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에세이]배가 딱딱하면 갈근과 작약

진료실에서는 환자의 복부를 눌러 오장육부의 상태를 진단하는 복진법을 진맥과 함께 필수적으로 한다. 상하·좌우·중앙을 크게 나누어 눌러보고, 반발감이나 경직도, 온도와 반응도를 보아 해당 장기와 경락의 기능을 유추할 수 있다. 건강한 복부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명치 부위를 중심으로 양쪽 갈비뼈 사이로 살짝 손을 넣어도 큰 저항이나 통증이 없는 분들은 건강하다. 여성의 경우 아랫배와 양쪽 골반 사이까지도 부드럽게 손이 들어간다면 자궁의 상태도 좋은 것이다.

작약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한방에서는 뿌리를 진통, 진정, 소염의 약재로 사용한다./위키피디아

그런데 종종 환자가 직접 “배가 너무 딱딱해요”라고 말하거나, 특별히 자각증상이 없었는데 복진을 하려고 손을 살짝만 대도 깜짝 놀라도록 아파하거나 심하게 간지러워하는 분들이 있다. 복부 전반적으로 긴장도가 높고 명치, 배꼽, 왼쪽 등과 같은 특정 부위에서 뭉침이나 뻐근함, 불편감을 호소한다.

이렇게 한곳에 뭉침이 있으면 ‘혹시 암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 혈액검사, 엑스레이나 컴퓨터 단층촬영(CT), 내시경 등 다양한 검사를 받는다. 역류성 식도염이나 위염기가 좀 있다더라, 대장에 용종이 작게 발견되어 제거했다는 등의 병력을 말하기도 한다.

배가 딱딱한 환자를 진단할 때 크게 두 갈래로 나눈다. 갈근증(葛根證)과 작약증(芍藥證)이다. 이는 태음인과 소음인을 구분하려는 것이다. 콩과의 넓은잎덩굴나무 뿌리인 칡(갈근)은 열과 긴장감을 내려주는 효과가 탁월하다.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한 작약의 뿌리인 작약은 혈분을 자양해주면서 응결된 기운을 이완하는 대표적인 약이다. 두 가지 약재 모두 긴장과 경직을 풀어주는데 그 방향성이 다르다. 따라서 아무리 흔하고 자주 쓰는 약재라도 처방할 때는 환자 체질과 병의 본질적 형태를 신중하게 파악해야 한다.

중학생 A군은 매일 배가 딱딱하게 굳고 아프다며 짜증을 낸다. 아침마다 설사로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다. 입맛은 물론 냄새와 온도에 예민한 A군의 비위를 맞추는 데 두손 두발 다 든 어머니가 찾아왔다. 진맥을 해보니 세긴맥(細緊脈)이 나온다. 가늘면서 너무 팽팽하고, 중간에 채찍질하듯 찌릿한 맥으로 냉기가 오랜 기간 누적되면서 온 통증맥이다. A군의 성격이 이해가 된다. 어떻게 얼어붙은 몸에서 부드러운 성격이 나오랴. 그는 소음인으로 오랜 불안감으로 혈관이 위축되고 양기가 허약해지면서 오는 냉성 복통을 앓고 있다. 여기에 소화기계가 약해 음식에서 에너지를 쉽게 흡수하지 못했다. 이런 소음인의 체질을 백작약으로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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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

50대 여교사 B씨도 똑같이 경직된 복부와 팽만감으로 내원했다. 특이하게도 근무를 시작한 이래 학교에서 화장실을 안 간다. 꾹 참고 집으로 뛰어들어와 볼일을 본다. 그래서 만성 방광염에 변비까지 있다. 1년 전부터 관장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하다가 이제는 매일 해야 할 정도다. 과도한 긴장감으로 위장관 운동력이 떨어지고 강박증으로 변비가 악화됐다. 태음인인 B씨를 치료할 때는 A군과 다르게 복부에 울체된 열을 흩어주고 부드럽게 이완시켜주는 갈근을 써야 한다. 이렇듯 같은 증상으로 내원을 해도 환자 체질에 따라 치료 방향이 달라진다.

<권혜진 청효대동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