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닛산과 도요타, 갤럭시 S6와 정치

얼마 전 모 자동차회사의 고위 임원을 지내다 지금은 은퇴한 분을 만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자동차 기술을 습득하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은 선진 업체의 자동차를 분해·분석한 뒤 흉내내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초창기엔 주로 일본의 자동차들을 회사별, 모델별로 대거 들여와 분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당시 엔지니어들을 가장 놀라게 한 업체는 닛산이었답니다. 닛산 차는 분해해보면 부품 하나 하나마다 깨끗하고 철저하게 마감이 돼 있어 그 장인정신에 감탄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분해만 해놓고 보면 닛산 차는 도요타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다시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닛산이 아니라 도요타였습니다.

전직 임원분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닛산은 소비자가 볼 수 없는 부품의 만듦새까지 신경을 썼다.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일인데, 그게 엔지니어들의 고집이었다. 도요타와 혼다는 달랐다. 그들은 보이는 부분에 더 집중했다.” 엔지니어들의 목소리가 컸던 닛산에 비해 도요타와 혼다는 좀 더 자유롭게 소비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였고, 그 소통의 차이가 오늘날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또 듣게 됐습니다. 이번엔 삼성 관계자에게서였습니다. 이 관계자가 예로 든 것은 2013년 갤럭시 S4 액티브에 처음 적용된 방수/방진 기능이었습니다. 기술 자체만 놓고 보면 높게 평가할 만했습니다. IP67 등급을 인증받은 갤럭시 S4 액티브는 먼지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되며, 물은 1m 이하의 수심에서 30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물에 씻어 바로 사용하는 광고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삼성은 이 방수/방진 기능을 갤럭시 S5에도 기본으로 탑재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썰렁했습니다. 굳이 비 맞으면서 전화를 걸거나 물속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습니다. 있으면 유용하긴 한데 꼭 필요한 기능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엔지니어들의 고집이 소비자와 눈을 맞추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었다는 복기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갤럭시 S6와 엣지를 내놓으면서 과거의 실패로부터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방수/방진 기능을 뺐고, 그동안 삼성만의 아이덴티티로 고집했던 분리형 배터리도 과감히 버렸습니다. 대신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빼고 버리며 몸집을 가볍게 했고, 메탈과 글라스의 조합으로 세련미를 더했습니다. 외신으로부터 “삼성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폰”이라는 찬사까지 들었습니다.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는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삼성이 진화한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고집불통 ‘닛산’에서 유연한 ‘도요타’로.

소비자의 눈높이를 따라가려는 삼성전자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합니다. 고객과 소통하고 그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은 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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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우리 정치는 과연 어떨까요. 여러분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정부의 노력과 정치권의 변화를 실감하십니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995년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할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영삼 정권이 발끈해 삼성이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말 자체는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많은 기업들이 2류에서 1류로 올라섰는데, 우리 정치와 관료는 4류와 3류 꼬리표를 떼었을까요. 종북 타령이나 하고, 부동산에 목매고, 경제 발목을 잡고,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별 시답지도 않은 말을 떡하니 내뱉는 꼬락서니를 보면 하나도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세계 초일류라는 삼성도 초거대기업 애플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저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여전히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이니…. 아 참, 최근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늘어났지요. 이러다 관료마저 4류 되는 것 아닙니까.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