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인터넷 세상 바꾸는 ‘블록체인 혁명’

민감한 정보 저장·관리의 분산으로 해킹이나 파괴 위험성 없어

지난 6일 ‘제1회 블록체인(blockchain) 테크비즈 컨퍼런스’가 열린 서울 가락동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15층 대회의실. 오후 1시로 예정된 본행사 시작 전 대회의실에 마련된 300석의 좌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이날 자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KISA,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 관련 기업들의 모임인 ‘블록체인 오픈포럼’ 등 민·관이 공동 개최한 국내 첫 블록체인 관련 공식 행사였다.

블록체인이 아직까지 국내에 생소한 개념임에도 참가 열기는 여느 기술 간담회보다 뜨거웠다. 뒤늦게 도착해 자리를 잡지 못한 참석자들은 벽에 기대 선 채로 참관했다. 컨퍼런스 참가 신청자는 600여명, 이날 실제 참석자는 400명을 훌쩍 넘어 참석률은 70%에 육박했다. 참석자 연령층도 대학생부터 40~50대 창업자들까지 다양했다. 개회사에 나선 백기승 KISA 원장은 “보통 컨퍼런스 참석률이 40~50% 수준인데 오늘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다”며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창업을 준비 중이라는 한 대학원생은 “블록체인 기술이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과 함께 왔다”며 “국내에서도 블록체인은 미개척분야라 아직 창업의 기회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4월 6일 서울 가락동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블록체인 테크비즈 컨퍼런스'에서 좌석을 가득 메운 참가자들이 백기승 KISA 원장(연단 가운데)의 개회사를 듣고 있다. / 한국인터넷진흥원 제공

비트코인 거래로 등장 활용범위 확대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지만 ‘블록체인’은 본래 금융자산 거래과정에서 쓰이는 핀테크다. 일정 시간 단위로 생성되는 ‘거래내역 묶음(블록)’을 ‘연결한다(체인)’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처음 등장한 건 온라인 가상화폐로 큰 관심을 모은 ‘비트코인’이 나오면서부터다. 비트코인의 거래내역(원장)을 비트코인 거래자끼리 공유해주는 ‘공유 원장 기술’이 블록체인이다.

비트코인에 있어 블록체인은 없어서는 안될 기술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비트코인은 화폐를 관리하는 은행이나 기관이 없는 ‘무국적 화폐’다. 화폐 거래도 자율성과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해 중개인이나 관리자 없이 철저하게 개인간 거래(P2P)를 원칙으로 한다. 관리자나 감시자가 없다보니 비트코인의 거래내역을 저장하고 관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전 세계의 모든 비트코인 거래내역을 실시간으로 기록한 뒤 그 내역을 거래자끼리 공유하는 방법이었다.

비트코인에서는 10분 단위로 최신 거래내역이 새로 생성된다. 생성된 거래내역은 자동 복사돼 전 세계 수많은 거래자에게 전달된다. 거래내역이 없어지거나 일부 훼손될 경우 다른 거래자로부터 내역을 복사해 온다. 해킹 등을 통해 비트코인을 만들어내거나 거래내역을 조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새 거래내역이 생성되려면 거래자 과반수의 인증을 받도록 했다.

블록체인은 비트코인 거래를 위해 등장했지만, 최근에는 비트코인보다 훨씬 더 주목받는 혁신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블록체인으로 비트코인을 관리하는 방식이 매우 효율적이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일반 금융거래의 경우 금융거래 정보가 저장된 서버가 해킹당하거나 파괴될 위험이 늘 존재한다. 블록체인에서는 거래내역을 분산 저장하다보니 특정 서버가 해킹되거나 파괴될 염려도 없고, 광범위한 ‘집단 인증’을 통해 새 거래내역을 생성하므로 금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현저하게 낮다. 이 같은 블록체인의 정보 저장·관리 방식은 보안이나 인증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 응용이 가능하다.

블록체인에서는 거래가 성립되는 즉시 거래내역이 생성돼 공유된다. 굳이 거래과정에서 중개나 공증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거래 당사자들끼리 안전하고 신뢰도 높은 거래를 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이 절감돼 효율적이다. 최근 각광받는 ‘스마트 컨트랙트(디지털 계약)’ 기술 역시 그간은 계약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블록체인을 적용해 계약을 안전하게 이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점차 활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2016년 발간한 <새로운 기술, 새로운 세상 지능정보사회> 보고서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자본, 정보, 활동의 흐름을 중앙집중식 데이터베이스나 중재기관 없이 관리하는 새로운 인프라를 창출할 수 있다”며 “이러한 효과 때문에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보의 ‘평등’을 가져오다

