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월드컵 마케팅의 불량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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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월드컵 마케팅의 불량품

입력 2006.03.28 00:00

돌아보면 그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일어난 사건이었다. 저마다 삼삼오오 집 밖으로 나왔고, 함성을 질렀고, 어깨동무를 하다보니, 어느새 거대한 풍경을 이루고 말았다. 입소문과 신문 방송을 통해 확인하고서야, 그것이 바로 나 자신과 나와 같은 무수한 너희들이 뒤엉켜 만들어낸 아래로부터의 뜨거운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신화가 되어버린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거리 응원전 이야기다. 그 엄청났던 대중의 스펙터클, 끝없이 붉게 출렁이던 사람들의 물결, 관용과 축제의 다양한 공존과 역동 등 우리의 뇌리에 남은 그 이미지들은 지금도 강렬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4년 전의 신화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가 알고 있다.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는 속설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공식 응원가’니 서울 시청 앞 광장의 ‘공식 사용권’이니 하는 불미스러운 잡음부터 새나온다. 비공식적이었기 때문에 위대했던 신화는 어느덧 공식적인 이해득실의 복마전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갖은 논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공방전에는 윤도현 밴드와 붉은 악마와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뛰어들었고 각기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주인공은 SK텔레콤과 KTF라는 두 개의 대기업이지 싶다. 4년 전만 해도 대중의 파노라마를 쫓아다니기에 바빴던 그들은 이제 신화의 ‘공식 이미지’를 돈으로 사들이고 있다.

내가 이들 대기업을 지목한 이유는 그들이 4년 전 신화를 차용해서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대중의 거리 응원에 대한 자아 이미지를 지배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쥐도 새도 모르는 방식으로, 아래로부터 삼삼오오 전이되면서, 알게 모르게 창조되는 영감 가득한 순간들의 이미지를 미리 주조하겠다는 꼴이다.

먼저 SK 텔레콤이 선보이는 CF를 보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일렬 종대를 한 채 조회를 하며 애국가를 부를 때, 붉은 상의를 입은 윤도현과 일군의 무리가 차량을 앞세우고 운동장에 들이닥쳐서 록 버전의 애국가를 외치며 선동한다. 순간 아이들은 대오를 일탈해서 차량 주위를 감싸고 돌며 다같이 함성을 외친다.

다음은 붉은 악마의 공식 후원사인 KTF의 CF를 보자. 도심 한복판의 번화가에서 붉은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절규한다. 우리는 다시 할 수 있습니다! 빌딩 창문에서, 길을 지나다가 힐끗힐끗 쳐다보는 행인들 사이에서 청년은 쉰 목소리로 외친다. 대한민국! 화면은 컴컴해지고 4년 전의 그 우렁찼던 함성이 되살아난다. 대한민국!

대기업들이 4년 전의 신화를 사들이고 대량 생산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지 모르겠다. 월드컵 마케팅을 떠올리는 CEO와 기획실과 광고회사의 발빠른 움직임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단지 나는 속상할 뿐이다. 그 많은 돈을 써서 두 대기업이 제공하는 신화 이미지라는 것이 너무 촌스럽고 구태의연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 응원에 참여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독한 외침이 아니어도 시민들은 때가 되면 알아서 참석한다. 그 현실에서 한참이나 뒤처진 것도 모른 채 마치 해방과 계몽의 선각자인 양 착각하는 것, 괜히 시켜서 하는 것 같은 불쾌감만 앞장 서서 더해주는 것이 지금 두 대기업이 하는 일이다.

애국심 마케팅의 실체는 사실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나중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두 대기업이 할 일은 뒤로 한 걸음 빠져서 편의를 제공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그 열매를 가져가는 것이다. 미리 설레발 쳐서 김 빼지 말고 뒷감당할 궁리를 잘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김종휘〈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