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4월 위기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 전략… 한국 차기 정권에 부담 불가피

“미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몰아내고 핵과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는 신정부로 교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4월 말까지 중국을 통한 김정은 망명 설득에 실패하면 한반도에 배치된 잠수함과 이지스함의 토마호크 미사일로 북한을 타격한다.”

미·중 정상회담이 진행되던 지난 한 주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통해 퍼진 ‘4월 위기설’의 요지다. 김정은 일가의 망명자금, 중국 내 친김정은 인사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그럴 듯하게 포장된 이 ‘설’은 국방부, 외교부, 통일부 당국자들이 나서 일제히 진화해야 할 만큼 급속하게 퍼졌다. 선거를 앞두고 불었던 북풍(北風)과도 다르다. 급작스럽게 북한 관련 사건이 터진 것이 아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과 북한의 핵실험 등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상황이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는 형태로 나타났고, 불안의 방아쇠는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대외 요인이 당겼다. 당국의 발표대로 당장의 북한 선제타격이나 한반도 전면전을 진지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종류의 위기설은 우리가 새로운 종류의 위기에 놓여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북한도 변했고, 세계도 변했다. 북핵에 대한 인식과 정치권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7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위기설 자체가 새로운 위기의 신호

지난 3월 18일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을 방문하는 비행기 안에서 “중국은 북한정권이 도발을 다시 생각 못하게 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충분히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국무장관 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라고 답했다. 북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전통적 입장과 미국의 불만이 이 말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6년 이후 북한이 5차례 핵실험에 나서는 동안 중국은 적극적으로 핵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중국의 안정적 경제성장을 위해 한반도 역시 평화상태로 유지돼야 할 필요가 있었지만, 북한정권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근본적으로 2005년 이전의 중국은 강대국으로서 주변의 질서를 관리해야 한다는 정체성은 거의 없었다. 세계의 패권은 미국에게 맡겨놓고 조용히 경제성장을 하며, 주변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이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타격을 입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 양강체제(G2)를 구축했지만 국제문제에 책임 있게 나서기보다 지역 내 패권을 추구해 미국과 대립하는 모양새다.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비상하는 국면에서 북핵문제가 미·중관계의 중심 변수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것이 위기의 본질은 아니다.

“중국이 북한의 핵 야망을 저지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해 주길 원한다. 중국이 북한에 더 압력을 가하지 않으면 미국이 단독으로 행동하겠다.” 지난 4월 6일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플로리다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밝힌 내용이다. 항공모함 칼빈슨호 이동 등과 맞물려 무력행동 가능성도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트럼프는 11일 트위터에 대북 독자행동을 시사하는 언급을 올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평화적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고 말했다.

미·중관계의 중심 변수로 부상한 북핵

트럼프와 시진핑 사이에 오간 내용을 종합해보면 트럼프가 힘을 통해 중국을 위협하는 모양새지만 일관되게 ‘중국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중 정상 간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정상회담의 결과가 공동선언문의 형태로 나오지 않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패를 확인하는 탐색전으로서의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 연구위원은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다. 북한은 외교적 공세를 통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불러내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목적인데 거기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다. 북핵문제를 한반도의 문제로 좁힌다. 트럼프는 180도 반대다. 판을 키우고 전선을 확대해야 한다. 판을 키우는 방식 중 하나가 중국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힘을 이용해 일종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던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과도 다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전략은 ‘힘을 통한 평화’를 모토로 한다. 협상은 예측불허의 패를 꺼내더라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명확한 이득을 얻기 원한다.

북핵문제는 한반도와 미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국제사회 전체로 봤을 때 북핵은 관심의 후순위였다는 것이 고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이란의 경우와 비교하면 명확하다. 유엔의 제재가 아니라 미국과 EU의 일방 제재였다. 제재의 목표도 ‘비확산’이었으며 본격적인 경제제재는 아니었다. 외국에서 보기에 북한은 ‘실패한 국가’다. 포위만 하고 있으면 제풀에 넘어갈 것이란 기대를 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히려 북한은 그 상황에서 핵과 (핵을 실어나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지난 5일 안보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문제를 북·미 간의 문제로 인식해 왔다. 심지어 북핵은 장기적으로 민족의 자산이라는 잘못된 관점도 있었다. 그러나 북핵은 남한도 당사자인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첨단장비를 중심으로 한 국방력 강화와 사드 추가 배치를 주장했다. “북핵문제가 더 이상 한반도와 주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정확한 인식”이라고 고 연구원은 평했다. 북한이 핵을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세력에 수출해 평화를 위협하는 문제와 핵실험 과정에서의 환경오염 등이 모두 국제사회가 제재에 나서게 되는 배경이다. 사드 추가 배치의 경우는 ‘안보 포퓰리즘’의 여지가 있다. 사드는 미사일 요격으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막아내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미·중 간의 핵 억지력을 둘러싼 경쟁이 얽혀 있다.

