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업무 부적응자’도 사회구성원이다

진짜 경제동반자라면 일을 못하는 것으로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이 실수를 해도 관용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조셉 추나라가 쓴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에서 가슴이 먹먹한 구절을 본 일이 있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착취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착취도 못 당하는 사람이다.” 불행하게도 2015년이라는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으로, 그것도 일을 못 하는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기왕 입과 항문을 달고 태어났으면 먹고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다행히 근대가 지나고 비교적 문명화된 사회를 살고 있다 보니 일을 못 해도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8월 17일 한겨레신문의 한 기사를 읽고 아연해지고 말았다.

이 기사가 실린 게시물 댓글에는 “그래, 우리 다 자르고 너희끼리 행복하세요”라고 달려 있었다. 저런 말을 하는 분께서 산업통상자원부의 장관씩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명성’을 의심하게 되고 말았다. 이렇게 당연한 말을 또 해야 한다니.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입장
2015년 8월 17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세종시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노동시장도 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 임금피크제는 필연적으로 해야 하며, 아울러 업무 부적응자에 대한 공정한 해고를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바가 있다.

우리는 윤상직 장관이 그리도 ‘공정하게 해고하고 싶어할’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면지를 생산하고, 오타를 내고, 메일 보내는 양식을 까먹고, 법인카드랑 개인카드를 헷갈리고, 서비스를 하면서도 영 잘 웃지를 못 하고, 결재서류에 0을 하나 덜 찍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장에서 끊임없이 혼나고, 까이고, ‘쫑크’ 먹고, 시무룩해진다. 그리고 윤상직 장관 같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업무 부적응자’라는 딱지를 붙일 것이다.

기업을 비롯해서 모든 조직은 잘못될 가능성을 계산해서 계획을 짠다. 잘못될 가능성은 모든 상황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하지만, 실수가 없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기계가 될 수 없고, 심지어 그 기계조차도 때때로 고장이 난다.

무언가를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어떤 실수라고 해도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바로 그 실수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인간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일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들이 있다. 혼나고 돌아와서 사무용지 한편에 하는 드로잉, 업무와 업무 사이에 틈틈이 쓰는 소설, 주말마다 하는 축구. 하지만 잘하는 것이나 하고 싶은 것만 해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진작부터 세상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기업에 필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주어진 일을 잘 해냈을 때 우리는 만족감을 느낀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도 가진다.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윤상직 장관이 필연적으로 해야 한다는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지키게 해주는 대신 임금을 깎겠다는 것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면 정년을 지킬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제도를 필연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노동시장이 가진 문제의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고 있다.

[…]

진짜 경제동반자라면 일을 못하는 것으로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이 실수를 해도 관용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사소해 보이는 삶들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우리도 안다. 효율성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비용으로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윤상직 장관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업무 부적응자’라는 비용이 아니다. 여러 실수를 저지르면서도 결국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는 사회구성원이며 인간이다.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