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의 ‘레그 킥’ 우려의 시선을 뛰어넘다

강정호는 93마일 이상 타구를 때려 만든 타격 결과에서 14타수 7안타(0.500)를 기록했다. 2루타가 3개 포함돼 장타율은 무려 0.714나 된다. 타격 결과에 대한 숫자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기록이다.

지난 5월 13일,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에서 뛰고 있는 강정호(28)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시티즌스뱅크파크에서 열린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 6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강정호는 전날에는 3루수로 출전했었다. 강정호에게 이날 경기는 4경기 연속 선발 출전이고, 시즌 13번째 선발 출전 경기였다.

선발 출전 경기에서 타율이 0.348로 무척 높았던 강정호는 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대신, 6회말 기막힌 수비를 선보였다. 피츠버그가 3-1로 앞선 6회말 무사 3루, 필라델피아 2번 타자 프레디 갈비스의 타구가 좌중간을 향해 날아갔지만 강정호가 있는 힘껏 뛰어올라 글러브 끝으로 잡아냈다. 3루주자가 움직이지 못했다. 그 타구가 빠졌더라면 1점차로 쫓긴 뒤 더욱 어려운 경기 흐름이 될 뻔했다.

현지 중계진의 칭찬도 이어졌지만, SNS에 올라온 피츠버그 팬의 한마디가 주는 임팩트가 컸다.

“Kang, -aroo”

강정호가 피츠버그 팬들에게도 익숙해지고 있다는 꽤 강렬한 신호였다.

강정호는 2014년 겨울,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이적료’라고 할 수 있는 포스팅 금액은 500만2015 달러였고, 강정호는 피츠버그와 4년 1100만 달러에 연봉계약을 했다. 5년째인 2019년에는 피츠버그 구단이 연봉 650만 달러에 강정호를 1년 계약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됐다. 잘 알려진 대로 피츠버그 구단은 ‘부자구단’이 아니다. 피츠버그의 2014시즌 연봉 총액은 7800만 달러 수준이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7위였다. 강정호에게 안긴 금액 1600만 달러(포스팅 액수 포함)는 피츠버그 입장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의 강정호가 5월 10일 열린 세인트루이스와의 경기 7회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있다. / AP연합뉴스

‘강속구 대처에 불리’ 전문가 전망 불식
강정호는 일찌감치 애리조나로 떠나 친정팀 넥센과 함께 훈련했고, 일찌감치 피츠버그의 스프링캠프지인 플로리다 브래든턴으로 옮겨 적응을 준비했다.

스프링캠프, 강정호에 대한 관심이 컸다. 현지 언론 및 야구 관계자들은 강정호의 스윙에 주목했다. 앞서 일본, 중남미 타자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많았지만 KBO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타자는 강정호가 처음이었다. KBO리그 최고 강타자 중 한 명이었던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낼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피츠버그 관계자조차 “KBO리그에서의 기록이 메이저리그에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밝혔다.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강정호 특유의 스윙 동작 ‘레그 킥’이었다. 강정호는 타격할 때 투수 쪽을 향한 왼 다리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스윙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레그 킥은 스윙에 힘을 싣기 위한 동작이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순간 스윙이 시작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타격 동작’ 자체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많은 전문가들이 “레그 킥 동작으로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을 때려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프링캠프는 만만치 않았다. 강정호는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18경기에 나가 타율 2할에 그쳤다. 시범경기 초반과 막판에 홈런 1개씩을 때렸지만 주변의 시선을 확 바꿀 수 있는 활약은 아니었다. 볼넷 4개를 골랐지만 삼진을 17개나 당했다.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됐지만 강정호의 초반 부진은 계속됐다. 출전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이따금씩 대타로 출전하는 게 전부였다. 강정호는 개막 뒤 팀이 12경기를 치르는 동안 겨우 11타석밖에 들어서지 못했다. 4월 21일 시카고 컵스전에 모처럼 선발 출전했지만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강정호의 시즌 타율은 7푼7리까지 떨어졌다.

