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린의 뷰티풀 풋볼]‘미들라이커’로 변신한 기성용, 진화의 끝은

기성용은 영화 트랜스포머의 변신 로봇처럼 포지션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최근 기성용은 자기팀 페널티 박스부터 상대팀 페널티 박스까지 폭넓은 활동폭을 보이는 박스 투 박스(Box-to-Box)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트랜스포머’(변신 로봇) 기성용(26·스완지시티)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완지시티 미드필더 기성용이 지난 4일 영국 웨일스에서 열린 헐시티와 2014~15 EPL 31라운드에서 전반 18분 선제골을 터트려 3-1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7호골을 뽑아낸 기성용은 2012~ 13시즌 가가와 신지(26·일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시절 세운 종전 아시아 선수 EPL 최다골 기록(6골)을 뛰어넘었다. 앞서 기성용은 지난 5일 토트넘과의 28라운드에서 시즌 6호골을 기록, 박지성(34·은퇴)이 맨유 시절(2006~07, 2010~11시즌) 기록한 5골을 넘어 한국인 EPL 최다골 기록을 썼다. 기성용의 포지션이 공격이 아닌 미드필더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값지다.

유럽 내에서는 ‘EPL 4년차’ 기성용에 대한 높은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기성용은 지난 15일 EPL 사무국이 발표한 선수랭킹에서 전체 29위에 올랐다. EPL 20개 팀의 로스터가 25명이니 총 500명 중 29등을 한 셈이다. 맨유 소속 후안 마타(31위)와 앙헬 디 마리아(40위)보다 높다. 기성용은 패스성공률 부문에서도 89.6%로 전체 7위다.

스완지시티의 기성용이 4월 4일 리버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헐시티와의 홈경기에서 드리블을 하던 중 상대 공격수 다메 은도예에게 태클을 당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500명 EPL 선수 중 랭킹 29위에
기성용을 앞세운 스완지시티는 16일 현재 20팀 중 8위(13승8무11패·승점47)다. 스완지시티는 역대 EPL 최고 순위(2012~13시즌·9위)와 최고 승점(2011~12시즌·승점47)을 넘어 최고 시즌을 향해 진군 중이다.

박지성은 현역 시절 ‘멀티 플레이어’로 불렸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74)은 박지성을 측면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로 번갈아 기용했다. 영국 언론은 박지성에게 ‘수비형 윙어’, ‘센트럴 파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기성용은 더욱 진화한 형태의 멀티 플레이어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기성용은 영화 트랜스포머의 변신 로봇처럼 포지션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2007년 17세 이하 월드컵 대표 시절 스리백 수비수를 맡았다. K리그 FC서울 시절에는 주로 공격에 치중하는 미드필더였다. 2009년 스코틀랜드의 셀틱에 입단한 기성용은 첫 시즌 10경기 출전에 그쳤다. 닐 레넌 당시 셀틱 감독은 기성용에게 “수비 못하는 미드필더는 소용없다”고 호통쳤다. 기성용은 거친 유럽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비력을 키워 셀틱 주전을 꿰찼다.

2012년 스완지시티로 이적한 기성용은 2013~14시즌 선덜랜드 임대 기간 중 안드레 피를로(36·유벤투스) 스타일로 발전했다. 지난해 1월 2일 선덜랜드 기차역에서 내려 선덜랜드-애스턴 빌라전을 취재하러 가는 길, 선덜랜드 팬들은 동양인 기자를 보고 기성용의 성(姓)인 “기(Ki)! 기! 기!”를 연호했다. 고군분투 중인 기성용의 인기는 높았다. 홈구장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앞의 핫도그 가게 주인은 기성용의 나라에서 왔다며 치즈를 하나 더 얹어줬다. 그라운드에서 기성용은 마치 농구의 포인트가드처럼 후방 미드필더로 포진해 경기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기성용은 올 시즌 스완지시티로 복귀했다. 지난 1월 주공격수 보니(27)를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시키고, 수비형 미드필더 잭 코크(26)를 영입하면서 기성용은 다시 한 번 변신했다. 게리 몽크 스완지시티 감독(36)은 코크에게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기고, 기성용을 측면 미드필더로 중용하고 있다. 부친 기영옥 광주FC 단장(58)은 “보니가 떠난 뒤 득점력이 떨어지자 감독이 성용이를 측면에 기용하며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기성용은 자기팀 페널티 박스부터 상대팀 페널티 박스까지 폭넓은 활동폭을 보이는 박스 투 박스(Box-to-Box)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수비 때는 포백을 지원하고, 공격을 할 때는 과감하게 상대 진영에 침투한다. 전성기 시절 스티븐 제라드(35·리버풀)와 현재 야야 투레(32·맨체스터 시티)가 대표적인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다.

