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까? 자식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서 못된 짓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식 앞에서 가장 선량한 체하겠지. 남을 중상하고 못살게 굴면서도 그런 해코지가 자신에게 돌아오리라곤 생각지도 않겠지. 강도의 자식이나 도둑의 자식이 부모의 죄를 모르리라 생각하겠지. 또는 힘 있음과 재물 많음을 빙자하여 제 욕심 차리는 자들도 제 자식이 모르리라고 여기겠지. 세상은 그리 단순하고 간단한 게 아니어서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지게 마련이었다.” -인간시장 10권 <너만 사랑해> 중에서.
김홍신 작가의 <인간시장>을 읽었다. 1권만 우선 읽어봐야지 했던 게 10권을 후루룩 다 읽고 말았다. 스물두 살 장총찬은 세상에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는다. 전편에서 드러나는 주인공 장총찬의 하느님에 대한 도전은 신랄하다. ‘하느님, 내려와서 보시라. 이제 당신이 난지도 쓰레기 더미에 누워 반성할 차례다.’ 이런 식이다.
“하느님, 하느님도 좀 이런 건 제발 알아두쇼. 백문이 불여일견이랬으니 한 번 내려와 보시든가. 나 같은 꼴찌들도 좀 먹고살게 해주쇼…. 하느님, 앞으로 내가 별의별 짓을 다 하더라도 두 눈 꼭 감고 계세요. 여태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1권 <사설왕국> 중에서
내가 4살 때의 대한민국이 배경이다. 4살 때나 40을 코앞에 둔 지금이나 세상은 변한 게 없다. 장총찬의 울분에 감정이 이입되고, 그의 독설에 속이 시원한데, 읽고 나니 답답하다. ‘인간시장’이 되어버린 세상, 그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다니! 아니, 시장은 더 비열해졌다. 그동안 작가는 일흔을 앞둔 노인이 되었고, 4살짜리는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으며, 34년 전에 씌어진 <인간시장>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는 이 불편한 기분이란. 시민들이 만든 민간 통일운동단체 ‘통일의병’ 활동을 하느라 바쁜 김홍신 작가를 ‘통일의병’들이 모이는 날 찾아가서 만났다. 요즘 그와 함께하는 활동이 많은 법륜 스님, 그리고 청년회원들과 오랜 시간 열띤 토론을 끝낸 뒤였다.
최근 소설 <단 한 번의 사랑>을 낸 김홍신 작가. | 박상미
560만부가 나간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이 개정 출간되었어요. 1981년 초 ‘스물두 살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주간한국>에 연재를 시작했던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지요? <인간시장>을 다시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왔어야 하는데(웃음).
“<인간시장>을 쓸 때만 해도 세월이 지나면 세상이 한결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은 더 교묘하게 비뚤어지고 잔혹해졌죠. 비겁하고 약삭빠르고 음흉한 자들이 여전히 빼앗는 자의 자리에 앉아서 빼앗긴 사람들을 능멸하고 있어요.”
영화와 연극으로도 제작이 되고, 88년엔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었고, 출간 20년이 지난 2004년에 다시 TV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는데요. 초등학생 때 배우 박상원씨가 장총찬 역할로 스타 배우가 됐던 기억이 나요. 꾸준히, 지금도 <인간시장>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인간시장>이 인기 있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이지요. 5년간 원고지 1만129장 분량을 손으로 썼어요. 주인공 장총찬이 매 장마다 새로운 사건을 만나고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한국판 루팡’이라고도 하더군요. 답답한 시대에 당찬 청년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통쾌함을 주었기 때문일 거예요. <인간시장>을 쓰던 시기는 계엄사 검열단과 매일 전쟁이었어요. 한 맺힌 마음으로 막 써냈죠. 며칠 전 새로 나온 책을 다시 읽으면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 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재를 도와줬던 건달들이 지금도 연락을 하거든요. 책이 새로 나왔다니까 전화가 왔어요. ‘형님, 우리가 많이 도와드린 거 알죠?’(웃음) <인간시장>은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은, 대중에게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책입니다.”
