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마리화나 체인 사장으로 변신한 이유

‘스타버즈’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파는 스타벅스처럼 15종의 마리화나를 40여 종류의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마리화나를 넣어 만든 브라우니부터 사탕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마리화나를 피운 후 눈이 충혈될 경우 이를 진정시켜주는 안약세트도 판매하고 있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의 대로변을 따라 달리다 보면 ‘스타버즈’(Starbuds)라는 간판을 내건 평범한 상점이 눈에 띈다. 유명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 상점은 다름 아닌 마리화나(대마초)를 파는 곳이다. 가게 사장인 브라이언 루덴은 “우리 가게는 스타벅스처럼 누구나 매일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라면서 “마리화나를 열 번 구입하면 한 번 공짜로 주는 쿠폰도 발행한다”고 말했다.

미국 중간선거가 열린 11월 4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도움으로 미 마리화나 합법화의 출발지인 콜로라도에 다녀왔다. 콜로라도주는 2012년 워싱턴주와 함께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곳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워싱턴DC와 오리건, 알래스카, 플로리다에서도 오락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할지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함께 진행됐다. 개표 결과 플로리다를 제외한 3개 주에선 찬성이 주 헌법 개정선인 60%를 넘어 통과됐다. 괌에서도 의료용 마리화나를 허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미국에서 마리화나 합법화는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된 듯하다.

루덴은 원래 변호사였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을 미리 내다본 그는 발빠르게 마리화나 가게 체인 사장으로 변신했다. 덴버에 ‘스타버즈’ 1호점을 낸 뒤 콜로라도주 내에 매장 2곳을 추가로 열었다. 조만간 2곳 더 새로 문을 열 예정이다. 그는 본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직접 농장을 운영하며 마리화나를 재배한다. 매장 2층에서는 시범적으로 마리화나를 키우는 공간을 만들어 홍보용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루덴은 “미국 전역에서 마리화나가 합법화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며 “마리화나 업계의 스타벅스가 돼 각 주로 지점을 넓혀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 이제는 시간문제”
그의 말처럼 이 가게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파는 스타벅스처럼 15종의 마리화나를 40여 종류의 상품으로 만들어 판다. 마리화나를 넣어 만든 브라우니부터 사탕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마리화나를 피운 후 눈이 충혈될 경우 이를 진정시켜주는 안약세트도 판매하고 있었다. 1시간여 동안 20명 이상의 손님이 다녀갔다. 백인, 흑인, 남성, 여성 등 인종과 성별 구분 없이 소비층은 다양했다. 루덴은 “호기심에 찾아온 사람들도 많지만 6대 4의 비율 정도로 단골손님이 더 많다”며 “대부분 삶의 활력을 찾기 위해 마리화나를 구입한다”고 말했다.

자메이카의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인 밥 말리(1945~1981)를 앞세운 마리화나 브랜드도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말리의 유산을 관리하는 재단이 미국의 한 투자전문회사와 손을 잡고 조만간 최고급 마리화나 브랜드인 ‘말리 내추럴’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말보로 모델인 카우보이 남성이 담배를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다면, 레게 머리의 자메이카 가수 말리는 마리화나를 상징하는 얼굴이 되는 셈이다. ‘말리 내추럴’에는 마리화나뿐 아니라 마리화나 성분이 함유된 로션이나 립밤, 장신구도 포함될 예정이다. 마리화나 브랜드가 공식 출시되는 것은 최근 미국과 우루과이 등에서 불고 있는 마리화나 합법화 열풍 덕이다.

미국 콜로라도 대마초 상점인 스타버즈의 전경.

뉴욕타임스도 “지지” 공식적 입장 밝혀
마리화나 합법화 추세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마리화나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편익보다 더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미 미국인 대다수가 마음만 먹으면 암암리에 손쉽게 마리화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된 경우가 65만8000건이었다. 특히 젊은 흑인들의 체포 비율이 높았는데 어린 나이에 한두 번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이유로 평생 범죄자의 낙인을 찍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미국 시민 수잔 크라이펠즈는 “마리화나의 중독성은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담배나 술보다도 약하다”면서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무조건 처벌할 경우 미국 감옥은 금세 ‘정원 초과’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인 4명 중 3명(75%)이 “마리화나 합법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답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 10월 뉴욕타임스는 주류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우리가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마리화나 금지법을 1920~1933년 시행된 ‘금주법’에 빗댔다. 당시 금주법은 술 밀수·밀매 확산, 무허가 술집 속출, 범죄조직 창궐 등의 부작용을 낳은 끝에 13년 만에 폐지됐다. 이 매체는 마리화나가 술보다 훨씬 덜 위험한 물질인데도 40여년 전에 제정된 마리화나 금지법이 사회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각 주정부가 재정난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약이나 카지노 같은 범죄산업을 용인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존 하켄루퍼 콜로라도 전 주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주가 힘들어 하는 동안 콜로라도의 경제는 (마리화나 합법화 덕분에)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리화나가 법으로 금지돼 있는 다른 주에서 콜로라도로 ‘마리화나 관광’을 오는 등 마리화나 합법화로 인해 콜로라도주가 올 한 해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세수 증가액은 1억3400만 달러(약 1450억원)에 달한다.

덴버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한인은 “마리화나가 합법화되고 난 후 확실히 ‘마리화나 관광’ 덕분에 투숙객이 늘었다”면서 “장사가 잘 돼 좋긴 하지만 마리화나를 피워 충혈된 눈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우려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숙박업소에 묵고 있던 한 여성 투숙객은 “복도 밖에서 스며들어 오는 마리화나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교사인 로런스는 “마리화나가 아이들의 손에 들어갈 위험이 있는 한 합법화에 반대한다”고 뉴욕타임스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또 일각에서는 마리화나를 허용할 경우 마리화나를 피면서 운전을 하는 사람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는 등 치안문제에서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마리화나 합법화 논란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적은 없다. 얼마 전 타계한 가수 고 신해철이나 배우 김부선씨 등이 공개적으로 마리화나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회적 발언을 내놓은 정도가 전부이다. 하지만 미국의 마리화나 합법화 움직임이 어디까지 흘러갈지 지켜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국제부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