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오키나와어 보존론을 적극 펼치고, 오키나와 원주민들이 일본어 공용어론을 오히려 반기는 듯한 역설적인 구도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만일 인간이 오늘날과 같이 분절음을 발화할 수 있는 상태로 진화하지 않았다면, 문명과 문화의 계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어는 또한 역사의 퇴적물이기도 하다.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도시의 비유를 들어 언어의 역사성을 설명한 적이 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보기로 하자.
서울의 도심에는 경복궁이 있다. 이 건축물을 보면서 우리는 조선왕조가 역사 속에 존재했음을 발견하고 가볍게 놀란다.
그러나 시선을 강남으로 돌리면, 마천루라는 비유조차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타워팰리스 군집을 발견한다. 전 지구적인 메트로폴리스의 한국적 버전이다.
건물의 지붕이나 담 위에 세워두는 사자 모양의 수호신이자 오키나와의 상징인 ‘시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편 지하철을 타고 4호선 당고개역에 내리면, 산업화 당시의 궁벽한 판잣집들이 대열을 이루고 있다. 경복궁과 타워팰리스, 판잣집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에서 중층적 역사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언어 역시 그러하다.
1940년대부터 오키나와어 금지정책
오늘과 같은 형태의 국어 또는 민족어가 문법적 체계성을 확보한 것은 19세기 이후 국민국가가 성립된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 서구의 식자층은 라틴어를, 동아시아의 사족(士族)들은 한문을 서기(書記) 체제로 활용했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이데올로기 장치이기도 했다. 라틴어가 중세유럽의 신정(神政)체제를 작동시켰다면, 한문은 중화체제의 영속성을 내면화했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의 출현과 함께 이 언어들은 쇠퇴하거나 상당 부분 영향력을 상실했다. 국가를 경계로 한 공용어로서의 국어가 출현한 것이다. 가령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이후 ‘헌법’과 ‘문법’을 통일함으로써 국민국가 체제를 확립한다.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과 오키나와는 어떠했을까. 조선의 경우 국가를 상실했으므로 민간의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저항적 국어운동을 전개했다.
물론 이 운동은 일제 말기인 1930년대 후반부터 총독부에 의한 거센 탄압에 직면했으며, 1940년대가 되면 ‘일본어 상용정책’ 또는 ‘조선어 말살정책’의 상황 속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키나와에서도 조선과 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류큐왕국이 오키나와 현으로 전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구어로서의 오키나와어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언어로 사용되었다.
물론 일본에 강점당한 이후에는 공통어(표준어)로서 일본어가 활용되었지만, 일본어와 오키나와어는 공존했다. 그러던 것이 1940년대가 되자 오키나와어를 박멸시키고자 하는 정책이 강제된다.
조선의 학교 현장이 그렇듯, 교사든 학생이든 오키나와어로 말하고 소통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실수로라도 오키나와어로 말하면 학생들은 방언찰(方言札)을 목에 걸고 교실 바깥에 서 있어야 했으며, 그것은 다른 오키나와어 ‘발성자’에게 인계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오키나와에서 벌어지고 있던 이런 오키나와어 박멸정책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은 일본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였다. 그는 조선총독부 당국이 광화문을 허물려 할 때에도 그것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조선민속박물관을 건립할 정도로 조선 문화에 애착을 보였으며, 조선의 미를 백자항아리 등을 들어 소박미, 비애미, 가냘픈 선의 미 등으로 규정한 사람이다.
야나기에게 오키나와어의 박멸은 조선에서의 상황과 유사한 민속문화의 위기로 간주되었다. 야나기가 조선이나 오키나와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표면적으로 조선과 오키나와 편에서 일본의 통치세력과 대립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 문화나 오키나와 문화나 실상은 일본 문화의 원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서제도의 오키나와 문화는 야요이 시대에 형성된 원 일본어의 흔적을 가장 잘 담고 있다.
조선 문화는 야요이 문화의 전파자인 동시에 중국의 선진문화를 일본에 중계한 ‘오래된 미래’이므로 보존해야 한다는 내심이 있었을 것이다.
오키나와 방언 논쟁을 검토해보면서 기묘하게 느껴지는 것은 토착민인 오키나와인들이 야나기 무네요시의 ‘오키나와어 박멸 반대론’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꾸로 <류큐신보> 지상에서 벌어진 ‘일본어-오키나와어 논쟁’을 보면, 오키나와의 지식인들은 일본어 공용론, 그러니까 오키나와어 박멸론을 적극 지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인이 오히려 오키나와어 보존론
이렇게 보면, 일본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오키나와어 보존론을 적극 펼치고, 오키나와 원주민들이 일본어 공용어론을 오히려 반기는 듯한 역설적인 구도가 형성되는 셈이다.
동시기 조선에서는 결코 이런 논쟁의 구도가 형성되지 않았다. 많은 국어학자와 문학자들은 검거와 고문, 수형생활 등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조선어를 보존하기 위한 대항논리를 개발하곤 했다.
“조선어를 박멸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도쿄의 표준어와 규슈 지역의 방언이 다르듯, 조선어 역시 일본의 ‘지방어’이기 때문이다. 일본어의 풍요성은 이 방언들의 존재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 아닌가. 아이누 방언, 오키나와 방언, 조선 방언들을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일본 문화의 풍요성에 기여하는 게 아닌가.” 이런 식의 대항논리도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인들 가운데 다수가 일본어 공용어론을 수용한 숨겨진 의도는 무엇인가. 가령 오키나와인 출신 현청 관료인 요시다 시엔의 <류큐신보> 지상에서의 발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오키나와인들은 일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 특히 가난과 경제공황 때문에 남미, 남양, 대만, 오사카 등으로 노동이민을 떠난 오키나와인들은 ‘비국민’으로 배제되어 온갖 형태의 차별과 저임금, 생활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차별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언어이다. 대다수의 노동이민자들은 학력이 별무하고, 일본어 구사에 서툴러 ‘피차별 부락’의 사람들, 또는 조선인과 유사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 차별을 현실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오키나와인들이 일본어를 체화함으로써 완전한 일본인이 되는 방법밖에는 없다. 오키나와인들의 완전한 ‘자치’와 ‘자존’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오키나와어의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에 일본어를 기입해야 한다. 뭐 이런 식의 주장이었다.
일제 당시에도 오키나와는 일본의 한 현이면서도 ‘일본 속의 이국’이었다. 이런 현실적 피차별 구조를 해소하기는 어렵다. 오키나와어를 버리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모욕과 차별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본어를 공통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차별적 상황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이, 야나기 식으로 오키나와어를 보존하자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오키나와적 특수성을 이해하려면 오키나와 방언 논쟁의 중층적 이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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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숙취’ 해소 될까?
“민심은 옳다…나부터 반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