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이공계 전문서적 출판사 백일승 대표 “100세 시대 인생 다모작 이공계가 유리”

박근혜 대통령도,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도 다 이공계 출신이다. 지난해 100대 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전공을 조사해 보니, 이공계 출신이 절반 가까운 48.6%로 가장 많아 상경계 출신을 앞질렀다. 삼성은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서 85%를 이공계로 뽑았고, 현대자동차는 아예 이공계만 뽑았다.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전화기’(전자·화학·기계공학)는 대세란다. 이제 이공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온 것일까.

벤처 1세대인 백일승씨가 최근 <바보야, 이제는 이공계야>란 책을 펴냈다. IBM 임원 출신으로 20년 전 ‘프리스타일’ ‘레드문’ 등의 온라인게임으로 유명한 제이씨엔터테인먼트(현 조이시티)를 창업했다. 게임업체로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을 할 만큼 성장시켰고, 2년 전 635억원을 받고 넥슨에 지분을 매각해 화제가 됐다. 현재 ‘더하기북스’란 이공계 전문서적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백 대표는 “현재 이공계 인플레이션 현상이 진행 중”이라면서 “개인적으로는 행복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효율적이지 못한 이공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해법을 제안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이공계 전문서적 출판사 백일승 대표 “100세 시대 인생 다모작 이공계가 유리”

이 책을 쓴 동기가 뭔지요.
“저도 이공계(서울대 조선공학과) 출신이지만 주변의 이공계인들이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대부분 ‘적성에 안 맞는다.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사회·경제적으로는 이공계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고 이공계 인력 양성에 투자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공계 인재 양성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효율적이지 못한 이공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해법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이공계가 진짜 사회에서 푸대접을 받습니까. 오히려 정부에서도 이공계 장려 정책을 발표하고, 기업에서도 이공계를 우대하는데요.
“저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인플레이션 현상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질 가치보다 교환 가치가 더 큰 세상이라는 거죠. 이공계 기피현상과 우대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선 고등학생의 경우 문과가 60%, 이과가 40%입니다. 사회 수요는 이공계가 더 많죠. 대학 졸업생이 대기업에 취업할 때 인문계열은 25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답니다. 우리나라 인재의 플로(flow), 즉 흐름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국가경쟁력도 약하고 이공계 인재도 행복하지 못한 겁니다. 이공계 인플레이션 현상을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것도 그 때문입니다.”

왜 이공계의 경우 대학 진학이나 직장 선택 등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직업은 안정성과 연속성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성장 일변도에서 성숙기로 가면서 여러 기회가 줄어들고 있죠. 안정된 직장을 찾다 보니 고교생들도 90%가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려 하고 이공계를 나와도 국립연구원 등 공무원을 원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우수 인력 중 10%만 의대에 가고 나머지 90%는 이공계를 비롯, 순수학문에 매진했는데 말입니다. IMF 외환위기 때와 몇 년 전 국제 경제가 휘청거릴 때 기업 연구소가 가장 먼저 문을 닫거나 인원을 감축하는 것을 체험했으니 개인의 선택을 탓할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공계가 답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요.
“미국의 자료에 따르면 100세 시대에는 7개 이상의 직업을 체험하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먼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만 해도 일생에 세 번의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학교 졸업 후 첫 직업을 갖고, 45세 무렵에 두 번째 직업에 도전하고, 65세에 노후를 위한 직업을 새로 찾아야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가 이공계만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다양한 기회를 베풀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직업을 가지려면 이공계를 선택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리합니다. 대학에서 수학이나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에 대학원에서 경영학이나 심리학 석사를 따거나 마케팅 분야에서 일할 수 있어도, 국문과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에 컴퓨터기술 분야 공부를 하거나 직장을 찾기는 어렵거든요. 직장이나 직업은 사회와 당시 산업의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데, 현재 대기업이 이공계를 선호하는 이유는 IT 분야의 발달에 따라 그 분야의 인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이공계에서 실력을 다진 후에 더 폭넓은 체험을 하기를 권하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을 바꾼 영웅들은 이공계 적성이 많았어요.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경우도 분명 이공계적 통찰력의 소유자였고, 당시 집현전 학자들도 탁월한 이과형 선비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덕분에 우리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우리 글자를 갖게 되었고요.”

