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지속 가능한’ 전시를 향해

탄소배출량 40분의 1로 줄이는 해외 미술품 운송부터 쓰레기 남지 않는 전시 재료까지…

미술도 환경을 생각하자는 메시지 던져

미술품 전시도 환경을 생각할 수 있을까. 추상적인 질문을 바꿔, 국내 미술관이 해외 유명 미술작가의 작품을 들여와 대형 기획전을 한 번 열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만 따지면 어느 정도일까. 부산현대미술관이 지난 5월 4일부터 열고 있는 전시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의 소개 문구는 실제 이 미술관이 해외 작품을 항공편과 해상편으로 운송했을 때의 차이점을 대조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총 6점의 작품이 뉴욕에서 출발해 부산현대미술관에 도착하려면 총 무게가 1273㎏에 달하는 작품을 운송해야 한다. 항공편으로 옮기면 소요기간은 15일, 배편으로 온다면 그 4배인 60일 정도 걸린다. 시간만 따지면 항공운송을 택하는 게 더 낫고, 실제로도 많은 미술관이 항공운송을 택한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장 전경 /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그러나 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면 반드시 항공운송을 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미국 뉴욕의 JFK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의 거리는 1만1092㎞, 다시 인천공항에서 부산현대미술관까지 이동하는 거리는 432.54㎞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항공편에서 나오는 15.98t과 국내 트럭운송에서 배출되는 0.12t을 더해 16.1t에 이른다. 그런데 이마저도 편도 기준이니 전시가 끝나고 다시 작품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면 총 32.2t의 탄소배출량이 발생한다. 이는 2018년 기준 한국인의 1인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인 14.1t의 2배가 넘는다. 반면 같은 6점의 작품을 해상으로 운송하면 총거리는 항공운송 시의 1.6배인 왕복 3만7354㎞로 늘지만, 탄소배출량은 0.82t에 불과해 4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편리하고 빠른 방법을 택할지, 느려도 환경을 생각할지 미술관 관계자들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탄소배출과 쓰레기 줄이는 전시 모색

부산현대미술관은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전시의 취지에만 그치지 않고 개별 작품들의 메시지를 통해서도 ‘지속 가능한’ 미술과 전시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 해당 전시를 열었다. 국내·외의 작가 60여명이 회화와 조각, 사진, 영상, 설치, 아카이브 자료 등 90여점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이 전시는 단지 항공이냐 해상이냐의 문제만 고려하지 않고 전시 기획과 실행 전반에서 ‘지속 가능성’이란 원칙에 충실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구체적인 방안들을 보면 일선 미술관들의 큐레이터나 학예사, 기획자들이 느끼기엔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치밀하다. 전시 후 나올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석고벽은 사용하지 않으며, 입구를 제외하면 페인트와 시트지 또한 사용하지 않는다. 전시에 사용하는 벽은 전량 수거해 재사용하고, 이에 따라 나사와 못, 철사 등의 부속이나 작품마다 붙는 제목 및 설명판을 제외하면 폐기물은 남지 않을 예정이다. 외부 현수막을 제외한 모든 홍보 인쇄물도 잉크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한가지 색의 잉크만을 사용한다. 포스터, 초청장, 가로등 배너와 같은 불필요한 홍보 인쇄물도 제작하지 않는다. 대신 모든 홍보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데, 디지털 파일을 전송할 때도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파일 크기나 개수 등을 최소화한다.

뿐만 아니다. 전시장 내부에 쓰는 글도 수정이 쉽도록 모니터와 손글씨 등을 활용한다. 항공운송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거리의 작품은 생중계로 보여주거나, 또는 작품 제작 설명서만을 전송받아 현지에서 다시 제작하기도 한다. 몇몇 소장품은 아예 이동할 필요가 없도록 스캔한 디지털 파일을 내려받아 미술관에서 인쇄하되, 가능한 한 콩기름 잉크와 친환경 종이를 쓴다. 영상 작품에 사용되는 전력량이나 설치 과정에 쓰이는 공구 등의 전력량 역시 측정해 추후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는 데 활용한다. 신작은 다양한 친환경 재료를 실험해 차후에도 지속 가능한지 따지기로 했다. 물론 이번 전시에 쓴 방법이 최상의 대책이라고 자부할 수만은 없다고 미술관 스스로도 밝혔다.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콩기름 잉크나 친환경 종이가 환경에 그다지 친화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있고, 과도한 제약으로 인해 관객에게 제공돼야 할 최소한의 품질 또한 보장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이러한 실천에는 논란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작품마다 환경 고민 담아내

전시된 작품들 가운데서도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가며 만들어진 작품들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창작집단 이동시(edongshi) 소속 현희진 작가는 작품 ‘저항’을 그리며 몽당 색연필과 자, 컴퍼스만으로 꿀벌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질서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전시가 끝나는 날에 작가가 직접 지우개로 그림을 지우는 과정까지도 전시의 일부인데, 창작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색연필과 지우개 가루가 전부라는 점에서 전시의 방향을 잘 드러낸다. 현 작가는 “이번 작품은 그 과정과 행위에 주목했으면 좋겠다”면서 “나는 지금 한명이지만, 사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저항하고자 하는 힘, 그리고 따르고자 하는 힘 사이의 긴장을 놓지 않으려는 동지 저항군들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김하늘 작가의 ‘스택 앤 스택(팬데믹 안에서)’은 소재 자체를 코로나19 사태 이후 필수품이 된 마스크에서 찾았다. 수요가 폭증한 만큼 전 세계에서 한달 동안 폐기되는 마스크가 1290억장에 달한다. 이만큼 버려지는 마스크가 늘어난 상황에서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드는 마스크가 왜 재활용이 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 것이다. 마스크를 재활용하기 위해 거푸집을 제작하고 그 안에서 열풍으로 녹인 마스크를 다시 굳히는 과정을 반복하며 의자 형태의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예술계에서는 부산현대미술관의 전시 외에도 기후 문제에 대응해 작가들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참여하는 형식의 프로젝트도 이어지고 있다. 오는 6월 25일부터 진행되는 예술행동그룹 ‘이어위그’의 관객 참여 예술행동 프로젝트 <포텐트시티>도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되는 예술작업의 일환이다.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야외무대 T2에서 열리는 이 프로젝트는 작가들의 설치미술 작업과 함께 관객들이 참여해 진행하는 장소 특정형 작업이다. 텐트로 상징되는 피난처에 모인 작가와 관객들은 매일 입는 옷이 어떻게 생산되고 또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식을 담아 인터랙티브 웹페이지로 시각화하는 작업에 함께 참여한다. 이어서 진행되는 재활용 재료를 사용한 기후위기 대응 팻말 제작과 ‘기후 그림자 시리즈’의 미디어파사드 융합 공연 등도 지속 가능한 예술에 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