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눈]그 많은 극장비는 어디로 갔을까

수년 전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영화계 내부 스태프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 성적이 괜찮아지면서 뭐가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런 흔적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외형적으로는 분명히 매출액이 늘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던 지난 수년 전에 비하면 수익률도 늘고 있다. 그럼 좀 나아졌어야 할 것 아닌가? 평균의 오류 같은 게 있다. 20여편 정도만 흑자이고, 여전히 대부분의 영화들은 마이너스이다. 1000만 영화가 몇 편 나온다고 해서 구조가 나아지지는 않는다.

현장의 시나리오 작가에게 돈이 더 가게 하겠다, 이게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영화 정책의 핵심 문장이다. 이 문장은 절대 진리에 가깝다. 그러나 이걸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고치거나 변화시켜야 할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

아주 기본적인 것, 지식경제의 기본인 시나리오 저작권 문제부터 출발해 보자. 문자로 된 시나리오는 저작권 중에서도 양도가 안 되는 양식이다. 시나리오를 사용하는 사람은 원작에 대한 사용권만을 갖는 게 맞다. 그렇지만 사용권에 해당하는 판권이라는 말로 저작권 자체를 양도받은 것으로 이해하는 게 업계 관행이다. 일본에서 온 관행인데, 아직도 해소가 안 되었다. 시나리오를 사간다는 표현, 이게 말이 안 되는 거다. 시나리오는 사용을 위해 빌리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영화 제작자와 투자사, 즉 영화 만드는 사람들과 영화에 돈을 대는 사람들의 관계이다. 이게 아주 어렵다. 영화 제작자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제작사와 직·간접적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이 통로로 들어오는 돈이 사실상 제작자들의 손에 들어오는 돈의 전부이다. 그리고 투자사는 자기에게 돈을 대는 다양한 형태의 펀드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민간과 공공의 돈이 복잡하게 얽혀서 영화 투자비로 들어온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배급자와 투자사 사이의 계약서가 있다. 여기에 전국 2000개가 넘는 상영관과 맺는 계약이 추가된다. 정리하면, 제작사 쪽으로 일련의 계약이 있고, 투자사 쪽으로 또한 일련의 계약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걸 다 투명하게 하고, 누군가 관리·감독을 하면 중간에 황당한 일들을 줄이고, 결국 돈이 흘러 흘러 시나리오 작가에게까지 갈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태의 어려움은 바로 이 투자자와 극장이 한몸이라는 사실이다. 전문용어로는 수직계열화라고 부른다. 아주 익숙한 재벌 시스템이 여기에도 존재하게 되었다. 제작과정은 회계 정산 등을 통해서 이제는 세계 최고라고 할 정도로 투명하게 되었지만, 투자자와 펀드, 투자자와 배급사 사이에 어떤 계약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정산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벌어진 일은? 수년 전 <문화로 먹고 살기> 쓸 때에도 극장 관객당 제작사가 받는 돈이 3000원 내외라고 했는데, 그 후 극장비가 꽤 올랐지만 여전히 3000원 내외이다. 개봉 후 극장 측에서 수익률을 임의로 조정해도 당장 아쉬운 게 감독과 제작사라 그냥 꾹 참고 넘기는 수밖에 없다. 말 한 마디만 잘못하면 ‘퐁당퐁당’이라고 부르는, 건너 뛰면서 상영하는 방법 등 극장이 감독을 괴롭힐 방법은 수없이 기발하고 다양하다. 당하는 수밖에 없다.

우석훈의 눈

대통령의 뜻이 시나리오 작가에게 있으니 공정거래위원회가 드디어 현장에 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굴 벌주는 게 아니라 바로 투명한 방식의 제도 개선과 모니터링 시스템 마련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시나리오 작가와 현장 스탭들에게 단돈 만원이라도 더 가게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숨죽이고 지켜보는 중이다.

<우석훈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