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메르스 괴담’ 서사 구조는 어떻게 자라는가

희생자가 있고, 사건의 추이가 불분명하고, 소수만 정보를 공유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던 집단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때 나와 같은 대중의 이성은 쉽게 마비된다.

멍청한 짓을 했다. 밤새도록 한 커뮤니티의 공포 게시판에 올라온 괴담들을 최근 순으로 다 읽어 내려가다 한숨도 잠을 못 이뤘다. 괜히 현관문을 잠그고 빗장을 걸고 나서도 냉장고에 혼자 물을 먹으러 갈 수가 없어서 한 시간가량을 목말라하며 덜덜 떨었다. 고양이가 우는 소리에도 비명을 지르면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러다가는 출근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잠을 이뤄야만 했다.

나는 어릴 적에 <토요 미스터리 극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건 텔레비전 속에서만 있는 일이야, 실제로 저것들이 나와 맞닥뜨릴 일은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세뇌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괴담들의 서사 구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유행할 다음 괴담은 어떤 형태일까 같은 상상까지 해 가면서. 물론 그러다보니 결국 잠은 못 잤다.

괴담이란 형태의 이야기들은 특별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찬찬히 훑어보다보면 근거가 희박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이 두려운 이유는 분명하다. 괴담 속 가해자들은 한(恨)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한이 있는 쪽이 더 무섭다. 그 원한은 대체로 매우 광범위하고 사회적이어서 어떤 개인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을 수가 없다. 한은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타자에게 무작위로 화살을 돌린다. 입이 찢어진 빨간 마스크가 ‘너도 똑같이 해 줄까?’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을 마구 잡아 찢듯이.

괴담 속 사회는 폐쇄적이다. 괴담 속에서 일본 정부는 고베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미리 예견한 지질학 교수를 납치하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비밀을 본 외부인을 살해한다. 이렇게 폐쇄적인 데에는 당연히 타자를 희생해서 자신을 보호해야만 하는 이기적인 체제가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내수가 줄어들고, 마을에 저주가 내리고, 자신들의 죄가 낱낱이 밝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주 ‘정상적으로 보이는’ 집단은 끔찍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희생시켜 왔다.

그렇다보니 괴담 속에서 문제는 언제나 임시방편으로 봉인되고, 실체는 불투명해서 모든 상황이 정리된 다음까지 도통 알 수가 없으며 무엇보다도 읽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똑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남겨놓는다. 나도 내가 의식하지 않는 많은 ‘정상적으로 보이는’ 집단의 일원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가해가 일어나고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즉,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양들이 괴담이라는 서사를 구성하는 셈이다.

졸린 눈으로 출근을 해서 대충 포털의 뉴스들을 살펴보다가 ‘메르스 괴담’이라는 글자를 굉장히 많이 발견했다. 어디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더라, 어디에서 휴교령이 내렸다더라, 어느 병원에서 확진 환자들을 방치했다더라…. 정부는 메르스 괴담 최초 유포자에게 단호한 처벌을 하겠다고 하고, 어느 신문은 사람들이 시민의식이 부족해서 괴담을 퍼뜨리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고도 한다. SNS에서는 자신이 메르스 증상이 있는 것 같아서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일반인은 검사받으실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대답밖에 못 들었다는 글이 도는 것을 보았다. 정말일까. 물론 나는 실제로 걸어보지 않았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근거 없이 했다. 희생자가 있고, 사건의 추이가 불분명하고, 소수만 정보를 공유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던 집단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때 나와 같은 대중의 이성은 쉽게 마비된다. 그 순간부터 괴담은 일을 잘해보려는 사람들도 잘할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을 숙주로 삼고 자라난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내가 일하는 노조에서는 사람들을 많이 접촉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전염병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조합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기로 결의했다. 급하게 마스크를 구입하다보니 근처 약국을 모두 뒤져야 했다. 막상 사온 마스크는 색깔이 이것저것 뒤섞여 있었다. 사측에서는 마스크 지급을 못 하게 하면서 하얀색 마스크가 아니면 고객들이 불쾌해 할 것이라고 했다. 메르스에 걸린 직원을 마주하는 것보다는 불쾌감이 덜할 거라고 신경질을 내고 나서,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괴담의 서사 구조는 바로 이렇게 생긴 것이다.

<이서영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