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눈]상식을 거부한 몰상식한 정부

“전혀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하겠다.” 이완구 총리가 대정부질문 4일째인 지난 16일 사퇴의사를 묻는 질문에 대해 한 답이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당신 때문에 나라와 국민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응수했다.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 초반부 주인공은 이완구 총리다. 이 총리의 거짓말 퍼레이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대정부질문 둘째 날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걸겠다”고 했을 때 누리꾼들은 “목숨은 됐으니 총리직이나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완구 총리 패러디 가운데 압권은 @what*****님이 올린 사진 한 장과 짧은 글이었다. 거울 앞에 선 이완구 총리 사진을 싣고 “부정부패와 맞닥뜨린 이완구…”라고 적었다.

이완구 총리는 “정치인의 연설은 거짓말에 진실의 악센트를 주기 위한 것이다”라는 조지 오웰의 명언조차 무색하게 할 만큼 극심한 말바꾸기로 일관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가, 20개월 동안 23번 만난 다이어리가 공개되자 확인된 것은 11번뿐이라고 말을 바꿨다. 우리는 지금 총리와 전·현직 비서실장 모두가 불법정치자금 게이트에 연루된 초유의 나라에 살고 있다. 더 한심한 것은 상당히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사죄를 하거나 자리를 내놓는 사람이 없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가치와 정의, 도덕과 양심을 폐기처분하기 위해 태어난 정부가 아니라면 지금 이 사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집권여당 내에서조차 총리직 수행 불가 여론이 비등한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뻔뻔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심지어 이완구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있는 고질적인 적폐와 비리를 낱낱이 조사하고, 그 모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엄벌할 것”이라고 대국민 담화를 냈다. 이런 총리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에야말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서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리고 부패 척결의 첫 행보에서 자신 스스로가 걸려든 것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대부분 박근혜 정부 핵심 실세들로 채워져 있다. 부패 척결의 주체들이 부패의 주인공이 된 비상식적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정부도 당황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필 세월호 참사 1주기에 남미 순방을 떠난 박근혜 대통령이 출국시간을 늦춰가면서 부랴부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만난 것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국민이 기대하는 상식적인 판단이나 결단은 나오지 않는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식물총리’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데 대통령과 정부는 일단 순방기간인 12일의 시간을 견뎌보자는 속셈이다. 물타기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일까. 국정공백을 우려한다지만 식물총리에게 국정을 맡기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유승찬의 눈

‘사회는 인간의 필요가 만들고, 정부는 인간의 악덕이 만든다’는 토머스 페인의 ‘상식론’이 떠오른다. 요즘 한국은 온통 비상식적인 것들이 강력하게 창궐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국가와 정부와 제도의 상식이 파괴되고 있다. 대통령은 왜 하필 이 거대한 국민적 참사인 세월호 1주기 날에 남미 순방 일정을 잡은 것인가. 거대한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세월호 인양을 왜 돈으로 저울질하고 있는 것인가. 상식이 무너졌다고 판단되는 순간 정권의 레임덕은 순식간에 덮친다. 박근혜 정부가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2개의 빅 이슈 즉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 게이트를 통해 국민들은 ‘진보 대 보수’의 대결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상식을 송두리째 거부한, 몰상식한 정부를 강력하게 불신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