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과 용어설명 등 핵심지식 11개에 대한 명쾌한 해답
서울대병원에서 한 어린이 척추환자 보호자가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을 TV를 통해 보고 있다.
황우석 논문 조작 파문으로 과학계는 물론 전 국민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생명공학 전반에 걸친 국민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 언론 보도를 통해 소개되는 전문용어와 개념들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21세기 의학계 초미의 화두 줄기세포, 황우석 파문의 전모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줄기세포의 핵심 지식, 그 11개의 아리송한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여기 있다.
1. 왜 줄기세포로 불리는가 줄기세포는 영어로 ‘stem cell’이다. ’stem’은 식물의 줄기를 의미한다. 인체의 모든 세포나 조직을 만들어내는 기본, 즉 ‘근간’이 되는 세포라는 의미에서 줄기세포라 부를 뿐 식물줄기와 닮지는 않았다. 몇년 전만해도 줄기세포는 간(幹)세포 또는 기간(基幹)세포로 불렸는데 과학계에서 우리말을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와 줄기세포로 부르게 됐다. 줄기세포는 아직 특정 조직의 세포로 분화되지 않은, 음식에 비유하자면 ‘원재료’에 해당하는 세포다.
2.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는 어떻게 다른가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합쳐진 수정란을 통해 탄생한다.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통해 태아로 발전하는 과정을 ‘발생’이라고 부른다. 수정란 발생 초기에 생기는 세포를 ‘배아 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라고 한다.
배아줄기세포는 분화의 가능성에 따라 완전분화 줄기세포와 복수분화 줄기세포로 구분한다. 완전분화 줄기세포는 임신 초기의 며칠만 존재하며 인체 내의 어떤 조직으로도 분화할 수 있는, 일종의 ‘만능세포’다. 복수분화 줄기세포는 수정란이 배반포기 단계(수정란이 100여 개의 세포로 분열된 단계)에 이르렀을 때 존재하는 것으로 완전분화 줄기세포보다는 분화 가능성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다양한 신체 조직으로 분화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란 무엇인가. 수술로 잘라낸 간은 시간이 지나면 복원된다. 상처가 나면 오래 지나지 않아 새 살이 돋고, 벗겨진 피부는 곧 새 피부가 대체한다. 인간이 성장한 후에도 존재하는 세포를 ‘성체 줄기세포(adult stem cell)’라 한다. 성체줄기세포는 분열해서 죽거나 기능을 상실하는 세포를 대신할 새로운 세포가 된다.
3. 미즈메디의 수정란 배아줄기세포와 황우석 교수의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는 무엇이 다른가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은 크게 3가지. 냉동배아에서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방법, 복제 배아에서 얻는 방법, 그리고 유산된 태아에서 얻는 방법이다.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는 불임치료 후 남은 냉동배아를 이용해 얻는다. 미즈메디 병원 등 불임치료기관은 시험관 아기 등의 불임 시술을 위해 인공 배아(수정란)를 만든다. 불임 여성으로부터 채취한 10개 정도의 난자에 정자를 수정시킨 후 수정에 성공한 난자(배아)를 3~5일 간 여성의 자궁과 같은 배양기에 둬 발생을 유도한다. 이중 상태가 가장 좋은 2~3개의 배아를 선택해 여성의 자궁에 넣어 임신을 유도하는 것이다. 자궁에 이식되지 못하고 남은 배아는 영하 196도의 초저온에서 냉동 보관된다. 불임 부부가 더 이상 임신할 의사가 없다면 이 냉동배아는 폐기하는데 이렇게 폐기될 예정인 냉동배아를 배아줄기세포를 얻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1998년 미국 위스콘신대의 제임스 톰슨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황우석 박사의 복제배아는 사람의 귀나 피부에서 조직을 소량 채취하고 효소를 제거하여 체세포를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에게 제공받은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핵이 없는 난자와 체세포를 전기나 화학물질 등의 자극을 주어 융합시키면 배아가 만들어진다.
