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인간은 감정의 동물, 슬픔에 둔감해야 하나

게임처럼 마음에 만능키를 사용해서 슬픔의 수치를 줄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게 인간과 기계의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고양이가 죽었다. 그가 숨을 거둔 곳은 동물종합병원이었다. 고양이는 반쯤 입을 벌리고 반쯤 눈을 뜨고 죽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냥 하고 울 것 같아서 나는 식어가는 고양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때 수의사가 들어왔다. 수의사는 무어라 말을 못하고 날 바라보았고, 나는 수의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 순간 수의사는 울음을 터뜨렸다. 수의사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깊이 절망하고 있던 나는 죽은 고양이 곁에서 아득하게 봄바람을 느꼈다.

“죄송해요, 제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의사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객관적으로 상태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 객관적 사실을 이들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수의사가 일을 못했기 때문에 크게 위로받았다. 많은 죽음을 겪을수록 의사 역시 죽음에 대해 더 객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죽음은 보편적인 동시에 개별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수많은 고양이 중 내 고양이의 죽음이었다. 수의사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내 고양이의 죽음에 특별한 존재로 뛰어들었다.

모든 고양이의 죽음을 고통스러워하며 눈물 흘리는 수의사는 어느 순간 그 고통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고통을 매순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의사는 자신의 감정을 일부 가둬놓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비단 의사에게만 국한되는 특수한 일이 아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모두 둔감해져야만 한다. 누구나 평소에 하는 업무들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일정한 고통이 있다. 고용에 대한 불안, 경제상황에 대한 불안, 혹은 상사의 모욕, 부당한 대우. 이 수많은 것들을 순간마다 예민하게 감각한다면 인간은 모두 미치고 말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일상적이면서 구체적이고, 우리는 모두 오늘의 한 끼를 지켜내야만 한다.

고양이의 장례를 치르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고양이 장례식 하느라 월차 낸 사람”이라고 날 놀리는 사람들에게 나는 끝내 웃어 보이지 못했다. 아주 쉽게 “고양이 살았어요, 죽었어요?”라고 묻는 무신경한 얼굴 앞에서 말문이 막혀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는 일을 잘한다는 것은 ‘기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기계는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손을 떨지도 않으며 무언가를 잊어버리지도 않지만 나는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자신의 고양이가 죽어도 모든 임무를 사무적으로 매우 쉽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게임처럼 마음에 만능키를 사용해서 슬픔의 수치를 줄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게 인간과 기계의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은 아무리 자신을 도구화하려고 해도 완전히 도구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불완전하기 때문에 도구로서 완벽하게 전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컴퓨터를 포맷하듯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고양이를 떠나보내 본 지인들은 1년은 어찌할 수 없이 괴로울 것이니 받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밥도 잘 먹고 까르르 웃기도 하지만 슬픔은 여전히 내 주변을 공기처럼 떠돌아다닌다.

재앙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재앙이 빨리 끝나기를 기대한다. 나 역시 그랬다. 이 재앙이 만성적으로 내 주변에 있으리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내가 둔감해지기를 기대했고, 이 상황을 감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재앙은 객관적인 사실이며 우리는 그 재앙에 흔들리는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그런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때때로 타인의 슬픔에 대해 울음을 터뜨리는 ‘일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1년. 나는 이 슬픔이 1년 후에는 비교적 잦아들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세상에는 제대로 애도조차 거칠 수 없는 만성적 재앙이 생긴다. 사실 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슬픔이 폭풍처럼 자신을 주먹질하는 것을 느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만성적 재앙을 견디지 못하여 서서히 피해자들에게 무관심해지거나 식어버린 동정심으로 우두커니 지켜보고, 누군가는 슬픔에 대고 폭언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시험하며 다시 4월 16일이 돌아오고 있다.

<이서영 일못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