이공계 적성은 어떻게 찾나요. 대부분 수학만 잘하면 이과나 이공계에 가는데요.
“저도 이공계 적성보다는 인문계 적성이 더 맞습니다. 수학도 썩 잘하지 못했지만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어요. 수학이나 과학 적성은 사물을 이해하는 수단일 뿐이고, 일정 정도의 노력만 하면 따라갑니다. 일반적 이공계는 수학의 원리를 공학에 적용할 능력만 있으면 되고, 요즘은 전문가들이나 컴퓨터가 다 해결해줍니다. 직장에서는 수학적 능력보다 얼마나 성실히, 열심히 일하고 인간관계가 폭넓은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입니다. 이 사회의 0.01%의 천재만 해결할 어려운 수학원리를 왜 보통 사람들이 따라하려다 열등감에 빠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공계 출신들 가운데 취직해서도 그 분야가 적성에 안 맞는다며 퇴직하거나 특히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더군요.
“능력과 지식을 동일하게 보는 것, 이것이 이공계 출신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흔히 범하는 오류입니다. 이공계인들은 전공분야의 지식이 많으면 능력도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상 지식과 능력은 별 관계가 없습니다. 능력은 자신의 자리에 맞춰 개발돼야 하는 거죠. 따로 그 능력을 키우지 않았다면 그 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거죠. 이공계인들이 승진에서 탈락하는 것은 특별히 그 회사나 조직에서 이공계인들을 기피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직을 수행할 수 있는 힘, 리더십이나 조직 관리력을 포함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능력은 경험을 통해 키워지는 것입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데, 이공계인들은 자신의 분야나 프로젝트에만 너무 집중하니 리더십을 잘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전 스스로 신계몽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창의력·지도력도 경험과 훈련을 하면 다 됩니다. 우리 회사에서 한때 주간 사장 제도를 만들어 직원들이 돌아가며 일주일간 사장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게임 개발만 하던 이들이 사장이 되니 마케팅·영업 분야도 신경쓰게 되고, 그 가운데 15명이 창업을 했습니다. 능력도 훈련입니다.”

훈련을 혼자 하기는 힘들죠. 운동도 트레이너가 도와줘야 실력이 배가되지 않습니까.
“직원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데는 상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창의력을 발휘할 질문을 제대로 하고, 바른 지시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 거야. 당신이 실행해봐’라고 하면 주눅이 들어 못합니다. ‘무책임하게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진 말에서 대단한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게임의 경우에도 게임 개발자보다 때론 경리를 보는 아가씨의 아이디어가 탁월한 경우가 있거든요.”