4. 배아에서 줄기세포는 어떻게 추출되는가 배아를 3~5일 동안 배양하여 배반포기까지 이르게 한 후, 현미경으로 보면서 배반포기 배아를 둘러싸고 있는 영양배엽세포를 제거하고 내부 세포덩어리(내세포괴)만 남겨야 한다. 분리된 세포덩어리는 분화를 억제하고 증식만 계속하게 한다. 이를 위해 배양액과 양육세포가 담긴 세포 배양 용기에 담아 증식시킨다. 시간이 지나 세포의 크기와 밀도가 어느 정도 증가하면 조금씩 나누어 다른 용기에 옮겨 담아 증식시킨다(계대배양). 이 과정을 반복하면 분화되거나 죽지 않고 증식만 계속하는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 배양 첫 단계인 제1계대에서는 줄기세포로 자랄지 아니면 중간에 죽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기이며 따라서 진짜 줄기세포라고 부르지 않는다. 줄기세포를 확립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로 적어도 3개월 정도, 즉 6주(6계대)에서 8주(8계대) 정도 계속 살아 남아야 완전한 줄기세포라고 일컬을 수 있다.
5. 황우석 박사의 복제배아 줄기세포는 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가 황우석 박사의 2004년 2월 ‘사이언스’ 발표 논문은 인간 배아를 복제하고, 세계 최초로 이 배아에서 치료용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황 박사의 지적처럼 “이제까지 인간 배아를 복제해낸 경우는 있으나 복제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따로 배양하는 데 성공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줄기세포가 이식 치료시 거부반응이 발생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해 다시 배아줄기세포로 되돌렸으니 거부반응이 일어날 리 없다.
인간배아 복제는 2001년 미국의 ACT사가 가장 먼저 성공했다. 이 회사의 호세 시벨리 박사는 황우석 팀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후 난구 세포를 삽입해 배아를 만들엇다. 그러나 이 배아는 8세포까지 분열하다 죽어버렸다. 이후의 다른 연구들도 ‘마의 8세포기’를 넘지 못했다.
2005년 논문은 실제 환자 11명에서 치료용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했다고 밝혀 세계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황우석 박사는 10~56세의 남녀 척수손상 환자(9명), 6세 여자 소아당뇨 환자(1명), 선천성 저감마글로불린혈증을 앓고 있는 2세 남자 환자(1명)의 피부에서 체세포를 얻어 이전과 같은 치료용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다. 피츠버그대 섀튼은 2005년 논문 결과에 대해 ‘백신이나 항생제 발견에 맞먹는 의학계의 일대 사건’으로 규정했다.
6. 황우석 박사의 성공, 어떤 기술의 채용을 주장했나 사람의 난자는 표면이 다른 동물과 달리 매우 끈적끈적하다. 소를 복제하는 경우 미세유리관을 난자에 찔러 넣어 핵을 제거하는데, 이 방법을 사람의 난자에 적용하면 유리관과 난자가 달라붙거나 난자가 터져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황우석 팀은 난자에 미세한 구멍을 내고 압력을 가하는 ‘짜내기 기법’으로 핵을 뽑아냈다고 주장했다.
핵을 제거한 난자와 체세포의 핵을 융합시킨 다음에는 DNA 유전자를 수정란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재프로그램 과정’이 진행된다. 황우석 팀은 융합과 동시에 유전자를 재프로그램하는 기존 방법 대신 2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유전자를 작동시키는 방법을 사용, 동물의 배아복제와 맞먹는 25%의 복제 성공률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7. 스너피 복제는 과연 이뤄졌나 2005년 8월3일 황우석 박사는 세계 최초로 개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했다. 서울대를 뜻하는 ‘Snu’와 강아지를 뜻하는 ‘ppy’가 결합해 ‘Snuppy’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개는 모든 동물복제 중 가장 어렵다고 인식돼왔다. 개를 복제하려면 암캐에서 성숙한 난자를 추출해야 하는데 개의 난소에서 뽑아낸 난자는 항상 미성숙 난자였기 때문이다. 황박사 팀은 난소 대신 난관에서 성숙한 난자를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 복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개의 경우 아직 난자를 체외에서 성숙시키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생체 내에서 채취했다는게 당시 연구팀의 설명이었다. 논문을 실었던 네이처가 ‘스너피’에 대한 논문 조사에 들어간 것 역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네이처는 논문이 조작됐다는 정보는 없지만 줄기세포를 둘러싼 논란을 감안할 때 불확실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스너피와 체세포를 줬다는 ‘타이’의 세포질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할 예정인데 일치하지 않아야 체세포 복제가 입증된다. 그런데 황우석 팀의 논문에는 미토콘드리아-DNA 분석결과가 없어 스너피가 쌍둥이를 만드는 할구분할로 탄생했다는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8.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 과연 만능인가 황우석 박사는 2005년 5월 논문을 발표한 직후 “이제 작은 사립문 몇 개만 남아 있어 줄기세포 실용화가 많이 앞당겨질 것 같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과연 그럴까. 국내외 생명공학 전문가들은 줄기세포 확립 이후의 단계가 ‘사립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남아 있는 3개의 관문이 그야말로 ‘대문’이라는 것이다. ▲줄기세포를 원하는 장기의 세포로 분화시키는 기술 ▲암세포로 변하지 않는 건강한 줄기세포를 얻는 기술 ▲분화한 줄기세포를 신체에 안전하게 이식해서 오래 자라게 하는 기술 등 엄청난 난관이 남아 있다.
