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세월호 참사 1년,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온 산이 울긋불긋합니다. 노란색보다 더 노란 개나리는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렸고, 진달래는 이 산 저 산을 수줍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나뭇가지 끝마다 터질 듯한 생명이 뭉쳐져 있습니다. 들판에도, 산에도 생명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4월. 무심하게도 그날의 봄은 다시 돌아왔는데 아이들은 돌아올 줄 모릅니다. 그날의 악몽이 떠오릅니다. 설마설마 하면서, 끝끝내 구원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그 처참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또렷이, 너무도 생생하게.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그 아이들은 죽음을 원했던 ‘시빌라’가 아니었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구해주겠지 하며 애써 웃으려 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국가의 배신은 그렇게 304명의 꽃다운 생명을 바닷속에 바쳤습니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제 컴퓨터에서 유튜브를 열면 세월호 관련 영상이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유튜브에 올라 있는 그 많은 세월호 영상들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겁이 나고, 두려워서, 그 슬픔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1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몇 개는 열어봤는데 끝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릅니다.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슬픔과 비통의 무게가 1년 전에 비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7일과 8일 광화문 광장을 찾았습니다. 한쪽에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철회 416시간 광화문 집중 항의행동 농성이 벌어지고 있고, 반대편에서 세월호 인양 촉구 서명운동이 진행 중입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광장 한쪽에 아이들 단체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아이들 얼굴이 새겨진 목판도 내걸려 있습니다. 위패처럼. 혜선이, 동수, 준영이, 경빈이, 슬기…. 길 한쪽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이 고통과 슬픔을 온 사회가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의식을 바꿔나가야 했습니다. 참사 없는 사회, 아픔 없는, 슬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역량을 모아나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상식적인 사회가 미증유의 참사에 대처하는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을 구해내지 못했던 국가는 지금도 책임을 회피하고, 그 의미를 훼손하고 폄하하는 데 급급합니다. 지금도 가만 있으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게 우리의 국가입니다. 세월호 침몰도 교통사고라며 유가족들과 희생자들을 비아냥대고, 조롱하고, 폄하하고 모욕하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안전사회는 아직 요원합니다. 익숙하고 편한 것이 안전에 앞섭니다. 우리는 돌아가며 방아쇠를 당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판교에서, 의정부에서, 강화도 캠핑장에서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46일간 단식을 해야 했던 유민 아빠, 아이를 잃은 것도 모자라 삭발을 해야 했던 어머니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국가가 무엇인가’란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광화문 뒤에 보이는 청와대가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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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서 아라곤은 죽어도 죽을 수 없었던 유령군단의 저주를 풀어줍니다. 도망쳤다는 불명예를 지우기 위해 열심히 싸운 유령군단에 “편히 쉬라”고 보내준 것입니다. 유령들은 비로소 무(無)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원혼들에게 “편히 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혹시 원혼들에게 저 차가운 맹골수도에서 지금도 가만 있으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의 노란리본을 아직도 바꾸지 못합니다. 다시 돌아온 4월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경빈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움켜쥐며….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