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프로파일러의 범죄도시](17)암수살인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수사기관은 암수살인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이 용어를 쓴다는 것은 암수살인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실종사건이나 사고사, 자살, 자연사 등이 타살이라고 주장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암수살인> 포스터

논란이 된 영화 <암수살인>이 개봉했다. 주지훈과 김윤석이라는 ‘천만배우’가 주인공이라는 사실보다 일반에게 화제가 된 것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당했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에는 영화적인 요소보다는 ‘암수살인’에서의 ‘암수범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에 의해 인지되지 않은 범죄
가장 먼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암수살인’이라는 용어는 실제 학문이나 수사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비슷한 개념으로 ‘암수범죄’(hidden crime·해당 범죄가 실제로는 발생하였으나 ‘수사기관에 의해 인지되지 않거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어도 용의자 신원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적인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가 있다. 암수범죄라는 용어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연구보고서나 관련 학회의 논문 등에서 다수 사용되고는 있다. 주로 성범죄 즉 강간사건이나 방화사건 등을 다룰 때 가해자와 피해자 성격이 공존하는 마약범죄 등에서 쓰이는 용어로, 살인사건에서 직접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수사기관에서도 암수살인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수사기관에서 이 용어를 쓴다는 것은 암수살인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실종사건이나 사고사, 자살, 자연사 등이 타살 즉 살인이라고 주장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암수살인>의 모티브가 된 2012년 11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869회편 <감옥에서 온 퍼즐: 살인 리스트의 진실은?>의 한 장면.

실종상태인 경우에는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않은 경우’에 속한다. 또 시체가 어떤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경로 및 절차’에 따라 일차적으로 사고사나 자살로 처리됐다면 그것 역시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않은 경우’에 속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이다. 강호순이 검거되기 전 조선족 출신 노래방 도우미들이 갑자기 실종됐다. 이 경우 강력사건 연관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강호순의 자백으로 사체가 발견되자 그제서야 살인사건으로 ‘인지’했다. 즉 피해자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분명 큰 변을 당했다고 신고를 했으나 단순 가출이나 미귀가, 실종으로 처리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예 뇌리에서 지워버리는 식이다.

또 다른 사례로 가해자는 면식범이 아니고, 피해자가 ‘우연히’ 살해돼 오랜 시간 유기상태로 있다가 정황상 사고사 혹은 자살 등으로 처리됐으나 훗날 진범의 자백에 의해 살인사건으로 인지된 경우이다. 해당 사건을 수사했거나 부검했던 담당자들은 결국 자신의 업무를 소홀히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수사기관은 책임을 전가하거나 열악한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할 것이고, 그러한 주장을 반박할 제도적인 장치 역시 없다. 또한 가족과 관련된 변사사건의 경우 자살이나 사고사, 자연사로 별도의 부검절차 없이 처리된 경우도 이 경우에 속한다.

전세계적으로 보아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변사자들이 자살로 처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때에도 좀 더 표준화되고 과학적인 수사가 필요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명백히 타살이 아닌 경우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유엔 관련 기구들도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명백히 타살이 아닌 경우를 판별하는 것을 오로지 담당 수사관 및 검사의 검시의견으로 결론짓는 것은 위험성을 늘 담보하고 있다. 대부분의 변사사건은 현장에서 검사가 직접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담당 경찰의 송치 결과에 따라간다. 또 경찰 역시 검안의 혹은 부검의의 의견에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이러한 변사사건들이 수사관 개인의 지극히 제한적인 경험이나 검안의나 부검의들의 제한된 사례 경험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변사사건은 단순해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단순 자연사나 자살 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경우가 많아 적지 않은 자원을 들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정성스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자살 처리, 좀 더 과학적 수사 필요
또 ‘인지되었으나 용의자 파악이 어려운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현실에서 ‘장기미제사건’ 또는 ‘공식적으로는 수사 중인 사건’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이 경우를 암수범죄에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인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분명 서류상으로는 수사기관에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수사는 수사 시작 2개월 안에 미제가 될지 해결될지가 판단된다. 그 안에 해결점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해결점이 보이지 않으면 그 상태로 미제사건이 되는 것이다.

영화 <암수살인> 스틸컷.

수사관 한 명이 담당하는 사건은 7~8개 정도이나 사건은 계속 밀려들어온다. 늦어도 3개월 안에 어떠한 해결점을 찾지 못할 경우 사건이 5~10년간 방치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사건은 미제사건팀으로 넘겨지지만 사실 거기에서도 대안은 없다.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범죄도시

결론적으로 암수살인은 존재한다. 아니, 존재해 왔다. 암수살인은 그 자체로 우리 수사·치안 시스템의 한계를 극명하게 노정한 사안이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암수살인이 없어지도록 할 책무를 우리 수사기관들이 어떻게 짊어지고 가느냐다. 사건의 실제 주인공인 김정수 형사는 해냈다(과정은 영화를 통해 알아봐도 될 듯하다). 그의 헌신에 감사를 드리며 희생되신 피해자분들의 명복을 빈다.

<배상훈 전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장(프로파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