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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황금동굴’ 사실일까

입력 2005.08.23 00:00

부산 건축폐기물업체 지하에 금괴?…“도굴됐다” 주장에 검찰수사로 번져

[화제]일제시대 ‘황금동굴’ 사실일까

언론인 스털링 시그레이브가 저술한 ‘일본인도 모르는 천황의 얼굴’이란 책을 보면 자못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일명 ‘황금백합’ 작전. 이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중에 아시아 각국에서 금,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각종 보물과 유물을 조직적으로 약탈한 작전을 일컫는다. 작전을 주도한 인물은 히로히토 천황의 동생인 치치부 왕자로 소개돼 있다. 1970년대 필리핀 마르코스 정부가 인양한 보물선 나지이호도 치치부 왕자가 숨긴 172개 비밀벙커와 보물의 일부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패망 직전인 1945년 5월초부터 6월까지 자국의 전후 재건사업을 위해 중국에서 집중적으로 약탈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한다. 일본은 이렇게 약탈한 보물을 잠수함 26척을 동원해 부산항 군용 우암역 근처로 옮겨놓았지만, 연합군의 해상장악으로 일본 본토로 운반하기 어려워지자 엄청난 양의 보물을 부산에 그대로 숨겨놓았다고 한다.

역사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현재, 이 황금백합 작전에서 비롯된 소송이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론 소설이 아닌 실제상황이다. 문제의 발단은 부산 남구 문현동에 있는 건축폐기물업체 거창산업 부지,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창산업 지하다.

일본 재건 위한 ‘황금백합’ 작전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폐슬레이트와 골재, 그리고 포클레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창산업 지하에서는 금을 찾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어뢰창고로 사용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실제로 지하굴도 발견됐다. 그곳에서 금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 그 금 가운데 일부가 몰래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소문마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화제]일제시대 ‘황금동굴’ 사실일까

박씨와 틀어진 직후 독자적으로 발굴작업을 벌이던 정씨는 자천타천 ‘보물전문가’인 백모씨(48)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보물 발굴작업은 그때부터 활기를 띠었고, 마침내 2002년 3월 이들은 거창산업 부지 지하 16m 지점에서 거대한 수평굴을 발견했다. 정씨의 증언이다.

“조사결과 지하굴 입구에는 일본식 한자 세 글자로 안내판이 표시돼 있었고 굴 내부에는 가로 50㎝, 세로 20㎝ 크기의 황색 포대가 5층 높이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황금색 ‘골드’가 들어 있었던 겁니다.”

정씨 말에 따르면 문제의 시작은 황금이 발견됐다는 사실이었다. 이때부터 지하굴의 최초 발견자라 할 수 있는 정씨와 발굴팀을 이끌던 백씨 등이 발굴된 금의 처리를 놓고 이견을 빚었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정씨는 “2002년 3월 20일 지하굴 발견 이후 백씨 등이 100일간만 먼저 도굴하자고 제안했다가 내가 이를 거절하자 그때부터 나만 ‘왕따’시키면서 현장접근까지 막았다”면서 “그로부터 한 달 뒤 백씨 일당이 사유지였던 해당 부지를 매입하면서 치밀하게 도굴 계획을 꾸몄다”고 말했다.

현행 매장물 관련법에 따르면 일반인이 매장물을 발견했을 경우 우선 관할 경찰서에 신고한 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하도록 돼 있다. 경찰은 매장물 발견 신고가 접수되면 공고를 통해 통상적으로 1년간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래도 소유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 비로소 최초 발견자가 소유권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신이 발견한 굴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정씨는 같은 해 5월 20일 부산지법에 지하굴에 대한 이용및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하지만 백씨 등은 정씨가 가처분신청을 받아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정씨의 접근을 막았고 같은해 9월이 돼서야 지하굴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화제]일제시대 ‘황금동굴’ 사실일까

지하 16m지점에서 수평굴 발견

부산 지역 기자 등이 모인 이 자리에서 백씨 등은 지하굴에 묻혀 있던 것은 금이 아니라 잡석이었을 뿐이며 포대도 일본산이 아니라 15㎏들이 국산 한주소금 포대였다고 밝혔다. 즉 지하굴이 60여년 전 건설된 일본굴이 아니라 정씨가 ‘효자동 이발사’ 박씨와 함께 파다가 그만둔 바로 그 굴이었다는 주장. 잔뜩 호기심을 품고 현장에 나온 기자들은 실망한 채 돌아갔다.

정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나를 현장에 출입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뒤 이미 엄청난 양의 금을 파간 것”이라고 말한 뒤 “그렇지 않고서야 몇 달 동안 법원의 가처분신청까지 받아놓은 나를 못 들어오게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며 분개했다.

