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천정부지 유가에 세계경기 ‘쓰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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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천정부지 유가에 세계경기 ‘쓰나미’

입력 2006.05.09 00:00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폭등행진 끝은… 투기자본의 원유매집도 상승 부채질

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모씨(36)는 두 달 전 중형승용차를 구입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서울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하루 운행거리가 60~70㎞에 달해 한 달 기름값이 40만 원을 넘는다. 유가 급등으로 휘발유 값이 리터당 1300원대에서 1700원대로 올라서 이씨의 유류비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국제 원유가가 배럴당 70달러(북해산 브렌트유 기준)를 돌파하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일부 미국인들은 아예 운전대를 팽개치고 있다. 워싱턴DC의 전철 메트로레일은 지난 20일 개통 30년 만에 최고치인 하루 78만820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다. 이는 지난해 같은 날보다 6.2% 늘어난 수치다.

우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가운전자 중 일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출퇴근시간 주차장을 방불케 하던 서울 올림픽대로 등 혼잡 지역의 소통이 전보다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한 달 기름값이 수백 만 원이 드는 사우나 등도 손님이 적은 평일 시간대에 시설 일부 가동을 멈췄다.

배럴당 100달러 돌파 전망까지

군대도 고유가 비상이다. 육·해·공군 중 유류 소모량이 많은 공군은 조종사 1인당 조종기량 유지에 필요한 연 160시간의 훈련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해군도 함정 기동시간을 평시 대비 19% 가량 줄이고, 항공기 훈련 비행시간도 12% 가량 축소토록 했다.

산업계 역시 비상국면이라고 아우성이다. 원료인 나프타 값 급등으로 석유화학업계는 이익이 크게 줄었다. 연료비 비중이 큰 항공·해운업계는 울상이다.

항공사들의 전체 매출원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 유가가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대한항공은 연간 270억 원, 아시아나항공은 141억 원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자동차업계도 고유가 여파로 수요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다른 업계도 ‘제3 오일쇼크’로 불황이 닥쳐오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한국은 세계 4대 원유수입국으로 한해 원유도입량이 8억 배럴에 이른다. 지난해 원유수입에 쓴 돈만 667억 달러였다. 문제는 이와 같은 고유가 추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점이다.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선 유가가 머지않아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전문가들은 ‘2차 오일쇼크’ 당시 유가 평균을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85달러와 맞먹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유가가 85달러를 넘어서면 세계 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든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유가가 치솟는 것일까. 당연히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급증가폭에 비해 수요증가폭이 훨씬 크다. 올해 전세계의 원유수요랑 추정치는 8508만 배럴로 지난해보다 2.1%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원유공급 증가율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유, 즉 석유는 땅속에서 끌어올려야 한다. 아무데나 파이프를 꽂는다고 원유가 나오는 게 아닌 만큼 원유생산에는 탐사 및 광구건설 시간이 상당기간 필요하다.

세계 석유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사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장기간 저유가가 지속하자 원유생산 투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추가 생산을 해봤자 밑지고 팔아야 하고, 특히 공급량 확대로 유가가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OPEC의 여유생산능력은 크게 축소돼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만이 110만~160만 배럴의 생산여력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사정은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등·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만드는 정유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원유만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바로 휘발유나 경유가 나오지 않는다. 정제시설을 거쳐야 한다. 이 정제시설 역시 세계적으로 부족하다.
이와는 달리 세계 석유수요는 급증해왔다. 무엇보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이 ‘물먹는 하마’처럼 석유 등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다. 올해 중국의 원유수요 증가율은 5.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주정빈 부장은 “중국 등 세계 경기가 좋아지면서 석유수요가 느는 반면 공급능력은 이를 따라잡지 못해 구조적으로 고유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요 초과에 공급불안 요인 겹쳐

이런 가운데 최근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 갈등이 심화되면서 주요 산유국인 이란의 원유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실제로 2차 석유파동은 1978년 이란혁명 이후 이란의 석유금수조치로 촉발됐다.

설상가상으로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의 석유시설에 대해 반군단체의 테러가 자행돼 원유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반군단체인 MEND는 “서방기업이 철수하지 않으면 유조선과 석유시설을 추가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어 지속적인 유가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수요초과에다 공급을 위축시키는 불안요인까지 겹쳐 유가는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언제든지 끓어 넘칠 수 있는 냄비처럼 구조적으로 군불이 계속 가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다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듯’ 유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게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상품, 즉 금·면화·구리 등의 현·선물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금융자본이다. 흔히 투기펀드라고도 불리는 이 돈들이 원유 선물시장에서 끊임없이 ‘사자’를 부르며 원유가를 부추기고 있다.

이는 마치 주식시장에서 작전세력이 주식매집을 통해 주가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같다. 이 투기펀드들은 원유 국제가격을 폭등시키는 촉매제 노릇을 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현상인 것이다. 이에 대해 SK㈜ 신헌철 사장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유가는 일시적으로 70달러 이상을 넘어설 수 있다”고 예견하고 “국제 투기자본이 유가폭등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원인을 지적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유가가 과연 어디까지 치솟을까. 전문가들은 일시적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겠지만 오래 가진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만약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 지난해보다 기름값이 두 배 이상 된다는 것”이라며 “이럴 경우 대체에너지를 이용하려는 전 세계적인 노력으로 석유수요가 감소하게 된다”고 말했다.

태양열·수소·바이오연료 등 대체에너지는 현재 석유에 비해 원가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가가 크게 오른다면 이들 대체에너지의 경제성이 더 우월해진다는 것.

아울러 정유업계에서는 국제유가가 80달러를 넘어서면 연쇄적으로 소비위축→경기후퇴→ 석유수요 감소의 과정을 거치며 유가가 조정을 보일 것이라고 본다. SK㈜의 박현철 석유RM팀 과장은 “유가가 오르는 추세인 것은 맞지만 어느 정도 오르면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결국 유가는 향후 50달러 밑으로 내려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만약 유가가 더 오른다면 국내 소비자들은 리터당 2000원이 넘는 휘발유를 사게 될지도 모른다. 가계든 기업이든 고유가시대를 견디는 지혜를 실천해야 할 때다. 이미 정부는 강제배급 등 세 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해두고 유가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규진〈서울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sk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