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병맛통신]‘김치녀’를 들먹이는 ‘김항문’들

‘김항문’이라는 아이디를 쓰던 어떤 남성 네티즌은 된장녀들을 특히 심각하게 증오했던 것 같다. 그는 야심한 시각 여성 커뮤니티 ‘마이클럽’에 끔찍한 사진들을 올려, 그것을 본 여성들을 심한 충격에 빠뜨렸다.

요즘 ‘아몰랑’이라는 신종 유행어와 함께, 문제를 일으킨 어느 여성 커뮤니티가 인터넷에서 많이 화제에 오른다. 위의 여성 커뮤니티에서 “설명도 하기 싫고 난 몰라 귀찮아”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는 ‘아몰랑’은 요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더불어 더욱 비하적으로 사용되는데, 그러면서 ‘여성 혐오’에 대해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한다.

흔히 ‘여혐’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가 실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차마 입에 올리기도 천박한 말이지만 ‘보슬아치’라는 거친 인터넷 용어가 있다. ‘벼슬아치’를 여성 성기에 접붙여 생겨난 이 말은 성을 권력으로 삼는 여성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에로틱 자본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득을 꾀하는 여성들이 여성 혐오의 기폭제였다면 이제는 ‘김치녀’라는 말로 진화해 한국 여성 전반을 혐오하는 단어로 흔히 쓰인다. 사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여성 혐오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한창 유행했던, 아직도 살아 있는 단어인 ‘된장녀’를 기억하시는지. 당시 ‘된장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고, 복학생들에게 오빠 오빠 하고 부르면서 밥을 얻어먹고, 식사는 김밥천국에서 때우더라도 스타벅스에서 5000원짜리 커피는 꼭 마셔야 하며, 남자가 돈을 쓰는 것이 애정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세속적이고 자본주의에 충실한 여성들을 비꼬는 그 단어가 된장녀였다면 여성 혐오는 보다 진화해 ‘김치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심한 여성들을 ‘보슬아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아직 한국의 양성평등 지수는 통계로도 전 세계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이처럼 여성 혐오가 심해진 까닭은 무엇일까.

2007년 119개 여성단체가 서울역에서 마련한 ‘밤길 되찾기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여성 폭력에 대한 반대 의미를 담은 ‘달빛 체조’를 음악에 맞춰 추고 있다. | 경향신문

여성을 괴롭히는 남성들의 이중잣대
여기에 대해 생각했을 때 내가 떠올린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몇 년 전 일종의 취재를 위해 사무실에 녹즙 배달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22개월이나 했으니 녹즙 병장 만기 제대를 한 셈인데, IT 계열과 건설회사가 배당되어 수많은 아저씨들을 만났다. 그들은 거의 다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친절하고 매너 좋은 어느 과장님이 손수레를 도둑맞고 등산용 가방 두 개에 녹즙과 얼음팩을 잔뜩 짊어지고 끙끙대며 다니는 나를 딱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이런 충고를 한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해요? 요즘 바 같은 데 옛날같이 터치하고 그런 거 없어요. 훨씬 편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고 그래요.” 가장 서글픈 건 그에게 악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말에는 동전의 양면 같은 이중성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내가 그렇게 ‘터치’도 심하지 않고 적당히 말상대나 해 주면서 돈을 벌었다면, 아마 그들은 뒤에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요즘 여자애들 고생도 안 하고 편하게 돈 벌려고 술집에서 일이나 하고 말이야.” 물론 남성들도 고충이 많겠지만, 여성들을 괴롭히는 것은 이런 이중잣대다. 섹시하되 섹스해선 안 되고 정숙해야 하며, 매력이 있되 그 매력에 자신감을 가지지 말고 늘 겸손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일 것. 예쁘면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못생기고 뚱뚱하면 놀림과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 도대체 어느 곳에도 발 붙일 데가 없다.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6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김항문’이라는 아이디를 쓰던 어떤 남성 네티즌은 된장녀들을 특히 심각하게 증오했던 것 같다. 그 증거로 그는 야심한 시각 ‘선영아 사랑해’라는 카피로 유명했던 여성 커뮤니티 ‘마이클럽’에 ‘여성들은 자신의 항문을 팔아 스타벅스 커피를 사마시기를 원한다’며 단순한 포르노 수준이 아닌 끔찍한 ‘고어’라 할 만한 수위의 사진들을 올렸다. 여성의 항문에 각종 잔혹한 성폭력이 가해져 있는 것을 상세히 촬영한 사진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게시물을 클릭했던 여성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왜 그런 것을 올리냐는 항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사이트의 ‘선영이’들이 아무리 분노해도 김항문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항의하는 여성들을 조롱하며 ‘창녀들은 항문을 팔아서 국가 수익에 일조하라’고 계속 글을 올린다.

