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우린 편의점서 ‘허기진 마음’을 채운다

저렴한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고 해서 내 인생마저 저렴하지 않다는 위로, 밥 한 공기 같은 든든한 격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일못유 편의점’에서 만나자. 만나서 일상을 나누며, 서로를 토닥이자.

얼마 전 골목 입구에 편의점이 생겼다. 깊은 밤 버스에서 내려 골목에 들어서면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그들을 인도했던 별처럼 편의점 불빛이 방긋거린다. 그 빛을 따라 걷다 뭐에 홀린 듯 편의점 문을 연다. 지루한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알바 청년이 스프링처럼 일어나 맞이한다. 딱히 뭔가 필요해서 들른 것은 아니다. 편의점에 들어선 순간 뭔가 필요해졌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무엇이든 집어들고 계산대 앞에 선다. 달랑달랑 봉다리를 흔들며 집으로 향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심지어 방금까지는 피곤에 절어 있었는데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사이 멀쩡해진 것 같기도 하다.

소설가 김애란은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 에서 편의점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어떤 안심이 드는 건,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 그래! 방금 내가 산 것은 배고플 때를 대비한 컵라면과 내일 아침에 먹을 대용량 요구르트와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스티커가 들어 있는 빵이 아니다. 나는, 내 소중한 일상을 구매한 것이다.

한동안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일못유) 페이스북 그룹에 ‘편의점 놀이’가 유행했다. 누군가 G 편의점에서만 파는 PB(Private Brand) 상품인 특정 컵라면을 언급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룹 멤버들은 너도나도 그 컵라면 인증 숏을 올리며 즐거워했다. 또 다른 누군가가 딸기 샌드위치 사진을 올리니, 이번에는 딸기 샌드위치 인증 숏과 시식 평이 봄날 꽃망울 터지듯 올라왔다. 그러다가 누군가 ‘그 컵라면은 1분20초 정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맛있다’는 고급 정보를 제공하니, 그대로 따라 해본 이들의 간증이 이어졌다. 태초에는 G 편의점 ‘컵라면’뿐이었지만 이제는 각 편의점에만 있는 PB 상품 ‘전도 대회’가 열렸다. 각 편의점 상품들을 비교·분석하며 요즘 인기 있는 대용량 요구르트의 경우 G 편의점과 C 편의점 중 어느 편의점 것이 더 맛있냐는 논쟁도 벌어졌다. 마더혜레사 도시락과 혜리 도시락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도 이어졌다. 즐거움이 팝콘 터지듯 폭발하는 풍경을 지켜보며 ‘우리가 생각보다 편의점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김애란의 표현처럼 편의점은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제와 같지만, 조금은 다르고 싶은 일상을 구매하며 외로움으로 허기진 마음을 채우고, 야근으로 고단했던 몸의 빈 공간을 추슬렀을 것이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들고 나온 봉다리에는 컵라면과 맥주가 아니라 한 줌의 위로와 용기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상의 의미를 편의점은 속 깊고 친절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나만 야근하다 지쳐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고, 맥주와 문어다리로 ‘셀프 토닥’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일못유에 접속하니, 사실 우리는 편의점에서 한 번쯤 만났을 법한 사이였던 것이다. 그런 동질감과 반가움이 ‘편의점 놀이’를 통해 일못유 타임라인에 넘실거렸다. 익명의 개인들이 각자도생하는 도시에서, 내 몸 하나 누일 곳조차 만만치 않은 타인들의 공간에서 우리는 그렇게 편의점이라는 키워드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안도했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그러다 문득, 편의점은 어쩌다 우리 일상이 되었나 궁금해졌다. 많은 사회적·개인적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경제성과 편리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 빠듯한 가계에 도움이 될 것이며, 어떤 이는 시간을 아끼는 차원에서 편의점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편의점이 일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일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렇게 깔깔거리며 공유하는 일상을 통해 우리는 또 한 걸음 내디딜 한 줌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저렴한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한다고 해서 내 인생마저 저렴하지 않다는 위로, 밥 한 공기 같은 든든한 격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일못유 편의점’에서 만나자. 만나서 일상을 나누며, 서로를 토닥이자. 편의점 주소는 www.facebook.com/groups/1motU

<오수경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