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텍사스대학 성악과 한상인 교수 모국 방문 공연

한국에서 함께 공연할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 한상인 교수. <한상인 교수 제공>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제’, 미국 보스턴의 ‘탱글우드 페스티벌’의 공통점은 교육과 연주회를 같이하는 음악제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형식의 국제음악제가 한국에서 처음 열릴 예정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성악 중심의 국제음악제인 ‘서울국제가곡제’(Seoul International Song Festival, 7월 13~8월 16일)이다. 세계 가곡제인 ‘아트 송 페스티벌’과 교육 프로그램인 ‘오페라 프로그램’이 동시에 열린다.

이번 가곡제에 참여한 교수진도 화려하다. 벨기에 브뤼셀 왕립 음악학교를 수료하고 19세에 카네기홀에서 데뷔한 케빈 클라스, 줄리어드 음대에서 무대연출을 맡고 있는 제임스 마벨, 피아니스트 유카 타카이 등이 참여해 세미나 및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1996년 한예종 입학 성악가의 길로
이들과 함께 당당히 이름을 올린 재미 한국인 교수가 있어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텍사스대 앨파소 캠퍼스에서 성악과 ‘독일어·프랑스어 딕션(발음법)’을 가르치고 있는 한상인 교수다. 그는 이번에 미국인 제자 8명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한국 가곡을 함께 부를 예정이다. 또 한 교수는 5월 30일 엘파소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제를 열어 제자들의 항공료와 여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을 진행하기로 했다. 미국 제자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한 교수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국제가곡제 양은영 총감독은 “한상인 교수는 성장사만으로도 입지전적인데, 한국 가곡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고맙고 감탄스럽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2남2녀 중 막내로 울산에서 자랐다. 건설업을 했던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생 때만 해도 풍족하게 살았지만, 중학생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가세가 기울었다. 말레이시아에 사업을 하러 갔지만 실패하고 병을 안고 돌아온 후에는 자식들의 학비 마련을 엄두도 못낼 형편이 됐다. 1989년 한 교수가 영남대 성악과에 입학했을 때 받았던 입학금이 집에서 받은 등록금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흔히 “음악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성악을 전공하고 교수가 되기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는 일은 항상 한 교수의 발목을 잡았던 어려움이다.

한 교수의 한국행에는 가족 모두 함께할 예정이다. 서울국제가곡제 스케줄이 끝나면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딸들과 함께 지방 교회를 돌면서 단출한 가족음악제를 열 계획이다.

대중가수가 되고 싶었던 그를 성악가로 이끈 사람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던 교회 신도들이었다. 그때 한 교수는 음악의 힘을 안 것이다. 1989년 영남대 성악과에 입학했지만, 학교 생활은 단 1학기만 할 수 있었다. 휴학하고 선교사 활동으로 2년을 보냈고, 학교로 돌아가는 대신 영어 과외·강사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를 성악가의 길로 다시 인도한 이는 단돈 160만 원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던 둘째누나다. 한 교수는 둘째누나에 대해 “영남대 성악과를 휴학한 후 성악가로서 공백이 꽤 길었는데, 그때 둘째누나가 나를 잡아줬다”면서 “누나가 대학에서 배웠던 발성법 등을 편지에 직접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나에게 자극을 줬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가 다시 본격적으로 성악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96년 한예종 음악원 입학 때부터다. 당시 한예종을 선택한 이유는 최현수 교수에게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최 교수는 수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성악도의 우상이 돼 있었다. 입학금과 등록금은 영어 과외·강사를 하면서 모았던 돈으로 충당했다. 그리고 2학년 때 친구 소개로 만났던 아내와 결혼했다. 한 교수는 “영어강사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부와 결혼이 가능했다”면서 “영어강사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 등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성악에 전념할 수 없었던 것이 지금도 아쉽다”고 답변했다. 한예종 음악원에 다닐 당시 그를 부르는 호칭은 ‘영어선생’일 정도다.

2000년 미국으로 가 음악에 매진
한예종 4학년 때 임웅균 교수가 수업시간 중 그에게 ‘엄마야 누나야’를 영어로 번역해보라고 했다. 임 교수는 번역한 것을 들은 후 “좋네, 좋아. 만일 미국으로 유학가면 한국 가곡을 미국 학생들에게 알려라”라고 조언했고, 오페라 앙상블을 지도했던 교수 역시 미국에서 성악가로 데뷔할 것을 권했다.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디션을 봤고, 그때 만난 한국인 교수의 권유로 공부를 계속하게 됐다. 한 교수는 “연주가와 교수를 함께 병행하는 것이 가족과 함께 나의 꿈을 이루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 교수는 유타 주립대학에서 1년 동안 강사를 마치고 일리노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텍사스대 엘파소 캠퍼스 교수로 임명됐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교수 임명 과정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한 교수는 “교수 임용 시에는 인터뷰, 교수법, 독주회 등을 통해 다 보여줘야만 한다”면서 “인터뷰가 매우 중요한데, 며칠 동안 학생·교수와 함께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며 사람을 알게 되는 시간이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공부와 강의를 병행하면서 겪었을 법한 고생은 상상할 수 있다. 한 교수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오페라, 오라토리오, 독주회 등으로 여러 무대에 섰다. 마술피리의 타미노, 잔니스키키의 리누치오, 카르멘의 돈호세 그리고 돈죠반니의 돈옥타비오 등으로 갈채를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교수와 성악가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

대학교수가 되면서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됐다. 자녀는 1남3녀. 세 딸에게 모두 취미로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한 교수는 “음악을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딸들에게 음악적인 ‘끼’는 있는 것 같다”며 웃는다. 한국에 자주 들어오지 못한 탓에 이번 한국행이 무척 기대된다는 한 교수는 7월 13일 영어로 강의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한국 가곡을 부를 무대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서울국제가곡제의 스케줄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지방 교회를 돌면서 ‘단출한’ 가족음악회를 열 생각이라고. 미국에서 성공한 한상인 교수와 파란 눈의 제자들이 함께 부를 한국 가곡의 하모니가 기대된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