기성용은 서울 시절부터 롤모델로 제라드를 꼽았다. 기성용이 2013년 탈퇴한 SNS 계정 아이디가 ‘Kirrard16’(기성용+제라드+등번호16)이었다. 스완지시티에서는 제라드의 등번호인 4번을 달고 뛴다. 그러면서 기성용은 EPL에서 통산 117골을 넣은 제라드 못지 않은 ‘미들라이커’(미드필더+스트라이커)로 성장했다.

킥 능력 정교해지고 헤딩도 적극 가담
기성용은 강력한 중·장거리슛과 세트피스 킥 능력까지 보유했다. 헤딩이 약점이던 기성용은 올 시즌 헤딩골까지 넣었다. 오른발잡이인데 왼발로도 4골을 뽑아냈다. 심지어 가슴으로도 1골을 넣었다. 온몸이 무기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성용의 뒤에는 ‘내조의 여왕’ 한혜진(34)이 있다. 기성용은 지난 2월 21일 맨유와의 26라운드에서 동점골을 넣은 뒤 엄지손가락을 입에 무는 ‘젖병 세리머니’를 펼쳤다. 당시 기성용의 아내인 배우 한혜진은 임신 초기 단계였다.

‘예비아빠’ 기성용은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천방지축이었다. 2013년 7월 4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최강희 당시 대표팀 감독(56)을 조롱한 게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SNS 파문’이 터지기 3일 전 백년가약을 맺은 배우 한혜진이 큰 힘이 되어줬다. 8살 연상 한혜진은 “뭇매를 맞아야 할 때는 맞아야 한다”고 여장부처럼 말했다.

한혜진은 그 해 가을 방송활동을 잠시 접고 기성용이 뛰던 선덜랜드로 건너가 내조에 전념했다. 그 해 10월 대표팀에 재발탁된 기성용은 브라질· 말리와의 A매치 2연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뛰며 팬들의 비난을 환호로 바꿨다.

‘내조의 여왕’ 한혜진의 힘
기성용은 “해외에서 혼자 지낼 때는 힘들었는데, 아내가 옆에 있어 힘이 된다. 인성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고마워했다. 기성용과 한혜진은 결혼식 축의금 중 6000만원을 기부한 사실이 지난해 뒤늦게 밝혀졌다.

결혼 후 한결 성숙해진 기성용은 올해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준우승을 이끌었다. 전 대표팀 주장 박지성처럼 식사 때마다 테이블을 바꿔가며 동료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라운드에서는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쥐가 나 쓰러질 만큼 뛰었다. 기성용은 요즘 기자회견에서 박지성처럼 무게감 있게 말한다. 기영옥 단장은 “며느리가 올 시즌 개막부터 쭉 곁에 머물며 내조를 잘했다. 성용이도 혼자일 때보다 책임감이 커진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수준급 실력을 입증한 데다 준수한 외모와 유창한 영어 실력까지 갖춘 기성용은 향후 빅클럽으로 이적할 가능성도 높다. 변수는 몸값이다. 기성용을 주목하는 팀들이 늘면서 당초 800만 유로(약 95억원) 수준이던 시장 가치가 요동치고 있다. 200억원 이상으로 뛸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리버풀 지역지 ‘에코’는 최근 리버풀 중원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현실적 대안으로 기성용을 거론했다. 맨유와 토트넘 등도 기성용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