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성적 의사결정’ 가르쳐 평등한 성문화 만드는 건전한 성 정체성 키워줘야
![[커버스토리]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자](https://img.khan.co.kr/newsmaker/721/cover7-1.jpg)
성폭력, 성매매, 10대 임신과 관련된 사건 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기성세대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차라리 피임교육이나 확실히 시키고 콘돔을 나눠주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성적인 경험을 일찍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회가 변하기 전에는 개인이 감내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알기에 되도록 자녀가 일찍 성을 경험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성’을 은폐하려 했다. 청소년은 성적 욕망을 느껴서도 안 되는 존재로 취급했고 이성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이렇게 청소년은 ‘성’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고 그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어쩌다 ‘성’을 경험한 청소년은 ‘성’을 경험하지 않은 청소년과 격리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이성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성’과 관련된 정보가 넘치고 있다. 굳이 찾지 않아도 유해한 ‘성’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방으로 배달되어 오는 시대다.
‘성관계 자유롭게 허용하자’와는 달라
음란물을 접하는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이메일을 사용한다는 것은 음란물을 배달하는 스팸메일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함을 의미하고 웹서핑을 시작했다면 유해한 정보가 담긴 콘텐츠를 접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또래간의 성폭력 사건도 연일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넘치는 정보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능력을 키운다면 피해를 예방할 수도 있고 충격을 완화할 수도 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이 유해한 콘텐츠를 접했을 때 겪는 충격의 강도는 더 세기 마련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성’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상황에서 충격을 완화시키고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확고한 중심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청소년이 성적인 존재임을 인정하고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자’는 것은 ‘청소년을 성적 주체로 세우자’는 뜻이며 ‘성관계를 자유롭게 허용하자’는 것과 다르다. 주체적인 삶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성적 주체도 마찬가지. 성인으로서의 의무는 청소년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지식과 다양한 간접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잘못된 정보, 유해한 환경에서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지니고 있다. 현명한 선택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신뢰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성인들은 청소년이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지지해야 하며 실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감싸 안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말로만 성적 권리를 주자고 할 뿐 성적인 접촉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청소년을 통제하고 대상화했던 기존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를 경험한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다르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청소년의 선택을 존중한다.
청소년이 ‘성’에 대한 인식을 정립하는 것은 성행위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실천과 정체성, 욕망을 포함하여 성적 감정과 관계, 그리고 우리가 성적(sexual)이라고 규정하는 범주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성이란 여성과 남성들의 감정, 사상, 행동 모두를 포함한 것으로 성적인 친밀감과 육체적인 성행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는 인간관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삶의 과정이다. 따라서 성적 주체로 서기 위해선 성 정체성, 성적 감각성, 성적 친밀감, 성 건강과 생식, 성적 사회화에 대한 태도를 정립해야 한다.
![[커버스토리]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자](https://img.khan.co.kr/newsmaker/721/cover7-2.jpg)
성적 정체성이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인식을 포함해서 성 발달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다. 성 발달은 신체적·감정적·사회적·인지적 성장에 따라 특징이 있으며, 인간관계, 여가 생활, 교육, 직업 등에 대한 선택을 할 때 자신의 성 정체성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 몸의 느낌과 우리 몸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감정적인 애착을 표현하거나 교제를 하는 것은 친밀감의 표시이며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인 친밀감을 경험하거나 그것을 회복하는 능력이나 욕구로서 사람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친밀감을 나누는 것은 사람들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든다. 관계를 표현할 때 상대에 대한 애정과 배려, 존중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자기표현과 의사소통, 인간존중의 태도를 세워야 한다.
성문화 ‘비판적 안목’ 키울 수 있게
특히 성문화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회문화적 환경들은 개인들이 성을 배우고 표현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회 속의 성문화를 민감하게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성을 폭력적으로 도구화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몸의 주인으로 행동할 수 있는 관점 및 태도를 키워야 한다. 성적 도구화란 피해가 없는 속임수로부터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가해 행위까지를 포함하여 희롱, 유혹, 파트너를 벌 주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 성적 학대, 강간과 같은 행동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며 속이기 위해 성을 이용하는 것들을 포함한다.
결국 ‘성’적 주체로 성장하는 것은 관계 맺기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는 민주적 훈련과도 상통한다. 민주적 훈련은 다양한 의견을 접하고 토론하고 교육하면서 내 세계관, 도덕관을 고려해볼 때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성’도 이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 기분으로 감각으로 판단하지 않고 심사숙고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서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즉 남녀의 신체적·심리적 차이를 이해하고 성적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성적 권리를 존중하고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차별받아서도 안 됨을 터득해가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청소년은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이해하고 성문화에 대한 비판적 안목과 주체적인 성적 의사결정 능력을 키움으로서 더 평등한 성문화를 만들어가는 건강한 성 정체성을 가진 성숙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청소년에게 ‘성적 권리’를 돌려주자.
이현숙<청소년성문화센터 설립추진단> think21c@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