“강정호를 마이너리그에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벤치에 앉아서 구경만 하느니 보다 빠른 리그 적응을 위해 마이너리그에서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서는 게 강정호에게도 피츠버그 팀에게도 보탬이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럴 듯했다. 벤치만 지키는 강정호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클린트 허들 감독과 닐 헌팅턴 단장의 의지는 확실했다. 단장과 감독 모두 “강정호를 마이너리그에 내려보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헌팅턴 단장은 강정호를 빅리그에 남겨두는 게 오히려 적응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헌팅턴 단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정호는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서 막 건너온 상태다. 현재 완전히 새로운 리그에 적응 중이다.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의 차이가 크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리그다. 트리플A에 가서 적응을 하는 것은 빅 리그 적응과 또 다르다. 내 생각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는 선수를 다시 트리플A에서 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헌팅턴 단장은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선수이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구장, 메이저리그 덕아웃, 메이저리그의 분위기에 적응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피츠버그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지켜보는 게 훨씬 낫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헌팅턴 단장의 예측은 적중했다. 강정호는 4월 22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타자가 됐다.

7푼7리이던 타율 3할대로 올라
강정호는 이날 메이저리그 첫 장타(2루타)로 주자 3명을 모두 쓸어담았다. 2사 1·3루에서 앞타자를 거른 뒤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상대가 안겨준 굴욕을 그대로 갚은 3타점짜리 2루타였다. 자신감을 찾은 강정호는 이후 타격 성적을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5월 13일 현재 강정호의 타율은 3할3푼3리로 치솟았다. 규정타석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이제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타자가 됐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강속구 대처 우려가 완전히 사라졌다. 레그 킥을 둘러싼 논란도 종료됐다. 강정호는 강속구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93마일(약 150㎞)짜리 공에 완전히 적응했다.

메이저리그 투구 분석 사이트인 베이스볼사반트닷컴에 따르면 강정호는 5월 11일 세인트루이스전까지 치렀을 때 기준으로 모두 225개의 투구를 상대했다. 그 중 93마일이 넘는 공은 모두 69개였다.

첫 장타 95.7마일 공 받아친 3타점 2루타
69개 중 강정호가 때려 타격 결과를 만들어낸 공이 모두 14개였다. 터닝포인트는 4월 21일이었다. 이날까지 강정호가 때린 93마일 이상 투구 5개는 모두 내야 땅볼이었다. 그러나 ‘적응 완료’ 신호가 다음부터 이어졌다. 22일 강정호의 첫 장타였던 3타점짜리 2루타는 95.7마일짜리 공을 때려 만든 타구였다. 이 2루타를 포함해 이후 9개의 타구 중 7개가 안타(2루타 3개)가 됐다. 내야 땅볼은 1개, 외야 뜬 공 1개는 중견수 직선타에 가까운 잘 맞은 타구였다. 특히 이 중 5월 7일 메이저리그 최고 강속구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으로부터 뽑아낸 2루타는 시속 99.9마일(160.7㎞)짜리를 때려 만든 타구였다.

‘레그 킥’이 타이밍을 늦출 것이라는 우려도 사라졌다. 강정호는 93마일 이상 투구를 상대로 헛스윙을 5개밖에 기록하지 않았고 그 중 삼진이 결정되는 헛스윙은 시즌 초반 직구가 아닌 빠른 싱커를 휘둘러 당한 2개뿐이다. 대신 볼 28개를 골라내는 나쁘지 않은 선구안을 선보였다. 골라낼 수 있고 강한 타구를 때려낼 수 있다면 적응 완료 신호다.

강정호는 이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에 적응했다. 그러나 아직 적응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다. 시차를 겪어가며 치러야 하는 수많은 경기와 넘어서야 할 이동거리, 이를 버티기 위한 체력 등이 숙제다. 첫 단추를 잘 꿴 만큼, 나머지 단추들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이용균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