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록씨 최근까지 잦은 접촉 확인… “1997년 비상경제대책위 시절부터 인연”
왼쪽부터 강정원, 박해춘, 오호수, 이덕훈, 정기홍, 황영기.
"상당한 성과가 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이 4월 6일 김재록 금융비리 수사진행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발언과 관련, ‘김재록 사업’의 연결고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재록씨가 어떤 관계·경제계·정치계 인사들과 관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새삼 ‘이헌재사단’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김재록씨가 ‘이헌재사단’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이헌재 사람’들과 잦은 접촉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김재록씨의 인연도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세연구원장이던 이 전 부총리는 당시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용환 전 의원의 부름을 받아 금감위원장에 임명된다. 일명 ‘모피아’의 한 중심에 이 전 부총리가 이름을 올리는 순간이다. ‘모피아’는 과거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현 재경부 출신의 선·후배 관료들이 밀고 당겨주는 패쇄적 행태를 꼬집는 조어다. ‘모피아’의 중심은 어느 때고 있었다. 김대중 정권 등장과 함께 이 전 부총리 그리고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등이 그 임무를 맡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비상경제대책위 단장 맡은 이헌재
이 전 부총리가 ‘모피아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데는 김용환 전 의원의 역할이 컸다. 김 전 의원은 1997~1998년 정권교체기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이다. 김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얘기를 듣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술회했을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서 김 전 대통령이 “IMF 위기를 1년 안에 극복할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김 전 의원의 도움이라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얘기다.
IMF 위기 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비상기구인 ‘비상경제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 전 의원은 1999년 초 이 전 부총리를 비상경제대책위 실무단장으로 부른다. 김 전 의원이 재무장관 시절 이 전 의원은 재무국장이었다. 그들은 1970년대 말 ‘율산사태’로 동시에 옷을 벗은 인연이 있다. 이 전 부총리는 1998년 4월 금융감독위 초대위원장으로 직무가 이어졌다. 물론 김 전 의원의 낙점이 있었다.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와 이 전 부총리가 인연이 닿은 곳이 바로 ‘비상경제대책위’.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금융감독위원회는 ‘비상경제대책위’를 대신해 IMF 위기 극복을 위해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정리를 주도했다. 국회 재경위원장인 박종근 의원은 당시 금융감독위의 역할에 대해 “한마디로 공적자금과 구조조정의 요리사”라고 규정한 뒤 “IMF 위기 극복을 위한 금융구조조정과 부실기업 정리라는 ‘특별한 업무’를 담당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실제로 금융·재벌개혁의 ‘칼잡이’를 자임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부총리는 필요했던 인력을 재경부의 전신인 재무부 금융국과 외환국과 민간 전문가 그룹 등에서 충원했다. 이 당시 이 전 부총리로부터 부름을 받은 이들을 ‘이헌재사단’이라고 부른다.
유종근 전 지사 소개로 인연 맺어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전 부총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이 부총리 주변에 대거 포진하게 된 점이다. 이는 이 전 부총리의 조직관리 스타일과 관계가 깊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이 전 부총리는 경직되고 패쇄적 관료조직의 행태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 “그래서 일 중심으로 사람 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전 부총리는 “자기 사람 위주의 인사운용을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 재경위 한 위원은 “공적자금과 구조조정 마스터 플랜을 만든 팀이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들은 상당수가 이 전 부총리와 끈끈한 인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의 인간관계 속에 김재록씨의 이름도 포함된다. 특히 김씨가 ‘비상경제대책위’에 모습을 자주 나타났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은 쉽게 들을 수 있다. 정치권 흐름에 밝은 한 인사는 “‘비상경제대책위’는 사실상 김 전 의원과 유종근 전 전북지사가 중심이 되어 움직였다”면서 “유 전 지사가 권노갑 전 의원과 깊은 관계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김씨가 유 전 지사로부터 비상경제대책위를 소개받았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든 김재록씨는 당시 ‘금융 큰손’으로 인정받던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을 자신이 만든 인베스투스글로벌에 고문으로 영입했고 나중에는 회장으로 ‘모신다’. 오 회장은 이 전 부총리와 동갑내기 친구로 지금도 자주 만나는 사이. 이 전 부총리는 경기고, 오 회장은 경복고 출신이고 고향도 다르지만 뒤늦게 만나 지기가 되었다. 그들의 친밀감은 2003년 12월 오 회장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드러났다. 이 전 부총리가 사흘 내내 빈소를 찾았다는 것. 그런 친구와 함께 이 전 총리는 지난 3월 31일 검찰의 출국금지를 당했다.
오 회장의 소개로 김재록씨와 친해진 인사 중에 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있다. 황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됐을 당시 ‘이헌재사단’의 부상이 언론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황 회장이 ‘이헌재펀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내것, 네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다.
