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이 놈의 배려’ 여성 흡연자의 눈치보기

직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흡연지대의 변두리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 자신의 본모습을 여러 가지로 감춰야 한다.

처음 흡연자라는 사실을 밝혔던 것은 소수의 상무집행위원들이 참석한 술자리에서였다. 집에 가는 길에 상사가 담배를 입에 물었고, 술에 많이 취한 나는 조금 주춤거리면서도 슬금슬금 다가가 “저도 한 대만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을 걸었다. 그는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나 스스럼없이 담배 한 대를 뽑아서 내게 건넸다. 출근한 지 3개월쯤 됐을 무렵이었고, 상사가 바뀐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상사는 내게 담배를 주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 보면 뒷말 나오니까 우리 앞에서만 피워.”

나는 그 말을 지금껏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그 때문에 가끔 꽤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도 하지만. 물론 그건 모두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그냥 멍한 눈을 하고 그 사람들을 지켜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영화 <바더 마인호프> 초반에 아버지와 함께 담배를 피우던 독일 여성을 떠올리면서.

남성들이 많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여성은 결국 남성들에게 천사의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나는 이 지면에서 투덜거린 적이 있다. 잘 웃고, 상냥하고, ‘힘든 일을 하고 돌아온’ 남성들을 명랑하게 맞아주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일들을’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여성. 그런 여성의 이미지와 흡연은 아무래도 별 상관이 없다.

대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니 나의 끽연력(?)은 어언 10년이 다 되어 간다. 자취를 하고부터는 재떨이로 삼을 그릇을 찾는 것, 혹은 재떨이를 사는 것, 집 앞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담배를 피울 만한 공간을 찾는 것은 내게 매우 필수불가결한 일상이었다. 그런데도 직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흡연지대의 변두리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직장에 다니기 전에도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때는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때로 직장과 좀 떨어진 곳으로 외근을 나가서 담배를 빼어 물라치면, 사무실들이 모여 있는 직장가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 주변에는 반드시 재떨이나 쓰레기통이 있을 것이므로, 나는 낯 모르는 그 사람들과 섞여서 담배를 무는데, 그 안에는 당연한 듯이 여성의 모습은 없다. 그 근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흡연 여성들도 외근을 나갈 때면 어딘가에서 모르는 얼굴들 사이에 섞여 담배를 물겠지.

어느 날부터인가 오후 6시 이전에 옥상에서, 문 앞에서, 계단에 앉아서 담배를 물고 있는 남성들을 보면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들의 표정은 늘 아무렇지 않게 권태롭다. 어떤 불안도 일단 담배연기 속에 사로잡힌 그들을 공격할 수는 없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현대인들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다들 누리는 것’을 빼앗긴 사람의 눈에는 그 모든 게 굉장한 권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퇴근길에 버스에서 내리면 그제야 천천히 담배를 문다. 친구인 남자애에게 담배 문제를 투덜거렸더니, 그는 “여자애들은 담배 피우면 안 되고, 상냥하고 착해야 되지만, 남자애들은 술 잘 못 따르면 안 되고, 짜장면 하나 시키면 군만두 서비스로 세 개 받아와야 돼”라는 더 서러운 대답을 돌려주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가식적인 게 아니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문구를 읽으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리는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서 자신의 본모습을 여러 가지로 감춰야 한다. 화가 난다고 눈앞에서 욕설을 퍼부어도 안 되고, 속상하다고 사무실 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울음을 터뜨려도 안 된다. 그러면 젊은 여성인 내가 흡연하는 것은 그 수많은 결들 중에 어디쯤에 있을까. 남들 다 피우는 걸 보면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얼마나 참는 게 일을 잘하는 걸까.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직장에서 내가 흡연하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다섯 명 정도다.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는데 문자메시지가 도착할 때가 있다. [옥상에암도없다] 그러면 나는 주머니에 담배를 슬그머니 집어넣고 옥상으로 뛰어올라간다. 이 놈의 ‘배려’가 나한테는 영 적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