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우리는 아이가 아니다” 순종을 강요말라

‘임금은 용돈.’ 노동자를 훈육하는 보상과 체벌의 체계 또한 ‘노동자는 아이’라는 은유로부터 도출된다. 임금은 말을 잘 들은 아이에 대한 보상이다.

일못유니온을 만들기 전까지 ‘노동’은 나와는 거리가 있는 주제였다. 내가 노동현장에서 튕겨져 나온 것이 그룹을 만든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노동 이슈를 다루는 사람은 내가 아닌 민주노총이나 고용노동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나는 그저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에야 그들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일못’으로 인한 자괴감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다. 많은 젊은 노동자들에게 ‘견딜 수 없는’ 상황이란 그저 (아마도 생계나 가족부양 등의 이유 때문에) 조금씩 뒤로 미뤄두고 있을 뿐이지만, 언제나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낭떠러지 옆으로 난 좁은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대체 우리가 느끼는 자괴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의 실마리를 말실수처럼 나온 한 단어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계기는 한 노무사와의 대화였는데, 그는 고용주들의 입장을 인용하며 “애들이 말을 잘 안 듣고…”라는 문장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경험을 했다. 왜 직장은 우리의 결과물을 검사하는가? 왜 직장 상사들은 우리를 혼내나? 왜 우리는 직장 상사와 함께 술을 마시고 등산을 가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 문장 안에 다 담겨 있었다.

‘노동자는 아이.’

조지 레이코프라는 언어학자는 인간이 ‘개념적 은유’라는 것을 사용해서 생각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한 개념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유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논쟁은 전쟁’이라는 은유를 통해 논쟁이라는 과정에 임한다. 그래서 논쟁에는 방어, 공격, 승리가 존재한다.

나는 ‘노동자는 아이’라는 은유가 우리의 노동을 규정하고 있다는 혐의를 갖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나이 든 상사들은 직급이 낮은 노동자들에게 쉽게 반말을 쓴다. 직급은 다른 노동자가 자신에게 커피를 타 오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상사의 지시는 사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따라야 한다. 이것은 정확히 우리 사회의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이다.

‘임금은 용돈.’

노동자를 훈육하는 보상과 체벌의 체계 또한 이 은유로부터 도출된다. 임금은 말을 잘 들은 아이에 대한 보상이다. 이것이 인센티브의 도덕적 근거가 된다.

‘월급 루팡’이라는 자조적 표현의 근거도 여기에 있다.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는 부모의 소유물을 훔치는 아이이고, 이런 아이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금전적 박탈을 통한 훈육.’

직장에서의 벌은 금전적 박탈로 표현된다. 많은 직장에 ‘지각 벌금’이 존재한다. 이것은 불법이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내야지’라는 생각도 일반적이다.

승진 누락을 통한 임금인상률 축소 역시 훈육방법의 하나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우리는 말 잘 듣는 아이들로 자랄 것을 요구 받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에 대한 기본적 은유가 ‘노동자는 아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법을 이해하기 힘들다. 법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휴수당, 연차에 대한 보장 등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불성실한 아이’에게도 똑같이 주는 것은 오히려 부도덕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은 ‘계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한다.”(근로기준법 제2조 4) 법은 노동을 거래로 보고 있지, 새로운 부모자식 관계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좋은 거래에 요구되는 것은 순종이 아닌 공정함이다. 노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은유가 ‘법대로’ 바뀐다면 일못들의 자괴감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이렇게 외쳐보자.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아이가 아니다!”

<여정훈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