 데다 기차 안이 불편해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유럽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선택이 될 것”이라면서 여행적인 면에서 경제성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철도 전문가들은 TSR 운행을 전적으로 화물열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제성을 갖춘 물류운송 수단이 되어야 ‘철의 실크로드’가 현실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철도기술연구원 나희승 박사는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어야 가능한 프로젝트가 된다”고 말했다. 오지택 팀장은 “남북한 철도 연결을 단순히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관점에서 TSR과 연결돼 물류 운송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구상하고 있는 가장 경제적인 노선은 부산에서 출발해 동해안을 끼고 동해선에 연결, 북한을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닿는 노선이다. 이곳에서 TSR을 이용하면 유럽의 동쪽에 닿게 된다. 아직 한반도 남쪽의 동해안 연안을 연결하는 열차 선로가 없는데다 남북한 철도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꿈의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신항에 몰려든 물류를 TKR-TSR을이용해 유럽으로 운송하게 되면 부산신항을 동북아 물류의 거점지로 만들 수 있다. 부산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철로는 1만여㎞로, 수에즈운하경로를 통하는 해상 운송이 평균 2만여㎞에 달하는 점을 비교하면 거리는 2분의 1에 불과하다. 평균 25일까지 걸리는 해상 운송의 시간도 대폭 줄일 수 있다.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해상 운송보다 거리적으로 가깝고, 시간도 단축될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하는 운송수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지택 팀장은 “중국 상하이의 양산항보다 부산신항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TKR와 TSR이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륙철도망
국가간 철도운행 시스템 조율해야
하지만 ‘장밋빛 환상’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가장 큰 어려움은 노후한 북한지역의 철도 시설이다. 전력 부족, 곡선 노선, 노반 부실, 낡은 침목, 단선(單線) 때문에 러시아 또는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의 운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무엇보다 북한 철도의 현대화가 필수적이다. 또한 남북의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세관심사·검역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남북의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 어려움은 부산에서 동해안을 끼고 북한에 연결되는 동해선을 완전히 완공하려면 10여 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고려하고 있는 구간은 경부선을 이용해 서울을 거친 후 경원선을 통해 연결하는 방식, 경의선을 타다가 개성 또는 평양에서 횡단해 경원선으로 연결하는 선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물류운송을 위해서는 적체 구간인 수도권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해선이 이상적인 것도 이런 이유다.
경의선을 통해 신의주를 통과하고 중국횡단철도(TCR)를 통해 TSR에 연결하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국경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하루가 넘을 수도 있기 때문에 국가 경유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각 국가간 다른 철도 운행 시스템도 국가 경유를 줄여야 하는 이유가 된다. 북한을 거쳐 바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경유 노선을 선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고 있는 러시아인들.
화물 열차가 경유하는 나라들과 긴밀한 협력을 맺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동유럽의 운송관련 체계를 관장하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가입해야 한다. 국제기구에 가입해 국경을 경유하는 시간을 줄여야 비용이 절감된다.
북한과 러시아를 경유하면서 서로 상이한 철도운행 시스템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북한은 현재 직류 3000V의 전압을 사용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교류 2만5000V의 전압을 사용한다. 때문에 5월 25일 시험운행 때에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디젤기관차가 남북 사이를 왕복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직류와 교류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기관차가 개발돼 남북을 오가야 한다. 상이한 신호 시스템을 통일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러시아로 넘어갈 경우 TSR에서는 자체 기관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화물차량만 연결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기관차가 아니라 궤도 폭이 문제가 된다. 남북은 궤도폭이 같지만 TSR은 폭이 다르기 때문. 궤간가변장치를 사용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으나 이를 사용하려면 또다른 비용이 필요하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에서 이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내년에 시험 운행을 앞두고 있다.
이루어 할 명제지만 전망 불투명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해도 여전히 비용 문제는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부산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보스토니치 항에 물류를 선적한 후 TSR을 이용해 모스크바, 핀란드 지역으로 운송하고 있다. 휴대전화·가전제품·자동차 부품 등의 고가제품이 해상운송보다 7일 정도 빠르게 운송된다.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동유럽과 북유럽으로의 물류 운송은 TSR을 이용함으로써 충분히 경제성을 갖고 있다. 2004년 운송량은 1999년에 비해 5배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 이후 운송량은 정체 상태다. 최근 TSR 운송요금이 인상된 것이 운송업자들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부산에서 보스토니치항까지의 운송, 보스토니치항의 이용 운임 등도 운송업자들에게는 큰 부담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때문에 북한의 나진항을 이용하는 방안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나희승 박사는 “경로야 어떻든 TSR 이용은 북유럽과 동유럽 간 교역에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내륙의 경우 어차피 해상 운송이 되더라도 철도를 이용해야 되기 때문에 해상 운송보다 TSR 이용이 훨씬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해운업계 쪽에서는 TSR운송에 대해 회의적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황진회 책임연구원은 “화주 입장에서는 해상로 외에 또 다른 운송노선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하지만 1회 수송량이 해상 운송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기차의 수송용량이 100TEU인데 반해, 화물선 한 척이 운반하는 양은 6000∼8000TEU에 달한다.
한국해양대학교 해운경영학과 신한원 교수는 “경제성이 있다는 관점도 있고 없다는 관점도 있을 수 있다”면서 “일단 북한지역이 연결돼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있겠지만 아직 비즈니스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경제성을 따질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황진회 책임연구원은 “해상 운임이 오를 때 대체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완전한 대체수단이 되기는 어렵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철도 관련 전문가들 역시 TKR-TSR 연결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다만 언젠가는 이뤄야 할 과제임을 강조한다. 대륙과의 교역을 위해서는 철도 연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지택 팀장은 “흔히 TKR, TCR, TSR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시아횡단철도(TAR)의 개념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TAR는 동유럽 노선을 제외한 아시아의 전체 철도망을 포괄한다. 러시아를 횡단하는 TSR도 여기에 포함된다. UN의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ACP)에서 TAR를 관장하며 한국은 ESACP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 한 호텔에서 열린 한·러 운송부문 관계 발전을 위한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시베리아 횡단철도계획도를 구경하고 있다.
TAR의 관점에서 대륙 철도망이 유독 한반도에서 끊어져 있는 것이다.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부산이 TAR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 된다. 유럽 뿐만 아니라 중국, 중앙아시아, 러시아, 몽골 등 TAR에 속하는 모든 국가가 철도로 연결되는 것이다. 오지택 팀장은 “남북한 -러시아 - 유럽 노선이 이상적인 노선이겠지만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중국노선을 통해서도 러시아 노선에 연결된다”면서 “어떤 노선이든 가장 경제적인 노선을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팀장은 중국과의 무역도 훨씬 더 경제적으로 이뤄지게 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단계적인 전략도 제시되고 있다. 나희승 박사는 “일단 남북철도 연결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에 경의선을 통해 개성공단의 물자를 운송하고, 동해선을 통해 금강산 관광을 하는 등 조그만 것부터 상업적으로 성공한 후 다시 남북철도를 연장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면서 “가능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진행하다 보면 중장기적으로 TSR로 연결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통개발연구원 안병민 박사는 “TSR의 운임상승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TSR 연결 여건이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면서 “일단 남북한 교역을 통해 남북한 철도의 경쟁력부터 갖춘 후 중국의 동북3성, 러시아와의 교역에 철도를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으로 바로 연결하는 철도 노선의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는 한 ‘철의 실크로드’는 여전히 장기적인 과제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