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2판4판]봉선화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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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2판4판]봉선화 ‘연정’

입력 2005.07.19 00:00

[시사2판4판]봉선화 ‘연정’

안녕하세요. 한국유치원 별반 보람이입니다. 오늘도 창밖에는 비가 내립니다. 장마라네요. 그런데 이렇게 매일 비가 오는데도 우리 집 여의도 아파트의 창밖에는 며칠 전부터 밤이면 한 아저씨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애틋한 연정을 표현하는 세레나데 의식이래요.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이상 참지못할 그리움을 가슴깊이 물들이고
수줍은 너의 고백에 내가슴이 뜨거워!
터지는 화산처럼 막을수 없는 봉선화 연정”

저 아저씨의 마음에 들 만한 여자라면 우리 여의도 아파트에 딱 3명이 있습니다. 잘난 멋에 혼자 살고 있는 위층 한씨 집안 딸, 아랫층 민씨 집안의 두 딸입니다. 그런데 한씨 집안의 딸은 아닌 듯합니다. 그 집 딸은요, 집에 돈도 많겠다, 학벌도 짱짱하겠다, 저런 아저씨를 좋아할 리도 없지요.

그렇다면 민씨 집안의 두 딸 중 하나일 것 같은데요. 첫딸은 얼마전에 이혼을 해서 외롭게 살고 있구요. 둘째 딸은 성격이 조금 진보적이어서 저 아저씨와 맞을지 모르겠네요.

이웃 아저씨들 이야기로는 저 아저씨가 2년 전에도 이곳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대요. 그때는 “저 들에 푸르른 풀잎을 보라”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요. 나름대로 멋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번엔 현철 아저씨의 ‘봉선화 연정’으로 곡목을 바꿨답니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이상 참지못할 외로움에 젖은 가슴 태우네…
울면서 혼자 울면서 사랑한다 말해도…
무정한 너는 너는 알지못하리, 봉선화 연정”

비가 오는 날 저렇게 애틋하게 ‘연정’을 표현하는 노래를 들으니 너무나도 애가 타서 어린 내가 봐도 가슴이 미어질 듯합니다. 저 정도면 누군가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무도 나가질 않네요. 위층 한씨 집 딸도, 아래층 민씨 집 두 딸도 기척이 전혀 없습니다. 노래 가사처럼 너무 무정한 사람들입니다.

민주국가에서 ‘연정’을 표현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는데 왜 우리 동네에서는 애틋한 봉선화 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제가 조금만 나이를 더 먹었더라도… 아저씨의 연정에 감격하며 맨발로 뛰어나갔을 텐데. 그렇게 하려면 음… 스물 한 살은 돼야 하니 스물 하나 빼기 여섯, 15년은 있어야 하네요. 그때까지 저 아저씨가 기다려 주려나…

<글 윤무영 그림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