이때부터 정씨는 문제의 지하굴이 일제시대에 팠던 굴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일본이 판 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정씨가 판 굴이라는 백씨 등의 주장을 뒤엎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선 정씨가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땅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이력이다. 해당 부지의 토지대장을 살펴보면, 광복 6년 전인 1939년 4월에 500여 평 규모에 해당하는 이 땅의 소유권은 느닷없이 일본 도쿄 아카사카에 거주하는 한 일본인에게 넘어간다. 물론 그 전까지는 조선인들끼리 사고팔던 평범한 땅이었다.

정씨에 따르면 그때는 이미 어뢰창고 건설공사가 마무리될 시점이었다고 한다. 같은 해 9월 이 땅은 다시 일본목재공업주식회사로 명의가 변경돼 공교롭게도 중국에 대한 황금백합 작전이 마무리될 시점인 1945년 7월 3일 조선총독부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정씨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의 소유주가 갑자기 조선총독부로 바뀐 것은 지하에 일본이 감춰야 할 중요한 시설물이 있었다는 사실의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정씨가 지하굴이 일본 어뢰창고였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또 있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이 태평양전쟁희생자 유가족협회와 일제강제연행 한국생존자협회 등 일제 강점기 피해자 관련 단체들이 광복 직전인 1945년 5월 부산 문현동에 조선인 노무자 1000여명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해 매장됐다는 주장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제연행 한국생존자협회에 따르면 2003년 작고한 당시 노무자 진동식씨의 부인 권봉술씨는 사실진술서를 통해 남편 진씨가 1942년 강제로 징용당한 뒤 경남 진해를 거쳐 현재 거창산업 부지인 문현동 1219번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일제 어뢰공장 건설 발파기술자로 2년간 일했다고 밝혔다. 권씨는 진술서에서 “남편은 당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쪽에는 바다가,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낮은 산이 있는 지하공장에서 굴파는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면서 “당시 남편이 말한 일본군 지하공장이 바로 문현동이었다”고 말했다.

생존자협회의 선태수 회장 역시 “진씨 이외에도 일본군의 어뢰공장 노무자 집단학살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여러 건 접수돼 있다”면서 “당시 어뢰공장의 실체를 파악하는 작업은 일본군에 의한 집단학살 사실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유족들의 한을 푸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정씨는 기술사들이 현장을 탐사한 결과 갱도 굴착이 1945년 8월 15일, 즉 광복 이전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소견서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씨와 갈등을 빚고 있는 백씨 등은 터무니없는 음해라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우선 당시 발굴작업에 함께 참여한 거창산업 부지의 주인 정문균씨는 “처음에 정씨가 찾아왔을 때는 두달 동안 시간을 주면 특정 지점만 파고 들어가겠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마당 전체를 온통 헤집어 놓았다”면서 “발굴작업 당시 이 땅은 나와 백씨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었는데, 최초발견자 정씨가 한번씩 들어갈 때마다 우리 회사의 모든 작업을 중지하는 등 영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고 반박했다.

[화제]일제시대 ‘황금동굴’ 사실일까

“어뢰창고는 애초부터 없었다”

정씨는 또 “솔직히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을 때도 순전히 배려 차원에서 정씨 탐사팀을 수 차례나 지하에 들여보내줬는데 되레 우리가 도굴을 했다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라면서 “어뢰창고니 뭐니 하는 말들도 전부 허튼 소리”라고 일축했다.

땅주인 정씨에 따르면 최초발견자 정씨는 열심히 땅을 파내려 가다가 결국 굴을 발견하기는 했는데 그 굴은 수년전 정씨 본인이 박씨와 함께 팠던 바로 그 굴이었다는 주장이다. 길이 20m도 되지 않는 굴에 무슨 어뢰창고가 들어서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정씨는 마지막으로 “정씨가 하도 여기저기 송사를 벌여서 부산시경과 부산지검에서 당시 발굴작업에 참가한 인부 등을 대상으로 샅샅이 조사를 벌였지만 도굴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정씨에게 만약 1993년 박씨와 함께 팠던 굴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기만 하면 굴이 두 개가 되는 셈이니까 그 가운데 아무거나 하나를 일본굴로 인정해준다고 했지만 정씨는 이를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청난 양의 황금’을 놓고 발굴업자들이 벌인 싸움은 현재 지하굴의 굴착 시기에 따른 사기 여부와 도굴 여부로 확산돼 부산지검 동부지청에서 수사에 나선 상태다.

<부산/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