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작가에게 미문이란

“한 것은 한 것이고 안 한 것은 분명히 안 한 것이다.” 나스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문장인데, 저 한 문장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다. 나는 작가가 소설에 쓰는 문장을 지어내고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식의 발견이고 고유한 서정의 발현이다. 문장은 자기 자신의 근원을 찾는 과정이고 감성을 발굴하는 시간의 응축인 셈이다.

좋은 문장을 가지기 위해 흔히 필사를 하는데, 나는 문창과 출신이지만 필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내 문장이 이 모양 이 꼴로 어두운 장막 근처에서만 맴도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남의 글을 옮겨 적는 필사가 문학적 감수성을 높여준다고는 믿지 않는다. 어쭙잖게 몇몇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나는 학생들에게 필사 대신 큰소리로 소설을 읽기를 권한다. 문장의 수준을 높이는 데 소리 내어 읽는 것만큼 더 좋은 방도가 없다고 믿는다. 소설은 글이기 전에 작가가 어떤 형식을 빌려 전하는 말이다. 작가들의 고유한 말법이 문장이다.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다고 해서 작가의 말투나 말법이 낭독하는 이들에게 옮겨오진 않는다. 글은 기억으로 남고 말투나 말법은 느낌으로 남는다. 내가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문장의 느낌이지 문장에 대한 기억이 아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미문에 대한 욕망은 필연적이다. 미문을 정복하기 위해 글을 쓴다. 하지만 나는 미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내가 그걸 진작 알았다면 한 새벽 골방에 틀어박혀 시답잖은 고민이나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마다의 느낌이 다르고 취향도 다를진대, 좋은 문장과 나쁜 문장으로 각인되는 것을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나는 헤밍웨이, 카프카나 김영하 작가의 문장을 좋아하는데, 그들이 미문을 가진 작가들인지는 모르겠는 것이다. 헤밍웨이의 문장은 간결하면서 압축된 힘이 있고, 카프카의 문장은 딱딱하고 재미없지만 여운이 길다. 김영하의 문장은 스피디한 속도감이 좋은 것뿐이다. 화려한 색채로만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아름다운 그림이 되지 않는 것처럼 문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장이라는 것은 그러니 취향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내 경우 수사가 많은 문장을 싫어하는 것뿐이지, 그게 미문이고 아니고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소설에서의 미문이라는 것은 다루고 있는 서사에 걸맞고 작가의 고유한 말법이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들이 소설에 쓸 미문을 탐내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나, 어떤 작가의 문장이 모두에게 미문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미문이라는 것의 정의를 그러니 개인적인 취향 정도로 인식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근래 회자되고 있는 ‘창비’의 사과문을 미문의 예로 들어보면 “그러나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라는 문장은 글쓴이의 개성과 독창성이 발휘된 좋은 문장이다. 특히 ( )안의 수사는 없어도 상관없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넣어줌으로써 글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좋은 문장의 예다.

백가흠의 눈

글 전체 가득한 사과의 의미를 결국 ( ) 안의 저 작은 문장으로 함몰되도록 의도함으로써 사과가 진심이 아님을 슬쩍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사가 적은 문장을 좋아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수사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창비’의 개성 넘치는 문장도 내 취향이다. 저런 모호함을 그릴 줄 아는 ‘창비’의 문장이 탐난다. 오늘도 꼴딱 날이 훤히 밝았는데 미문의 길은 참 멀고 어려운 것 같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