당시 운영자가 근무하지 않는 시각이라 그가 작성한 이러한 게시물은 80여개에 이르게 된다. 다음날 해당 사이트는 단순히 관련 글을 포함해 회원들의 글까지 모조리 삭제한다. 삭제된 그의 글 중 ‘너희가 모여 이렇게 된장녀스러운 입담을 주고 받는 곳은 우리가 하나하나 색출하여 부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김항문은 여성부 폐지를 외치며 남성 사이트를 표방해 만들어진 어느 웹사이트에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알렸다. 회원들은 마치 우국지사를 격려하듯 그를 치하했다. 집단적인 여성 혐오의 원조 격인 사건이었다. 여자들이 모여서 남자 친구가 어쨌다 저쨌다, 남편이 어쨌다 저쨌다에서 결혼과 직장과 진로까지, 지극히 사소한 욕망과 슬픔을 서로 나누고 있는 모습은 그들에게는 그저 된장녀들이 머리를 맞대고 남자들 등쳐 먹고 ‘보슬아치’ 짓할 지혜나 서로 공유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혐오는 순식간에 전염되어 불 붙듯 타올랐다. 그 남성 사이트의 몇몇 회원들은 아주 엄숙한 어조로 이것을 ‘테러’ 아닌 ‘심판’이라고 부르며 동참을 촉구했다. 된장녀들의 대표 사이트가 그 사이트다, 페미들이 우글우글하는 소굴이니 된장녀들에게 맛을 보여 줘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된장녀들을 심판하는 용감한 김항문님을 도와주자며 몇몇 회원들은 다시 마이클럽에 난입해 김항문을 옹호하고, 항의하는 회원들을 비하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한다. 남성 전용 사이트에서는 작전회의가 계속되었다.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테러가 필요하다는 의견부터 시작해서 김항문님 혼자 당하게 둘 수 없다, 여럿이 가서 밀어붙이자는 등 정의와 의리가 꽃피었다. 이 사건을 사이버 성폭력으로 인식한 여성 네티즌들은 고소를 준비한다. 사이버 성폭력 사상 최대 규모의 집단 고소였다. 하지만 김항문은 전혀 기죽지 않고 자신이 가입한 아이디로는 주민번호를 추적할 수 없는데다 자신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절대 잡히지 않는다며 글을 올린다. 그리고 3년 2개월 후, 김항문은 체포된다. 하지만 그 혐의가 성폭력은 아니었다.

사이버 성폭력으로 처벌도 안 받아
그에게 적용된 것은 고작 음란물 유포죄에 불과했다. 담당 수사관은 “성폭력특별법 14조 적용은 어렵다”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비슷한 경험에 의하면, 이것은 구체적으로 특정인에게 전송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보인다. 현재의 사이버 성폭력 관련 법으로는 메일 등의 수단으로 직접 특정인에게 전송한 것이 아닐 경우 사이버 성폭력이 성립되지 않는다. 메일로 보냈을 경우 성폭력이지만 여럿이 보는 게시판에 올린 것은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하필 그 시간에 컴퓨터는 왜 켜서 거기 접속해서 눈을 버렸냐, 클릭한 네 손모가지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당시 그 항문 사진은 보지 못했지만 증오에 찬 김항문의 다른 글은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김항문들이 있다. ‘보슬아치’ ‘김치녀’라며 그들은 한국 여성을 자기 엄마 외에는 다 미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에 누가 ‘줄 듯 말 듯’ 약만 올리고 안 줬나, 하는 허탈한 상상까지 들 정도로 나는 그 증오를 이해하기가 어렵고, 종종 두렵다. 단순한 혐오나 멸시로 끝나지 않고 얼마 전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가 시신이 되어 야산에 시멘트로 묻힌 여성처럼, 죽음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김치녀’ ‘보슬아치’라고 큰 소리로 말할 때 여성들의 근심 어린 상상력은 심지어 목숨의 안위까지 근심하게 만든다. 과장된 걱정이라고 말하기엔 오늘도 토막 나 죽은 여성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게 내가 아니라고, 한국 여성의 몇이나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몇 년 전 나 역시 사이버 성폭력 사건 상담을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 일이 있다. 나는 얼굴도 모르지만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의 학생이라 나를 본 적이 있다는 그는 내 앞에서는 웃었지만 자신의 집 저녁식탁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따뜻한 전구를 내 ‘버자이너’ 안에 끝까지 밀어넣고 군홧발로 밟아 부수고 싶다고 자기 블로그에 적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성폭력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나에게 직접 전송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블로그에 게재한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합의해 달라며 보내 온 그의 이메일은 더욱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한마디로 자신은 거친 언어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랩 스타 에미넴 같은 태도로 한 것이었고, 당신을 에미넴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조롱하듯 표현했을 뿐이라는 거였다.

김현진의 병맛통신

내 ‘버자이너’에 따뜻한 알전구를 집어넣고 군홧발로 짓밟고 싶다는 그 표현만으로도 그를 용서할 수 없는 판에 웬 에미넴과 브리트니. 물론 나는 합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젊은 남자 앞길을 막았다는 비난을 숱하게 받았다. 아무도 내 ‘버자이너’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 것이다. ‘여성 혐오’의 기저에는 여성들이 굉장히 큰 특권을 누리며 남성들의 등을 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에로틱 자본을 누릴 수 있는 여성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그 시절도 화무십일홍으로 짧다. 당신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김치녀’들의 대다수는 알전구를 ‘버자이너’에 넣겠다는 글에 노출되고, 살인된 후 토막토막이 나고, 헤어지자고 했다가 시멘트에 묻힌다. 이 두려움을 털어놓았을 때 기뻐하는 이들이 있을까봐 오래 망설였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야말로 ‘병맛’이다.

<김현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