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골리앗>-적에 대한 공포를 부풀려야 투쟁심도 커진다?

우리 보통사람들 중 누구도 ‘영웅 다윗’이나 ‘무서운 골리앗’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윗이 되기 위해 무서운 골리앗을 만들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이들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골리앗>과 같은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기독교 구약성서(사무엘상 17장)에서 묘사된 골리앗이다. 현대 단위로는 키가 2m70㎝를 넘고 몸에 걸친 갑옷 무게만도 50㎏이 넘는 거구다. 이런 거인과 싸워서 이긴 이가 있으니, 바로 양치기 소년이던 다윗이다. 홍안의 다윗이 용맹하게 전장에 나가 물맷돌로 골리앗의 머리를 맞히고 그의 머리를 베어 블레셋 민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 구약성서의 기록이다. 그 기록이 전승되고 널리 퍼져 다윗은 구약 시대의 유대민족뿐만 아니라 현대 이스라엘의 영웅이자, 온 세계 기독교인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다 아는 유명인이 된 것은 덤이다.

성서 버전의 주인공은 다윗이지만, 스코틀랜드 출신 만화가 톰 골드의 그래픽노블 <골리앗>은 이 유명한 이야기를 골리앗을 중심으로 하여 다시 바라본다. 골리앗에 관한 유일한 기록인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되 말해지지 않은 부분에 상상력을 가미해서 탄생한 톰 골드의 골리앗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 골리앗은 용맹흉포한 장수가 아니다. 덩치만 컸다 뿐이지 전투경험은 별반 없고 행정업무에 능한, 소박하고 감수성 짙은 청년이다.

스코틀랜드 출신 만화가 톰 골드의 그래픽노블 <골리앗>. / 이봄 제공

덩치만 클 뿐 소박하고 감수성 짙은 청년
그런 그가 어떻게 ‘싸움을 돋우는 자’로 나서게 되었을까? <골리앗>은 거구의 골리앗을 이용해 전쟁에서 이점을 취하려는 상부의 명령에 의해 그리 되었다고 해석한다. 싸움을 돋우기 위해 그가 외쳤던 말도 대장이 전해준 쪽지 내용을 그럴 듯하게 읽었던 것일 뿐이다.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다 읽고 나면 어떻게 하죠?” 하고 골리앗은 어리숙한 표정으로 상관에게 묻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스라엘 진영 앞에 나가서 또 읽으라는 명령이 돌아온다.

다윗에게 죽임당하기 전까지 40일 동안 이어졌던 골리앗의 도발이 그런 식이었다고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재해석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저 골리앗을 측은해하며 책을 덮으면 되는 걸까? 독서의 의미는 독자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 어떤 정석을 제시하기보다는 내게 다가온 의미를 풀어놓아 본다.

나는 책을 덮자마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골리앗의 블레셋 진영이 아니라 다윗의 유대인 진영에서 펼친 그 상상 속에서, 나는 톰 골드처럼 말해지지 않은 부분이 아니라 말해진 것에 주목했다. 한 민족의 역사 기술로 구약성서를 바라볼 때 그 안에는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라든가 하는 신화적인 부분이 아니라, 있을 법하지만 그저 그대로는 아니었을 역사 기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골리앗의 덩치가 그렇다. 구약 사무엘상의 저자는 골리앗이 거의 3m에 육박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당시 전장에서 먼발치에서 골리앗을 보았던 척후병이 어림잡아 그리 말했던 것이 성서 기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은 아닐까? 그 과정에서 과장은 없었을까? 이런 의문들을 요약하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왜 골리앗은 그렇게 커야 했을까?

국가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과 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당대의 기록들이 모두 참은 아니다. 이라크 전쟁만 해도 그렇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이라크전의 명분이었지만, 실제로 보유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전쟁 후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북한과 ‘휴전 중’인 대한민국의 군비증강 논리도 비슷하다. 상대방의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최대한 과장하여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쪽의 군사력을 늘려나간다. 이런 경우에서 보듯, 적은 강해야 한다. 적이 강하다는 것을 내부에 주지시키는 것은 현실적인 효과를 지닌다. 외부가 크다는 것을 알 때 내부의 커지려는 욕망도 덩달아 커진다. 결속과 결집도 가능하다. 외부의 위험은 내부의 안정을 향한 욕구를 자극한다. 실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약한 적’을 상대하기보다는 ‘강한 적’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약한 적’에게 지는 것보다는 ‘강한 적’에게 지는 것이 훨씬 납득이 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기기라도 하면 ‘강한 적’을 이겨냈다는 자부심이 생겨난다. 그리고 ‘강한 적’을 무찌른 영웅이 탄생한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그렇게 유명해지고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그만큼 골리앗이 강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런 실질적 이득과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며 만들어지는 것이 적에 대한 공포와 위험이다.

스코틀랜드 출신 만화가 톰 골드의 그래픽노블 <골리앗>. / 이봄 제공

‘강한 적’을 만들어 내부결속 다져
이렇게 국제적으로 커다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들은 보통사람들이다. 국가만이 그렇게 적을 부풀려서 싸우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와 성별, 이데올로기적 분할을 토대로 한 보통사람들의 공동체도 그렇게 한다.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옮길 것이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교회가 무너진다는 주장,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IS보다 더 위험하다거나 ‘김치녀’ 때문에 한국이 망해간다는 주장 등 정말 얼토당토않은 공포와 위험의 수사들이 떠돌고 있지 않은가. ‘종북좌파’ 타령은 말할 것도 없다. 외국인 노동자나 연변 동포의 범죄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메르스가 ‘동성애자의 에이즈’와 결합하여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거라는 억측도 떠돈다. 이 모든 것이 공동체를 오직 그런 식으로만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며 앞장선 이들은 마치 ‘무서운 골리앗’ 앞에 짱돌 하나 들고 선 ‘영웅 다윗’과 같은 위치를 점한다. 만에 하나 그런 주장을 내세우는 측이 승리한다면, 그들은 다윗 왕처럼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우리 보통사람들 중 누구도 ‘영웅 다윗’이나 ‘무서운 골리앗’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윗이 되기 위해 무서운 골리앗을 만들고 공동체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이들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골리앗>과 같은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외부에 대해 내부에서 말한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모두를 넘어서는 상대방과 나에 대한 상상. 무섭다는 그들이 정말로 무서운 이들인지를 되묻고, 그들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인지를 떠올려보는 것, 그것이 먼저 이루어질 때 ‘무서운 골리앗’도 ‘영웅 다윗’도 아닌 우리들은 그저 우리의 이름으로 서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만나 서로의 민낯과 실체를 확인할 때, 골리앗과 다윗이 친구가 되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퀴어 퍼레이드에서 기독교인과 동성애자가 손을 맞잡고, 교회에 동성애자가 마음 편히 찾아오는 그런 일 말이다.

만화로 본 세상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와 같은 형식으로 적지 않은 기독교인과 동성애자가 서로 연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허황되고 나이브한 상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지금의 적대를 통해 이득을 누리기 위해 위험과 공포를 만들어내는 이들만 아니라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어떤 기독교인들, 어떤 남성, 어떤 보수주의자, 어떤 민족주의자들과 이 상상을 나누고 싶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