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장관 ‘국민의 국민을 위한 개혁’ 천명… 정치적 중립 유지는 과제
‘희망천배 천정배.’
천정배 신임 법무부 장관의 네이버 블로그 제목이다. 6월 29일 취임한 천 장관이 앞으로 과연 누구에게 ‘천배의 희망’을 안겨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놓고 검찰과 경찰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천 장관이 누구의 편을 들어줄 것인가에 양쪽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천 장관이 민변 변호사 출신으로, 여당 원내대표로, 법사위 위원으로 검찰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던 만큼 검찰에는 불리할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추측이었다. 강금실 전 장관 시절인 200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천 장관은 “법무부 장관의 개혁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법무·검찰개혁을 위한 5대 기본방향’과 ‘검찰의 중립과 독립을 위한 10대 과제’를 내세웠다.
검찰보다 더 날카로운 논리
법무·검찰개혁을 위한 5대 기본방향에는 네번째로 ‘검찰권 남용에 대한 감시·통제’를 제시했다. 검찰의 중립과 독립을 위한 10대 과제는 네번째 기본방향에 대한 상세한 원칙을 나열했다. 평소 개혁에 있어서 원칙주의자로 ‘탈레반’으로 불렸던 천 장관이 이 원칙을 금과옥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최근 법률안으로 발의한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은 “천 장관이 원내대표일 때 부대표직을 맡았는데 옆에서 지켜봐도 개혁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라고 느꼈다”면서 “강금실 장관 이후 중단됐던 검찰개혁이 제대로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수사권 조정 역시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김승규 전 장관과 같은 답변을 하지 않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6월 21일 국회 법사위에서 “(검·경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국회로 가져가느냐”며 수사권 조정에 대한 국회의 개입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천 장관은 장관 임명 발표 직후 6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기자간담회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는) 국회가 결정권을 갖고 있고 (…)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상반된 입장을 밝혔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법사위)은 “천 장관은 국회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천 장관이 국회에 이 문제를 맡겨 둘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 의원은 또 “이미 수사권 조정 문제는 70% 정도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다만 법률로 할 것인지, 시행령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관행으로 놔둘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변 사법위원회 소속의 이병래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 문제는 국회에서 입법화하는 것이 옳다”며 천 장관의 주장에 동조했다.
여당 내에서는 천 장관의 날카로운 논리가 검찰의 논리를 압도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목포의 수재’로 불렸던 천 장관은 서울대 인문계열 수석 입학, 재학 중 고시 합격, 사법연수원 3위 졸업으로 모교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전설적인’ 인물로 각인돼 있다. 자서전 ‘꽁지머리를 묶은 인권변호사’에서 천 장관은 “사법연수원 성적이 3등”이라면서 “전두환(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을 수 없었다”라고 썼다. 판·검사 임용을 포기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한 그는 동기들 사이에도 이름을 날렸다. 변호사 시절에도 그의 법 논리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평. 때문에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것으로 비치고 있는 검찰조직의 논리를 일거에 깨뜨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강금실 전 장관의 재조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천 장관은 그보다 10배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열린우리당 우윤근 의원은 “검찰 출신이 검찰 조직을 잘 알 것 같지만 변호사들이 검찰조직을 더 잘 안다”고 말했다. 검찰조직을 잘 알고 있는 천 장관이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현이다.
실세 장관 통해 청와대 통로 기대
천 장관은 사법고시 18회 출신. 윗 기수로는 김종빈 검찰총장(15회), 서영제 대구고검장·김상희 법무부 차관·임래현 법무연수원장(16회), 대검찰청 정상명 차장검사·안대희 서울고검장· 임승관 부산고검장·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17회)이 있다. 동기로는 홍경식 대전고검장·홍석조 광주고검장 등 고검장급이 포진해 있다.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검찰은 법률상 중립의 위치를 지켜야 하는데 정치인이 검찰을 지휘하는 자리에 가면 되겠느냐”면서 “국민이 공감하는 개혁이 아니라 독선적인 개혁을 한다면 개악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과 야당의 우려와는 달리 천 장관이 새로운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검찰 쪽의 기대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검사 출신인 권영세 의원(한나라당)은 “지금까지의 발언을 볼 때 검찰조직에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수사권 조정 문제에 있어 청와대와의 통로를 갖지 못해 갑갑해하던 검찰로서는 오히려 더 좋은 여건이 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더라”고 전했다. 권 의원은 “개인적으로 보기에 검찰조직으로서는 천 장관의 취임이 유리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수사권조정팀장인 황운하 총경은 “수사권 조정 문제를 국회에서 토론해야 한다는 천 장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무조건 반색할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고 경계했다. 황 총경은 “실세 장관으로 검찰의 입장을 들어줄 가능성도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화합형 리더십으로 당근작전
여권에서도 천 장관의 변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지난해 말 원내대표직을 내던지면서 천 장관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 주위의 평. 우윤근 의원은 “원내대표직을 그만두면서 좌절했고 많은 것을 느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성호 의원은 “천 장관이 올해 많이 유연해지고 부드러워졌다”고 말했다. 천 장관이 ‘탈레반’이라는 별칭을 벗어던지고 ‘화합형 리더십‘으로 검찰조직을 감싸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강금실 전 장관도 처음에는 개혁을 외쳤지만 결국 검찰의 현실적인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우 의원은 “천 장관이 개혁적이긴 하지만 합리적”이라면서 “충분히 검찰조직의 수장으로 잘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원은 “천 장관이 수사권 조정과 공직부패수사처 신설 같은 채찍만 주는 것이 아니라 검찰조직에 당근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천 장관은 부쩍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원내대표 당시 같이 고생했던 원내대표단, 호남지역 의원, 민변 출신 의원들과의 교감을 넓혀 ‘천 대표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 아직 50대 초반인 그가 노무현 대통령 이후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검찰만큼 엘리트가 없다”면서 “그들의 지원을 얻고 국민로부터 신망을 얻는다면 차기 대권 가도에 날개를 다는 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