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눈]당대표가 되려면 청사진을 내놔라

내년 2월 초에 치러질 새정치연합의 당대표 경선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정치 이슈의 무덤화 현상을 겪고 있는 ‘무선거 주기’를 돌파하려는 언론과 비주류 정치세력의 연합작전의 결과다. 사실 최근 세월호 특별법이 일단락되면서 거의 모든 정치 이슈가 국민의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SNS 주간 언급량도 최근 들어 3분의 1 수준(18만건에서 6만건 수준)으로 떨어졌고, 개헌·복지 등 정치권과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빅 이슈들도 정작 국민들 사이에선 많이 소비되지 않았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헌재발 블랙홀’이라 호들갑을 떨었던 선거구 재획정 이슈마저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였을 뿐 국민들로부터 빠르게 잊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전당대회를 앞둔 야당의 집안싸움을 부추기는 것은 어찌 보면 언론의 숙명 같은 거다. 특히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이기도 한 문재인 의원을 정점으로 한 친노 계파 프레임을 강화하고 리더십에 상처를 내려는 시도들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일부 언론의 행태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른바 당권후보들의 특정 후보 저지전략은 참혹한 수준이다. 박지원 의원은 연일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 의원의 불출마를 압박하고 있다. 특유의 대권·당권 분리론과 함께 당의 소중한 자산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다. 정세균 의원도 문재인 의원에 대한 견제구를 날리며 경선 채비에 나섰다. 일부 비주류 의원들은 대선 패배 책임론까지 내세워 문재인 의원의 당권 도전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분리경선을 할 경우 승자 독식의 게임이 되는 데다, 2016년 총선의 공천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번 새정치연합 당대표 경선은 훨씬 더 험악해질 개연성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전형적인 버닝 플랫폼(burning platform)이다. 거듭된 선거 패배 이후 당은 정치전략은 물론이고 시스템과 문화마저 붕괴된 상태다. 당권·대권 분리 같은 이야기도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충분히 논의될 수 있겠지만 당이 ‘불타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의제로 떠오르기는 어렵다. 당이 송두리째 망해 가는데 ‘소중한 자산이라 안 된다’는 논리는 더욱 설득력이 없다. 망해 가는 당을 수습하지 않고 관망하는 리더가 소중한 자산이 될 가능성은 없지 않은가.

당권에 나오려면 적어도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반헌법적 발상에 기댈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당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먼저 나와야 한다. 강력한 혁신의 기조 아래 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시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처방을 내놓고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야당에 필요한 리더는 노회한 정치공학자가 아니라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강력하게 당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의원도 당권 도전을 둘러싼 당 내외의 물음에 대해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기반으로 움직일 때가 아니다. 당대표 출마 마감까지 아직 꽤 긴 시간이 남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당 혁신의 방향과 원칙, 강력한 의지는 가감 없이 정면으로 주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지금 야당에서의 당권 도전은 나쁜 프레임의 덫을 돌파하면서 동시에 당 혁신의 리더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두 개는 서로 연결돼 있다. 담대하면서도 따뜻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모든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각오해야 한다. 이제 정치가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

유승찬의 눈

당대표가 되려면 당에 대한, 승리에 대한, 미래에 대한, 국민의 행복에 대한 당신들의 청사진을 먼저 내놔라.

<소셜미디어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