선천적으로 유전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신체의 모든 세포가 유전적 결함을 안고 있다. 이 환자의 세포를 떼어내 복제한다면 그 복제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 역시 동일한 유전적 결함을 갖게 된다. 이런 세포로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복제 배아 줄기세포는 혹 성공적으로 개발된다 해도 주로 후천적 난치병 환자에게만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이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가 갖는 근본적 한계다.
9. 척수손상 환자는 과연 일어설 수 있는가 신경세포는 일반세포와 달리 표면에서 축색돌기 하나가 길게 뻗어나와 다른 신경세포나 근육조직에 연결돼 있다. 운동이나 감각 신호는 축색돌기를 따라 전달되는데, 만일 축색돌기가 끊어지면 줄기세포로는 이 절단부위를 이을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다만 특정세포(올리고덴드로사이트)나 성장인자 등 ‘보조 요소’를 공급하면 축색돌기를 감싸는 얇은 막이 만들어지는 등 부분적으로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 최근 배아 줄기세포로부터 분화시킨 올리고덴드로사이트가 축색돌기를 감싸 막을 생성하는 것을 확인했다(연세대 김동욱 교수). 향후 환자에게 성공적으로 적용하면 용변을 보거나 조금씩 걷는 정도의 부분적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척수손상환자의 부모에게 ‘1년 안에 수술하자’고 했다는 황박사의 발언은 그래서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척수손상 환자가 정상인이 될 수 있는 줄기세포 치료법 개발은 아직 요원하다는 얘기다.
10. 성체 줄기세포는 복제배아 줄기세포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배아줄기세포가 발생 초기에 만들어지는 ‘갓난 아기’라면 성체 줄기세포는 ‘어른’에 해당한다.
성체 줄기세포의 주요 기능은 해당 장기가 손상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이 손상되면 간에 있는 줄기세포가 간조직으로 분화되면서 스스로 복구한다. 혈액을 만드는 조혈 줄기세포의 경우 당장 필요한 적혈구나 백혈구로 분화하기도 하지만, 이들을 다 써버려 없어지지 않도록 자기와 같은 줄기세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성체줄기세포는 조직을 재생시킬 세포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세포 공장’이자 ‘백업 시스템’이다.
최근에는 성체 줄기세포가 골수 뿐만 아니라 피부, 눈, 유방, 위, 장, 혈관, 근육, 간, 췌장, 신장 등 수많은 장기에 있다는 연구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복제배아 줄기세포와 달리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이미 분화가 완료된 줄기세포라는 점에서 적용 분야가 협소하다는 한계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배아줄기세포보다 치료에 적용될 수 있는 시점에 훨씬 가까이 가 있다.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 이식 수술을 하는 것도 성체 줄기세포 치료법 중의 하나다.
11. 복제 배아 줄기세포는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지 않는가 배아를 파괴하는 것이 생명윤리상 옳은 일인가, 복제배아가 복제 인간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은가 등 2가지가 이 논쟁의 핵심 쟁점이다. 배아 줄기세포를 얻으려면 배반포기에 이른 배아를 파괴해야 한다. 그런데 이 배아는 자궁에 착상시키면 이론상으로는 생명체로 성장할 수 있다. 충분히 ‘생명을 파괴하는 연구’라는 비난을 받을 만도 하다.
복제배아가 인간 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가 된다. 복제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켜 아이를 낳는다면 이것은 엄청난 문제가 된다. 복제인간 시대가 가져올 재앙은 현재 인류의 인식 수준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톨릭과 유림 등에서 이 연구에 반대하고 있다.
당사자인 황우석 박사는 복제 배아를 생명체로 보지 않는다. 핵이 제거된 난자는 생명체가 아니라 배양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복제인간에 대해서는 절대 태어나서도, 태어나도록 시도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정부가 인정하고 보증하는 분야로 선정돼 있기 때문에 현재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상태다.
<한기홍 객원기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