블록체인을 적용하면 실생활에서도 당장 변화나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분야가 많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특히 두드러지는 중고차 매매시장이 대표적이다. 차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많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중고차를 구매하거나 팔 때 정보력에 있어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다. 그렇다보니 중개인에게 의존해 중고차를 구매하거나 파는 게 일반적이고, 이 과정에서 중개인이 소비자를 속일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사고이력 조회자료만 해도 보험처리가 안된 사고는 기록이 안돼 있는 등 허점이 많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차량이 판매되는 순간부터 폐차되기까지의 모든 정보를 관리할 경우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제조사, 보험사, 공업사, 감독기관 등 중고차 매매와 연관된 모든 기관이나 업체가 차의 매매이력부터 사고내역 및 수리이력, 주행거리 등의 정보를 블록체인을 통해 저장하고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생성된 차량정보는 조작이나 가공이 불가능하므로 신뢰할 수 있다. 정보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굳이 중개인을 끼지 않고 개인 간 중고차 거래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유통기한이나 원산지 문제 등으로 말썽이 많은 식품분야에도 블록체인 기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육류의 경우 사육이나 가공, 유통 과정의 정보를 위조나 변경이 불가능한 블록체인으로 구축해 관리하면 최종소비자들은 이 정보를 보고 안심하고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다. 가공식품 역시 원료의 원산지부터 가공일자와 지역, 납품일과 유통기한 등의 정보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면 보다 안전하고 투명하게 식품을 유통할 수 있다. 미국 월마트의 경우 식료품 문제가 많은 중국 시장에서 이미 블록체인을 통한 식품 관리체제를 시범운영 중이고, 단계적으로 세계 전 지역으로 적용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다.

금융과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 구축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선 “향후 1년 내 전 세계 은행의 80%가 블록체인을 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블록체인 컨소시엄 중 하나인 ‘R3CEV’에는 2016년 12월 기준 전 세계 45개의 대형은행들이 모여 블록체인 기반 국제금융 결제망을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는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이 컨소시엄에 참여 중이다.

IBM 박세열 금융총괄 아키텍트는 “IBM이 실용화를 내다보고 투자 중인 ‘이머징 테크놀로지’의 두 축이 바로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라며 “향후 5~6년 내 은행거래의 대부분을 블록체인 기술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SDS 관계자들이 4월 6일 서울 잠실 삼성SDS 사옥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자사의 플랫폼인 '넥스레저'를 활용한 블록체인 서비스를 시연하고 있다. / 삼성SDS 제공

미국 나스닥은 블록체인 기반의 장외거래서비스를 도입해 중앙관리자가 일일이 관리하던 장외 주식거래를 공동검증 방식으로 변경했다. 덕분에 거래수수료가 기존 몇만원대에서 단 1000원 수준으로 줄었고, 모든 거래내역을 추적할 수 있게 돼 불법거래를 방지하는 데 효과를 보고 있다. 시티그룹은 블록체인을 활용해 자체 글로벌 화폐인 ‘시티코인’을 개발해 해외송금과 결제업무에 쓸 예정이고, 구글은 올해 환자정보 관리 및 추적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삼성카드, 전북은행, 신한은행 등이 일부 결제·인증 과정에 블록체인을 도입했다. 공인인증이나 전자민원 등에도 블록체인 도입이 논의되고 있고, 경기도는 올 2월 블록체인을 통한 주민 모의전자투표를 진행하는 등 공공영역에서의 블록체인 활용 시도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인프라로 생각하고 투자해야

해외에서는 블록체인 관련 기술 개발이나 상용화가 수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시작된 가상화폐 종류도 늘어 ‘이더리움(Ethereum)’과 같은 새 가상화폐도 등장했고, 국제송금에 특화된 블록체인 서비스인 ‘리플(Ripple)’ 등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R3CEV와 더불어 글로벌 블록체인 컨소시엄의 양대축인 ‘하이퍼레저(Hyperledger)’는 블록체인의 글로벌 표준화를 목표로 연합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특징 중 하나가 ‘열린 기술’이라는 점이다. 아직 생태계를 형성하고 시장을 만들어가는 단계이다보니 업체 간 기술교류나 협업도 활발한 편이다. 안드로이드를 활용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듯이 공개된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 창업도 가능하다. 그만큼 기회가 아직은 열려 있다는 뜻이다.

해외에 비해 시작이 늦은 탓에 국내 블록체인 관련 기업 환경은 척박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블록체인 기술이 해외 선진국과 비교해 약 2.2년의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부의 최근 조사를 보면 국내 블록체인 전문기업은 10여개, 전문가와 종사자 수를 합쳐도 200여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민·관이 협력해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전문인력 양성, 관련 법·규제 정비 등 다양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KISA가 이달 초 블록체인 업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시급한 과제로 법률·규제 해소, 전문인력 양성, 영역별 시범사업 구축 등을 꼽았다.

금융권 프라이빗 블록체인 개발업체인 더루프의 이정훈 이사는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블록체인 표준도 제안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며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국내 서비스 사례를 만드는 게 우선 중요하다”고 밝혔다. 코인플러그 어준선 대표는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보험상품 계약 등 다양하게 결합한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현실적·제도적으로 많은 장애물이 있다”며 “새로운 혁신기술을 만들 수 있는 제도 등을 빨리 활성화해 관련 분야 창업자들의 숨통을 터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현제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융합서비스 최고책임자는 “블록체인도 과거 인터넷망 확충처럼 하나의 인프라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며 “인프라 보급과 함께 관련 기술 개발을 동시에 진행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부 이재형 융합신산업과장은 “블록체인 기반기술 및 응용기술 개발을 위해 올해 30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며 “블록체인 기술의 표준화에 대응하고 블록체인 연구센터를 통해 인재 양성에 나서는 등 지원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