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 789호

유럽은행의 금괴 탄생 경로 추적… 금광 캐는 아이들 인간 대접 못받아

최근 몇 년 동안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전 세계에 금 캐기 바람이 불었다. 미국 서부에는 신판 골드러시가 줄을 잇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금광 산업이 다시 뜨고 있다. 그러나 안정적인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는 금의 유통 이면에 처절한 아동노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AP통신은 6개월여에 걸쳐 서아프리카 최빈국 기니에서 스위스 제네바의 초대형 은행으로 이어지는 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 최근 보도했다. 아프리카의 어린 소년이 돌가루와 수은을 마셔가며 건진 금부스러기가 스위스 은행의 ‘표준형 금괴’로 변해가는 과정은 글로벌 경제의 흔하디흔한 단면 중 하나일 뿐이다.

기니의 시골마을에 사는 소년 살리우(12)는 이른 새벽 옷가지를 싸서 머리 위에 동여매고 아이들을 모으러 온 모집꾼을 따라나선다. 살리우는 같은 마을 소년 2명과 함께 일주일간 160㎞를 걸어 국경을 넘었다. 모집꾼은 금광에서 일하면 하루에 2달러(약 2000원)씩 준다고 했다. 플라스틱 샌들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멀리서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눈앞에 먼지바람이 자욱하다. 살리우가 도착한 곳은 말리의 금광마을 텐코토다. 원뿔 모양의 천막들 안엔 매트리스가 겹겹이 쌓여 있다. 10㎞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남자들과 날렵한 소년들이 30~50m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금 원광(原鑛)이 섞인 돌덩이를 캐내온다.

기니에서 말리로
살리우를 데려온 ‘보스’는 원광을 꺼내가고 남은 돌부스러기를 헐값에 사들인다. 보스가 고용한 어른들은 무쇠바퀴로 몇 시간씩 돌을 빻아 밀가루처럼 고운 가루로 만든다. 먼지가 온몸에 달라붙고 목구멍, 콧구멍에 들어간다. 살리우는 돌가루를 체로 걸러 플라스틱 통에 붓는다. 그 안에 수은을 부어가며 맨손으로 문지르고 휘젓는다. 살리우는 수은이 자석처럼 금가루를 끌어모은다는 것만 알 뿐, 뇌와 장기를 파괴하고 종양과 실명을 불러온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살리우의 통에서 M&M 초콜릿 한 알 크기의 금이 모인다. 보스는 이것을 받아들고 숯불에 넣어 수은을 증발시킨다. 은빛 알갱이가 화려한 금색으로 바뀌는 동안 수은이 타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식사 시간이 되자 살리우는 수은이 가라앉아 있는 흙탕물에 손을 한 번 헹구고 주먹밥을 받아 입 안에 넣는다.

말리에서 스위스로
살리우의 보스는 야쿠바 둠비아라는 중간상에게 금을 넘긴다. 둠비아는 크기가 작고 모양도 형편 없는 ‘부시 골드’(bush gold·관목지대 무허가 금광에서 캐낸 금)를 g당 19달러에 사들인다. 둠비아가 금 1㎏(약 32온스)을 거둬들이는 데는 약 한 달이 걸린다. 둠비아는 짚록(Ziploc) 비닐봉지에 금을 넣고 나흘 동안 오토바이로 달려 말리 수도 바마코로 간다. 바마코 시내 중앙광장에 있는 허름한 건물 2층 사무실에 둠비아 같은 중간상들을 70명가량 거느린 금 상인 판타마디 트라오레의 사무실이 있다. 말리의 중간상들은 트라오레를 비롯한 5명의 바마코 거상들에게 대부분 묶여 있다. 트라오레는 받아든 비닐봉지에 둠비아의 이름과 금 무게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인 뒤 g당 22.4달러를 지불한다. 1㎏을 넘겼으니 둠비아의 손에 떨어진 돈은 2만2400달러다. 둠비아는 다시 금을 모으러 텐코토로 돌아간다.

트라오레는 사무실 아래 제련소에서 금 부스러기를 녹여 울퉁불퉁한 금괴로 만든 다음, 말리의 금 수출을 독점하고 있는 바(Bah)라는 이름의 무역상에게 보낸다. 트라오레는 한 달에 약 80㎏의 금을 바에게 넘긴다. 바는 바마코에서 제네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가면서 한 번에 3~5㎏씩 금을 실어나른다. 2003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바는 총 800㎏의 금괴를 ‘수출’했다. 현 시세로 환산하면 2200만 달러 어치다. 아동노동에 대한 그의 입장은 간단하다. “나는 상인일 뿐, 금광엔 가본 적도 없다.”

바에게서 금을 사들인 것은 데카핀SA와 MI라는 수입회사다. 이제 살리우의 금은 현란한 국제 금시장의 일부로 편입된다. 데카핀의 경영자 유다 레온 모랄리는 “아동노동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주장했다. 데카핀은 세계 최대 금 제련소 중 하나인 발캄비SA에서 금을 표준형 금괴로 만든 뒤, 거대은행 UBS의 중개를 거쳐 판매한다. UBS의 레베카 가르시아 대변인은 “고객들의 금 거래내역은 비밀 유지 규정상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다른 세상의 아이들
살리우는 텐코토에서 6개월간 일한 뒤 40달러만 받고 함달라예라는 다른 금광촌의 또 다른 보스에게 팔렸다. 약속대로라면 360달러를 받았어야 하지만 보스는 음식값과 차(茶)값, 숙박비 명목으로 다 떼어갔다. 살리우의 소원은 “언젠가는 금으로 된 뭔가를 가져보는 것”이다.

유엔은 서아프리카 기니, 말리, 세네갈 등지의 어린이 금광 노동자가 10만~2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전 세계에 2억5000만 명에 이르는 2~17세 아동 노동자가 있다. 그 중에는 유혈분쟁에 동원되는 소년병도 있고, 아동 성매매 종사자도 있다. 동남아시아의 카펫공장, 폭죽공장 등 열악하기로 유명한 이른바 ‘스웨트(sweat shop)’에서 일하는 아이도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후진국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는 한 육가공회사가 이민자 자녀 57명을 불법고용했다가 당국에 적발됐다.

영국 사회학자 겸 저널리스트 제러미 시브룩은 ‘다른 세상의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18~19세기 산업화 시기 영국의 아동노동과 21세기 초반 방글라데시의 아동노동이 얼마나 닮았는지 파헤친다. 시기와 장소를 뛰어넘는 유사성은 명백하다. ‘수출’이 있기에 ‘착취’가 있고, ‘착취’가 있기에 ‘수출’도 있다. 가장 손쉬운 착취 대상은 아이들이다. 작은 몸, 작은 손으로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아이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소비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바마코의 수출상과 제네바의 수입상이 “그런 아이들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아이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을 ‘다른 세상의 아이들’로 내팽개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국제부┃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