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가면사회

얼굴 또는 정체를 감추는 게 대세인 듯합니다. 복면을 쓰고 노래 경연을 벌이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뜨더니, <복면검사>에 <가면>이라는 드라마까지 등장했습니다. 시도 있습니다.

‘나는 베란다에 서서 흔들리는 그림자로 있었다 / 창문은 열리고 불빛이 불면을 태우고 있었다

(중략) 밤새 배를 움켜진 고양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 나는 차츰 가면 속으로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용주, ‘가면을 벗다’)

문화는 세상의 거울이라고 하죠. 복면 또는 가면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선과 가식이 판을 치는 세태에 대한 반영 내지 고발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르스로 인해 늘어난 마스크까지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 사회 자체가 위선과 거짓, 가식 위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만 해도 그렇습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서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 국가는 304명의 꽃같은 생명을 지켜주지도, 구해주지도 못했습니다. 안전 역시 국가를 믿을 게 못된다는 게 메르스 사태로 확인됐습니다.

국가는 수세에 몰리면 잽싸게 가면을 씁니다. ‘우리가 남이가’나 ‘종북 타도’의 가면을. 그 가면을 보고 국민들이 눈감고 모른 체합니다. 그 위선과 가식의 대가가 언제든지 우리 자신과 아들딸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기꺼이 위험한 가면놀이에 동참합니다. 황교안 총리가 인준되는 과정 역시 또 하나의 멋진 가면극 아니었습니까.

오랫동안 서민들을 꾀어온 ‘낙수효과’라는 가면도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이 잘돼야 나라 경제 전체가 좋아지고, 서민들에게도 그 이익이 물처럼 흘러갈 것이라는 신화를 만들어왔습니다. IMF에 따르면 낙수효과는 없습니다. 부자의 돈은 아래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부자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줄어들고, 빈부격차만 커졌습니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주장과는 정반대입니다. 낙수효과는 국민보다 기업을 우선시하는 정부가 그 위선을 가리기 위해 쓰는 가면에 불과합니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에서도 위선이 넘쳐납니다. 임금피크제는 노사가 기업 사정에 따라서 알아서 결정하면 됩니다. 정부가 나서서 해라 마라 강제할 사안이 아닙니다. 노조의 동의 없어도 취업 규칙을 변경할 수 있게 한 거나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한 것도 말이 노동개혁이지 실은 노동자들을 포위하고 위협하고 겁박하는 개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상생고용이라는 가면을 쓴 채 밀어붙입니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지난 1년간 가족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했더니 저축을 하고 있는 가계는 10%에 불과했고, 68%는 저축도 적자도 아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11%는 저축해 놓았던 돈을 사용하고, 약 8%는 그것도 모자라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것도 당연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취업 준비생의 94.5%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도 있더군요. 사는 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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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살겠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서민들의 절규엔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면서 기업을 위해 총대를 열심히 메고 있습니다. 기업이 잘돼야 서민도 잘살 수 있다며. 언제까지 선기업 후낙수의 거짓 프레임에 갇혀 있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가면놀이를 지켜봐야 하는 겁니까. 가면 뒤에 뭐를 숨기고 있는지 국민들도 다 알아요. 안다구요.

<류형열 편집장 rhy@kyung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