창의력은 결국 창조경제의 원천일 텐데, 백 대표가 생각하는 창조경제는 어떤 것인가요.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정체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만.
“지금 정부가 일자리 창출, 국민들의 먹거리 창출을 위해 고민한 흔적은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거창한 개혁과 혁명보다는 현실의 상황들을 잘 파악해 잘 엮어내는 것이 창조경제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것들끼리 잘 연결하는 것이 가장 쉬운 창조경제의 시작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엄청난 혁명가로 보이지만 사실 그가 개발한 스마트폰을 보면 그걸 구성한 것들은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휴대전화기의 기능은 기존의 휴대전화기에서 가져온 것이고, 그 외의 많은 기능은 대부분 기존의 컴퓨터에서 사용되던 기술들이에요. 다만 그의 창의성이 눈에 띄는 것은 컴퓨터에서만 활용되던 기술을 휴대폰에서 사용하게 만들어준 거죠. 기존에 있던 기술을 재조합해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낸 것이 스티브 잡스를 현대의 가장 창의적 인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창조경제를 위한 방안이 있습니까.
“저는 ‘신 10만 양병설’을 주장합니다. 국방이 국민의 의무인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공계인들이 대체병역으로 대기업만 가려고 하는데요. 해마다 전공과 학력을 불문한 컴퓨터프로그래머 2만명을 발굴해 5년간 훈련시키면 10만명의 탁월한 컴퓨터프로그래머가 탄생합니다. 1년에 2만명 가운데 10%인 2000명은 국방부에 근무시켜 사이버 전투력을 증강시키고, 나머지는 2명씩 9000개의 기업에 보내 소프트웨어 인력으로 육성하는 거죠. 요즘은 제조업체들도 다 스마트시대여서 농업분야에서도 컴퓨터 전문가가 필요하거든요. 벤처기업이 실패한 것은 제품이 형편없어서지 마케팅을 잘못한 경우는 드뭅니다. 예산도 많이 필요하지 않을 뿐더러 일자리 창출과 산업 경쟁력 향상 등 다목적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이런 인재들을 잘 육성하면 디도스 공격이나 해킹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IT 강국으로 우뚝 설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공계인들이 피해의식 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은 뭘까요.
“제 인생 60년, 이공계 직장경험 30년을 통해 후배들에게 인생 4단계 전략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청년기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준비단계, 직장 초년병으로서 창의적 기술 습득과 행운을 만들어가는 수비단계, 전문지식과 몸담은 분야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전력투구하는 도전단계, 마지막으로 이룬 성과를 평가하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을 통해 인생 2기를 시작해보는 관리단계입니다.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사회로 만드는 데 있어 거창한 제도적·정치적 변화에서만 열쇠를 찾을 게 아닙니다. 이공계 개개인의 관점에서 행복한 인생을 영위하면 결국 전체 우리 사회도 활기차게 됩니다.”

왜 승승장구하던 회사 지분을 팔고 출판사를 차렸나요.
“2년 전에 건강이 악화되어 좀 쉬고 싶었습니다. 또 이공계나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린 거죠. 요즘 청소년들이 다들 연예인을 꿈꾸는 것은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중매체에 연예인들이 많이 노출되고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든 출판사는 이공계 문제를 대중에게 환기하고 일반인들도 과학과 공학에 대해 재미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지속적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12년 전에도 <엔지니어 인생에는 NG가 없다>는 책을 펴냈죠. 다음은 이공계 인재의 선순환 시스템을 갖춘 중국의 사례를 소개할 계획입니다. 중국은 선망하는 남편감 1위가 이공계 출신이고, 시진핑을 비롯한 국가지도자들 중에도 이공계 출신이 많아요. 중국 이공계생들은 자신만만하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합니다. 덩샤오핑이 1986년에 만든 이공계 발전 정책과 전략 덕분입니다. 덩샤오핑은 다른 나라 국가원수는 안 만나도 노벨상 수상자는 만났어요. 이공계생들을 우대했고 적극 활용해 이제 G2가 됐습니다. 중국의 이공계 전략을 연구하고 벤치마킹하는 방법이 뭔지를 찾아서 다음 책을 낼 생각입니다. 이공계의 활약이나 발전상이 자주 화제가 되면 청년들이 이공계로 진학하고 국가정책도 바뀌지 않을까요.”

벤처 1세대이고 대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하는데, 창업 지원도 돕나요.
“벤처 창업 상담도 해주고 창업자금도 도와줍니다. 사실 창업투자의 성공률은 1%도 안 됩니다. 투자가 아니라 갖다 버리는 돈에 가깝지만 얼마나 그 분야에서 수요가 있나, 생존 가능성이 있나를 검토해 투자 여부를 결정합니다. 실제로 커피로스팅 기기를 비롯한 제조업체에도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평소 가죽재킷에 체크무늬 바지 등 패션감각이 뛰어난 백일승 대표는 이공계생들에게도 패션감각을 키울 것을 조언했다. 이공계인이 매력적이어야 그가 개발한 상품도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패션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멈추지 않고 변하고, 도전하는 그의 인생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