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오키나와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고려 말기의 첫 교류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오키나와와 한반도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들이 별반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국가 중심의 동아시아 연구에서 벗어나 제주, 오키나와, 타이완이라는 지역을 연합하여 연구하는 시각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 지역들은 본토권력과의 관계 아래에서 역사적 비극을 경험했다는 공통점과 함께 아시아에서의 탈식민의 문제, 평화주의에 입각한 자치문제를 사유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필자 역시 이런저런 계기로 이러한 모색에 참가할 기회를 몇 차례 가질 수 있었는데, 지난 9월 19일 제주대 재일제주인센터와 탐라문화연구원이 공동주최한 ‘제주와 오키나와 공동 국제학술세미나’ 역시 그런 기회 중의 하나였다.

일본 향토사의 일부로 축소
이 세미나에는 한국 측에서 3명의 발제자가 나와 ‘한국과 오키나와 전후 문학과 제주 4·3문학’(이명원), ‘동아시아 변경의 군사화와 평화의 모색’(정영신), ‘제주신화와 오키나와신화의 유사성과 차이’(허남춘)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오키나와 측에서는 ‘제주도 장묘제도의 전통과 변화’(츠하 다카시), ‘화장제도의 법제화에 따른 사회변화가 초래한 사자(死者)와의 관계’(가미야 도모야키) 등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필자는 한국에서의 오키나와 연구의 현황과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운동가들로 구성된 오키나와 방문단이 오키나와와 제주, 대만을 비무장지대로 만들자는 평화캠페인을 벌이며 행진하고 있다. | Save Jeju Now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도 들었다. 오키나와에 대한 개별적 연구를 얼마간 시도해오면서, 한국에서 발표되거나 번역된 오키나와 관련 자료를 최대한 찾아 읽어보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검토한 연구 가운데 현재로서는 제주대 인문대와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 연구자들의 오키나와 연구가 의미 있는 작업으로 남아 있다. 제주대의 연구자들이 1990년대 후반부터 제주와 오키나와의 문화적 친족성을 중심으로 문화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해왔다면, 서울대의 오키나와 연구자들은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오키나와의 기지문제와 변경문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밖에도 몇몇 개별 연구자들이 오키나와 문학과 신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바 있으며, 편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오키나와 전쟁 당시의 조선인 문제를 조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의 오키나와 연구는 일본학 가운데서도 지방사나 향토사의 차원으로 축소되어 인식되는 측면이 강하고, 따라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의해 강점된 오키나와의 근대전환기 쟁점들과 미군기지 문제에 논의가 치중된 감이 없지 않다. 오키나와 역사와 문화의 독자성이라든가 아시아·태평양이라는 거시적인 좌표축에서의 연구, 또는 한반도와 오키나와의 비교사적 관점에서의 체계적이면서도 통사적인 연구는 여전히 빈약한 편이다.

가장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대목은 오키나와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이라 할 신가집(神歌集)인 <오모로소시>라든가, 오키나와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이하 후유의 저작들이 전혀 번역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오키나와인들의 현실에 대한 내밀한 고뇌를 담고 있는 오키나와 문학의 번역 역시 현재까지는 소설가 메도루마 슌의 <물방울> 정도에 불과하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오키나와 연구는 오키나와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는 저작에 대한 깊이 있는 소개와 음미가 매우 미약한 단계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본격적인 연구의 출발은 이제부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사실과는 별도로, 오키나와 전쟁 당시 오키나와에 체류했거나 강제연행되어 희생되었던 조선인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나 저작의 번역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다가온다. 오키나와의 조선인 위안부와 군부(軍夫) 문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일서(日書)를 읽은 바가 있다.

오키나와 조선인에 대한 탐구도 미약
오키나와 전쟁 당시 군부로 강제연행되었던 김원영의 <조선인 군부의 오키나와 일기>, 태평양 전쟁이 종전된 이후에도 오키나와에 남아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죽은 배봉기 할머니의 증언기록인 <오키나와의 할머니>, 재일 조선인 감독인 박수남이 오키나와 전쟁 당시 조선인 위안부와 군부의 삶을 파헤친 증언집 <아리랑의 노래>, 조선인이 오키나와에서 겪은 전쟁체험을 실증적으로 파헤친 <조선인의 오키나와전>이라는 저작 등이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저작은 일본어로 쓰여졌으나, 한국에는 번역이 안 된 까닭에 대중들이 접근하기에는 ‘언어의 장벽’이 높다. 물론 이밖에도 오키나와의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저작이나 기록들은 분명 다수 존재할 것이지만, 오키나와 자체가 한국의 학자들에게 집념을 갖고 탐구할 만한 대상으로 떠오른 게 아닌 이상, 조선인과 오키나와인의 이 비극적 만남은 한국의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필자 역시 그런 ‘무지의 베일’ 속에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이런 사례를 언급하는 것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려 말기의 첫 교류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오키나와와 한반도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들이 별반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에서의 한국 인식은 어떤 편인가. 오키나와의 학자들은 일찍부터 한국에 주목해 왔다. 그것은 오키나와학을 검토해가는 과정에서, 특히 <고류큐>로부터 현재의 미군기지 문제까지, 한국의 사서와 자료와 운동이 오키나와 자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고류큐 시기 오키나와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제주인 김비의의 표류기록, 즉 현재의 요나구니섬과 미야코, 오키나와 본도의 경험과 풍속을 참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1945년까지 조선과 오키나와는 역사적 영광과 비극을 공유하는 공간이었고, 그 교류기록 또한 다양하다. 이번 제주대의 국제세미나에 참가한 류큐대학의 츠하 교수 역시 1980년대 초반부터 제주도의 장묘문화를 포함한 민속학적 연구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는 점이 더 없이 인상적이었다. 그 시기의 한국인들에게 오키나와는 현재와는 다르지만 낯선 이국적 이미지로 남았을 터이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동아시아의 역사 변동이나 문화 교류를 국민국가를 범주로 하여 논의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쿠로시오 해류를 기반으로 했던 해양문화를 통한 교섭이나 식민주의로부터의 자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오키나와 연구는 한국학계에도 탐구해야 마땅할 풍부한 의제들을 던져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