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 해외 부동산 ‘싹쓸이 쇼핑’

중국인들은 왜 최근들어 갑자기 해외 자산 투자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걸까. 전문가들은 중국의 해외 투자가 ‘안전한 자산 피난처’ 용도라 보고 있다.

세계 부동산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이 미국과 유럽 중심부의 랜드마크 건물들을 잇따라 집어삼키고 있다. ‘세계 정상들의 호텔’로 불리는 미국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 영국 런던 금융가의 명물인 로이드 빌딩을 소유한 것도 중국이다. 그런가 하면 남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집을 사면 체류비자를 내주는 ‘골든비자’ 특혜까지 내걸었다. 해외 부동산 투자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최근 중국의 투자 행보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종횡무진이다. 중국인들의 미국 내 자산투자는 2000년 5800만 달러(약 623억원)에서 2013년 140억 달러(약 15조)로 240여배 급증했다. 중국인들은 최근 들어 왜 이렇게 갑자기 해외 자산 사냥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일까.

주요 외신들은 7일 중국 안방(安邦)보험그룹이 뉴욕 맨해튼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힐튼 호텔 지주사인 힐튼월드와이드홀딩스로부터 19억5000만 달러(약 2조900억원)에 인수했다고 보도했다. 월도프 호텔은 중국이 해외에서 사들인 빌딩 중 가장 비싼 것이다. 힐튼은 1949년 창업주인 콘래드 힐튼이 이 호텔을 300만 달러에 매입한 후 65년 만에 650배의 가격으로 매각하게 됐다. 단일 호텔 건물 매각액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객실 수가 1413개인 점을 감안하면 객실 1개당 138만 달러에 팔린 셈이다. 최근까지 호텔 매매가의 상한은 객실당 100만 달러로 통했다.

호텔을 사들인 안방보험의 회장은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주석의 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다. 이 보험사에는 우 회장뿐 아니라 중국 공산당 혁명 원로와 고위간부의 자녀들이 포진해 있다고 홍콩 매체들이 전했다.

미국·유럽의 랜드마크 속속 접수
월도프 호텔이 중국에 인수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 호텔이 ‘뉴욕의 왕궁’으로 불릴 만큼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50년대에는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이 호텔에 머물러 냉전외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고, 유엔총회가 열린 지난 9월 24~25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세계 각국 정상들이 머문 호텔도 이곳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살아 생전 주당 1000달러를 내면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안방보험은 향후 100년간 힐튼에 호텔 경영권을 일임하기로 했다. 신흥 부호격인 중국 기업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월도프를 운영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어쨌든 월도프 인수가 중국 자본의 위상을 단숨에 높여주는 계기가 됐음은 틀림없다.

중국 자본의 랜드마크 인수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해 5월에는 핑안보험이 런던 금융가의 랜드마크인 로이드보험 본사 건물을 매입했고, 이어 6월에는 부동산 개발업체인 소호차이나 최고경영자(CEO)인 장신 회장이 뉴욕 맨해튼 중심부의 50층짜리 GM빌딩 지분 40%를 14억 달러에 매입했다. 또 그해 10월에는 푸싱그룹이 60층짜리 원 체이스 맨해튼 빌딩을 7억2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중국 투자자들에게 부동산 중개를 해주는 업체인 주화이사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미국 자산투자 지역은 뉴욕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미시간, 플로리다, 텍사스, 워싱턴으로 확대되고 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6월에는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중 한 곳인 완다그룹이 스페인 마드리드의 랜드마크인 스페인타워를 2억6500만 유로(약 3570억원)에 사들였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중국이 2008년 이후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역의 유명 와이너리(포도밭) 70여개를 사들였다”며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던 ‘주브레 샹베르팅’ 농장도 중국에 팔렸다”고 전했다.

금융위기 이후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부동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포르투갈·헝가리 등이 일정 금액 이상을 자국 부동산이나 채권에 투자하면 5년간의 체류비자는 물론 향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골든비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다. 포르투갈은 2012년부터 최근까지 1360여건의 골든비자를 발급했는데, 이 중 81%인 1100여건이 중국인에게 돌아갔다.

중국의 해외 자산 사냥은 최근 3~4년 새 갑자기 급증했다. CNBC에 따르면 중국은 일반 개인의 해외 자산투자 규모를 연간 5만 달러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본토 중국인들은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홍콩을 경유해 해외에 투자를 한다. 홍콩 통화당국의 통계를 보면 홍콩에 유입된 중국 위안화는 2009년 130억 달러에서 2010년 860억 달러로 급증한 후 2013년 1510억 달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중국인들은 왜 최근 들어 갑자기 해외 자산투자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걸까. 전문가들은 중국의 해외 투자가 ‘안전한 자산 피난처’ 용도라고 보고 있다. 중국의 미국 자산투자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는 리얼에스테이트 글로벌 파트너스의 마이클 고든 부회장은 “중국인들은 언제 하루아침에 재산을 몰수당할지 모르는 중국보다는 미국에 자산을 분산시키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CNBC에 말했다.

유엔본부 인근에 위치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해외투자 기준 완화, 구입 열풍 커질 듯
중국인들에게 100여곳의 포르투갈 자산 거래를 중개한 파인&컨트리사의 창립자인 찰스 로버츠도 “중국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비행기를 타고 본토를 떠나 부동산을 사둔 해외로 떠나려는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실제 포르투갈 부동산을 매입해 체류권을 획득한 중국인 5명 중 1명은 1년에 겨우 7일 정도 포르투갈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부패 척결을 외치며 강도 높은 사정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중국 부유층들의 불안감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버클레이즈와 리드베리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중국의 백만장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향후 5년 내 해외로 이민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이 10월 6일자로 해외 투자 규제 기준을 완화하면서 앞으로도 중국 자본의 해외 자산 구입 열풍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는 중국 기업들이 1억 달러 이상을 해외 자산에 투자할 경우 당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중국과 외교가 단절된 국가나 유엔이 제재하고 있는 산업분야에 투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방침을 바꿨다. CNBC는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관계가 아무리 출렁거리더라도 투자로 연결된 두 나라의 끈끈한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유진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gun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