미국의 요격미사일 수가 중국의 대륙간탄도탄 수보다 많아지면 중국의 핵 억지력 역시 축소된다. 여하간 ‘방어’를 위해서라면 “상대의 숫자에 맞게 산술적으로 배치하면 된다”는 것이 고 연구원의 설명이다.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5일 동해상으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 2형'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1발을 쏘며 무력시위를 했다 / 연합뉴스

트럼프는 북핵문제에 대한 강력한 해결의지를 보였지만 막상 수는 많지 않다.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김현욱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및 대북정책 전망>에서 대북정책 예상 시나리오를 두 가지로 고려했다. 우선 경제적 제재다. 세컨더리 보이콧(특정 분야와 관계되는 기업 및 금융기관 제재)이 유력하게 꼽힌다. 미국은 2005년 마카오의 중국계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해 다른 은행들도 북한과의 거래를 꺼리도록 유도하는 금융 압박조치를 취해 김정일 정권의 핵동결 조치 선언을 받아낸 바 있다.(2·13 합의) 이 조치는 북한이 2008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시찰을 거부해 무력화됐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은 지난 3월 셋째 주 북한과 관련 있는 12개 중국 기업 및 개인들을 제재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중국 무기상들이 미국 정부와의 거래에 의존하지 않아 제재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적었다. 중국에서 세컨더리 보이콧을 주권침해로 받아들인다는 점도 문제다. 북·중 국경도시인 단둥 지역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강주원 박사는 “북·중교역은 북한 화교와 조선족들의 중개를 거쳐 일어난다. 즉 통계적으로 중국 내 교역으로 처리된다”고 말했다. 북·중 거래 현장을 잡아 정확한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북한 정권 교체 목표는 없다”

군사적 선택도 고려된다. 그러나 ‘4월 위기설’의 핵심으로 거론된 ‘선제타격’의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시설만 골라서 하는 정밀타격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으며, 일본과 한국의 안보에 커다란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언급했고 ‘4월 위기설’에도 등장한 정권교체 시나리오 역시 회의적이라고 외교안보연구소는 보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드러났듯 정권을 교체하더라도 향후 막대한 관리가 필요하며, 자칫 한반도 분단 고착화 등을 야기할 수 있는 조치로 실현성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외교안보연구소는 결국 미·중 협력을 통한 해결로 선회할 것을 전망했다. 4월 9일 틸러슨 장관은 ABC방송에 출연해 “미국은 비핵화한 한반도를 원하지만, 북한정권을 교체할 목표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북핵문제는 트럼프의 돌출행동으로 부각된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이번에는 해결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존재한다. 거꾸로 그러기에 트럼프가 돌출행동을 할 수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은 비핵화 선언을 세 번(1994년, 2006년, 2012년)이나 어겼다. 늘 (실제로 핵을 폐기했는지) 국제기구의 검증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국제사회의 여론이 모아졌다. 선거 때만 해도 북핵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던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여기다 김정남 피살사건까지 터졌다. 국제사회의 여론이 트럼프도 변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핵동결 조치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끝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박 교수는 “당분간은 국제공조에 맞춰 제재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대화의 경우 원칙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잘못한 것이 북한정권과 주민을 분리하겠다고 하면서 수해지원은 거부했다. 이런 류의 오류를 범하지 말고 일관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인도적·문화적 교류를 열어놓되, 국제공조에서 이탈해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는 것은 북한이 2·29 합의 이상의 전향적 비핵화 선언 이전까지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는 불투명하다. 1994년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하지만 의외로 긍정적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 교수는 “역설적으로 지난 20년 이상 해결되지 못한 북핵문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층격과 공포’ 전략이 답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규범과 원칙을 무너뜨리는 트럼프식 접근이 도리어 북한을 상대할 때 유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 “모든 전쟁은 오인으로 시작된다. ‘4월 위기론’이 돌 정도로 위협이 그럴 듯하게 느껴질수록 협상력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김정은이 느끼는 위협 역시 커진다. 그런 경우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고, 군사적 옵션을 먼저 선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진다”고 부연했다. 관건은 한국 정부가 정확한 목표와 방향을 잡고 국제정세를 이해하느냐이다. ‘사드 찬반’ 입장만 정해놓아서 될 문제가 아니다. 계속 줄다리기를 할 미국과 중국의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 정권은 어쩌면 기회로 전환될 수도 있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na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