박해춘 LG 대표이사 사장은 최근에 김재록씨와 접촉한 일이 목격돼 주목받고 있다. 특히 경제계에선 김재록씨와 LG카드 매각 문제를 협의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돌고 있다.
이 전 부총리가 금감위원장 시절 직접 삼성생명 상무로 있던 박 사장을 파산 위기에 몰린 서울보증보험 사장으로 스카웃트한 게 두 사람의 인연이 됐다. 이 전 부총리가 부총리직을 맡은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된 LG카드 사장으로 박 사장을 발탁했을 정도로 끈끈한 인연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성규·정기홍씨 등이 주요 인맥
이성규 전 국민은행 부행장도 이 전 부총리가 스카웃 한 인사. 1985년 이 전 부총리는 한국신용평가 초대 사장이었을 당시 이 전 부행장을 한신평 창림멤버로 참여시켰던 게 인연이 됐다. 1998년 미국유학 비자를 받아놓은 상태에서도 이 전 부총리의 요청을 받고 금감위 매크로팀장을 맡았을 정도로 두 사람의 신뢰는 깊다. 이 전 부행장은 그해 6월부터 구조조정위 사무국장으로서 기업구조조정작업의 한 축을 이룬 워크아웃을 설계하고 틀을 짰다. 이 전 부행장은 ‘이헌재식 경영철학’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측근 중의 측근.
정기홍 서울보증보험 사장도 ‘이헌재사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사로 꼽힌다. ‘이헌재사단’의 능력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공적자금 10조2500억 원이 투입된 서울보증보험에 2005년 4월에 취임, 그해에 사상 최대인 5196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헌재사단’의 능력을 보여줬다. 서울보증보험은 현재 삼성전자와 같은 신용등급 ‘A-’(미국 신용기관 SP).
김영재 전 솔로몬신용정보 회장 역시 ‘이헌재사단’의 우등생. 김 회장은 특히 이 전 부총리의 의중에 밝은 사람이다. 금감원 대변인을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이헌재의 입’으로 통했을 정도. 이 전 부총리에 대한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 끝자인 재(才)를 이 전 부총리와 같은 재(宰)로 바꾸었다고 한다.
금감원 부원장보를 거쳐 지난해 솔로몬신용정보와 솔로몬상호저축은행, 솔로몬AMC 등의 회장을 맡았다가 지난 3월 사임했다.서근우 하나은행 부행장은 1998년 당시 제2심의관으로 4대그룹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인사. 이 전 부총리가 한국신용평가 사장이던 1985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뒤 계속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 부행장은 이 전 부총리를 “내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부행장이 이 전 부총리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중간에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팀장을 꾸리던 김민석 전 의원의 눈에 띈 게 인연이 됐다.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이 금융통화위원으로 임명됐을 때 ‘이헌재사단’의 위력을 실감했다는 얘기가 나온. 이는 이 전 부총리가 비한국은행 출신인 이 전 은행장을 낙점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밖에도 강정원 국민은행장, 최명수 전 국민은행 부행장, 권재중 금감위 자문관, 이성남 전 국민은행 감사, 김규복 재경부 기획관리실장, 백영철 건국대 교수, 김상훈 국민은행 이사회 회장, 김진만 전 한빛은행장 등도 이 전 부총리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전 부총리측은 ‘이헌재사단’이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표시한다. 한 인사는 “재계 거물 이 전 부총리가 ‘사단장급’밖에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거론되는 인사들의 능력과 경륜에 부합한 인사를 추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헌재 사단의 여자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여자들과도 친하다. 특별한 관계라기 보다는 경제 분야에서 일하며 만나거나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생활했던 여성들과 아직도 끈끈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금옥, 박선숙, 방영선, 박찬숙. 가장 대표적인 이들인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 박금옥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박선숙 전 환경부 차관,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 등. 주로 박씨가 많은 것이 특징. 박찬숙·박영선 의원의 경우 이들이 방송인 시절에 만나 이 전 부총리에게 경제 정보을 얻거나 공부를 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이 전 부총리는 이들에게 다양한 경제 전문가들을 소개시켜주어서 서로 인맥을 넓혔다. 박금옥·박선숙 씨들은 청와대 비서실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연으로 가족애를 강조한다. 자주 만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청와대 시절의 추억담도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금옥씨는 아직 미혼이고 박 전 차관은 싱글이어서 “빨리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줘야 한다”고 오빠같은 자상한 면도 보였다는 것. 이 전 부총리는 강금실 전 장관과도 친해 김재록씨에게 강 전 장관을 소개해준 것도 이 전 부총리라고 알려졌다. 주변 사람들은 “이 전 부총리가 깐깐해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유머감각이 뛰어나 술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 하고 골프등 함께 운동하는 것도 좋아해 뜻밖에(?) 여성 지인들에게 호감을 얻은 것 같다”고 전했다. |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