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국적을 얻고 싶어요”

기적처럼 돌아온 야생 멧돼지 축구팀 13명. 그들 중 통역한 아둘과 코치 에카폰은 태국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태국인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도 이들의 나라는 없다. 난민이다.

태국 야생 멧돼지 유소년 축구팀 13명이 치앙라이주 탐 루앙 동굴에 갇힌 지 17일 만에 살아 돌아왔다. 축구팀 선수 아둘 삼온(14)과 코치 에카폰 찬타웡(25)은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조난 열흘째인 지난 2일 영국인 구조대원들이 처음으로 실종된 아이들과 코치를 발견했을 때, 아둘은 통역 역할을 했다. 차분한 태도와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구조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동굴 속 아이들은 아둘을 통해 처음으로 외부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태국 치앙라이주 탐 루앙 동굴에 갇힌 야생 멧돼지 유소년 축구팀 13명을 구하러 나선 구조대원들이 7월 10일 축구팀 소년 1명을 들것에 실어 나오고 있다. / 매사이|AFP연합뉴스

코치 에카폰은 끝까지 아이들을 지켰다. 불교 수도승 생활을 했던 에카폰은 아이들에게 명상을 가르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마지막 아이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본 다음 동굴을 나왔다.

17일 만에 생환… 난민 소년과 코치

아둘과 에카폰은 태국의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태국인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도 이들의 나라는 없다. 두 사람은 미얀마에서 넘어온 무국적 난민이다.

아둘은 미얀마 산간 소수민족인 와족 출신이다. 미얀마 북동부 ‘와’ 자치주에 살던 아둘의 부모는 8년 전 어린 자식을 데리고 태국으로 넘어왔다. 폭력과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땅을 등졌다. 아둘의 부모는 자식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 싶었다.

와 자치주는 와족이 집단거주하는 땅이다. 와족은 1989년 미얀마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어 와주에 모여 살며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와족 무장세력인 연합와주군(UWSA)은 자치권을 얻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군사정부와 싸웠다. 자치권을 얻은 연합와주군은 아편 재배로 돈을 벌었다. 1990년대에는 지역 마약 패권을 두고 다른 마약조직과 전쟁을 벌였다. 와주는 세계 최대 마약 산지로 악명 높았던 ‘골든 트라이앵글’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와주에서 나오는 마약은 국경을 접하는 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와주는 지금도 미얀마 최대의 마약 산지로 분류된다. 최근 들어 아편과 헤로인 생산은 줄었지만 대신 필로폰 생산이 크게 늘었다. 마약의 땅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인신매매 같은 범죄도 횡행했다. 와주의 소년들은 게릴라 군대에 끌려갈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아둘의 부모는 국경을 넘어 태국 치앙라이주 매사이에 자리 잡았다. 지역 침례교회에 아둘을 맡겼다. 목사 부부가 부모 대신 아둘을 교육시켰다. 와주와 국경을 접하는 매사이에서 이런 사례는 드물지 않다. 아둘이 다니는 매사이 반위앙판학교 교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학생들 중 20%가 아둘 같은 무국적자”라고 말했다. 태국 무국적자 문제에 천착해 온 호주 언론인 짐 폴라드는 현지 일간지 <퍼스나우>에 “와주의 가난한 부모들이 몰래 국경을 넘어와 매사이에 자식을 두고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적었다.

동굴에서 빠져나와 병원에 입원한 유소년 축구팀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며 웃고 있다. / 매사이|AFP연합뉴스

난민 소년 아둘은 학교 최고 우등생으로 자랐다. 호주 매체 뉴스닷컴은 아둘이 미얀마어와 와어 외에도 영어와 중국어, 태국어까지 5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둘이 피아노와 기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배구와 풋살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반위앙판학교 교장은 <뉴욕타임스>에 “우리 학교의 무국적자 아이들은 불안한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서 “아둘은 그 중에서도 최고”라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 파니 티아프롬은 AFP통신에 “아둘 하면 예의바른 태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아둘은 영국인 구조대원을 처음 만났을 때도 조용히 합장하며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상대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태국 전통 인사법 ‘와이’였다.

신분증·여권 없는 무국적자 44만명

에카폰은 미얀마 고향마을을 덮친 감염병으로 10세 때 고아가 됐다. 12세 때 불교사원에 들어가 수도승으로 살다가 3년 전 매사이로 넘어왔다. 병든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그는 축구팀 아이들을 만났다.

야생 멧돼지 축구팀 사람들은 “에카폰이 그 자신보다 더 아이들을 사랑했다”고 증언했다. 에카폰이 자기 때문에 아이들까지 동굴에 갇혔다며 사죄했을 때 부모들은 “우리는 절대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에카폰이 동굴에서 나오면 우리는 그의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고 답했다. 현지 매체들은 축구팀 아이들이 에카폰을 우상처럼 떠받들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국적도 나라도 없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신뢰했지만 신분 탓에 코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식 코치가 되지 못하고 보조 코치로만 머물렀다.

아둘이나 에카폰 같은 무국적자는 신분증이나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다. 법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지 못하고, 은행 계좌도 개설할 수 없다. 투표권도 가질 수 없다. 아둘은 프로축구 선수가 꿈이다.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인기 있는 선수가 되면 무국적자라도 안심하고 태국에서 계속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신분상 그가 꿈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야생 멧돼지 축구팀을 만든 노파랏 칸타퐁은 AFP통신 인터뷰에서 동굴에 갇힌 13명 중 4명이 무국적자라고 말했다. 무국적자 아이들은 치앙라이주 바깥에서 벌어지는 축구대회에 참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기 때문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멧돼지팀 아이들을 월드컵 결승전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다음 시즌 홈구장 올드트래퍼드 경기에 아이들을 부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아이들은 초대에 응할 수 없다. 여권이 없어 나라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노파랏은 “국적을 얻는 게 아이들의 가장 큰 희망”이라고 말했다.

아둘이나 에카폰 같은 태국 내 무국적자는 44만명에 달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최대 3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 정부는 2024년까지 무국적자들에게 국적을 부여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심진용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