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우리 사회는 아직도 봉건시대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가장 평범하지 않았던 하루하루의 일상이 지나가고 어느덧, 한 해의 끝에 서 있다. 오래 전, 한 외국인 친구가 한국은 너무나 다이내믹한 나라라고 비아냥대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외국에 나가 살아본 적도 없었고, 뭔가를 비교하거나 다른 나라의 사정을 부러워할 것도 아니어서 그 친구의 말 때문에 괜한 애국심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정도 모르고 비아냥대는 꼴이 싫어서 나도 그 친구 나라 역사의 허물을 된통 씹어댔다. 부끄러운 기억이다. 실은 그 친구의 말이 대부분은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쨌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를 발판 삼아 현대의 상식을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친구의 말처럼 하루도 일 없는 날이 없다. 우리는 왜 이런 모습인가. 곰곰 생각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매일 빠르게 바뀌는 뉴스 이슈에 사람들은 허둥지둥 놀람과 분노와 걱정과 무관심으로 하루를 보낸다. 정말이지 정신이 없다. 우리의 세계는 아직도 근대와 봉건주의적인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논쟁거리 대부분은 현대라는 체계에서는 상식으로 불리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상식이라는 것에도 계급적인 논리와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상식이 설 수 없다는 얘기이다. 씁쓸한 마음 그지없다. 누가 상식을 파괴하고 거부하는가. 어떤 사람들이 자기의 권리를 훼손하면서까지 계급적 우위에 놓인 사람들을 옹호하고 대변하는가.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자기모멸의 극을 체험하는 기분이다.

지난 1년, 한 달에 한 번 칼럼을 쓰며 뭘 써야 하는지 고민한 적이 거의 없다. 매달 하나의 주제를 다루기에도 벅찰 만큼 우리 사회는 다이내믹하다. 국민들은 매일매일 실체 없는 상식이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다. 오로지 자본의 가치로만 환원되는 시스템이 남긴 허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보기에도 우리 사회는 말도 되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 매일 비상식적인 일만 일어난다. 아니 발견한다. 들춰진다. 새로 생겨나는 일이 아니라 하나도 변화하지 않았고 바뀌지 않았던 과거의 시대를 우리만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슬프기만 하다. 전 세계에서 박멸된 계급, 봉건주의적 세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 겁이 난다.

대한항공 재벌 3세의 이른바 ‘땅콩 리턴’ 사건은 우리나라의 기업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언제 우리나라에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기업이 존재했었던가. 노동자들을 재벌들이 어디 인간의 평등한 위치에서 대하거나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스스로를 왕이고,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노동자들을 그저 머슴이나 종으로밖에는 보지 않는 봉건주의적 구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들이 반복해서 똑같은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고, 평소의 가치관이고, 정체성인 것이다.

청와대 문건 유출로 시끄러워진 비선실세 논란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권력은 힘의 우위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계급의 하위를 향하고 있다는 것, 비상식적이라는 것, 아직도 이 세계에 계급이 있다고 믿는 봉건주의적 족속들의 향연이다. 이는 아직 우리 사회가 근대를 털어내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백가흠의 눈

과거 봉건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오직 시민혁명뿐이었다. 역사가 증명하듯 계급적 논쟁과 허탈감은 언젠가는 시민의 혁명을 부른다. 누구든 계급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것은 자멸의 길로 함께 들어서는 것임을 부디, 명심하시길. 근대의 역사가 이미 많은 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