<인간시장> 직전에 쓴 <도둑놈과 도둑님> 출간 후,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겪으셨다고요.
“숨소리까지 감시받는 기분으로 살던 시절이었어요. 택시 타고 가다가 말 한마디 잘못해도 택시가 파출소 앞에 당도해 있곤 했죠. <도둑놈과 도둑님> 때문에 끌려가게 되었을 때, 선배들이 교육을 시켰어요. 잘난 척하지 말고, 아는 체하지 말고, 말대꾸하지 말고, 볼품없는 글쟁이로 보여야 안 맞고 빨리 풀려난다고…. 키가 나보다 20㎝ 이상 커 보이는 헌병에게 양팔을 붙들려서 질질 끌려 들어가는데, 큰 방에 군 야전침대만 12개가 있고, 보안사에서 나온 전두환의 최측근이 권총을 차고 앉아 있었어요. 단 둘이 마주 앉았는데, 기에 눌렸어요. 야전침대에 앉으니 엉덩이는 침대 속으로 쑥 들어가고, 작은 몸은 자동으로 웅크려져서 허리가 펴지지 않았죠. 이 사람에게 여기서 총 맞아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이라 이름은 안 대겠어요. ‘죄목을 아냐? 국가원수 모독, 체제 비방, 이 두 가지는 용서하겠다. 하지만 이건 용서 못해!’ 소리를 지르는데 겁나더라고요.”
<도둑놈과 도둑님>을 저도 읽었는데, 그렇게 무서운 죄명을 덮어씌울 수 있는 소설이 아니던데요(웃음).
“군 모독죄! 소리를 지르는데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땀이 나더라고요. 그건 사형감이거든요. 배운 대로 못하고 나도 모르게 말대꾸를 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소설이란 있는 얘기가 아니고 없는 얘기를 있는 것처럼 쓰는 것이다. 허구이므로 군 모독이 아니다.’ 그러니 쌍욕을 하더라구요. 다행히 밖에서 도와준 분들이 많아서 한 달 만에 공포에서 풀려났어요.”
그래서 <인간시장> 주인공 ‘장총찬’이 탄생한 거로군요. 이젠 김홍신이 장총을 들고 세상을 겨누는.
“한 맺힌 마음으로 막 썼죠. 쓰면서 분한 마음이 많이 삭았죠. 군 검열단이 내 소설은 신문에 싣기 전에 모조리 첨삭을 했어요. 원래 ‘권총찬’이었는데, 계엄사 검열단이 성도 뺐어요. 나중에 내가 ‘장’을 집어넣은 거죠. 중요한 낱말은 다 바꾸어 놓았어요. 검열단은 검열 수위를 높이고, 나는 내용의 강도를 더 높이고, 서로의 전쟁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한 독설은 수위가 높았어요. 권총보다는 장총이 더 세게 느껴져서 좋은 것 같은데요? 육필원고가 있다면 검열 이전의 소설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보안사의 권총 찬 사나이의 소식은 들은 적 있나요.
“첨삭당할 걸 염두에 두고 최고 수위의 단어를 선택해서 썼으니, 첨삭된 것도 제 의도는 다 담고 있어요(웃음). 지금은 잘 보관하지만 그때는 신문에 연재를 했으니 육필원고는 신문사에 넘긴 후 돌려받지 못했어요. 권총 찬 사나이는 그 뒤에 국회의원이 되었어요. 그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제가 신문에 글로 써서 그의 진로를 방해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를 용서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노태우 정권 때 비가 엄청 오는 날, 영동 근처에서 그가 유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큰 교통사고가 났는데, 위독하다는 뉴스를 본 거예요. 그때 아내에게 ‘내가 미워해서 사고가 난 것 같다. 우리 저 사람 살려달라고 기도를 하자’고 말했는데 아내가 싫어했어요. 그런데 평생 죄책감에 못 견딜 것 같았어요. 비오는 밤이었는데 영동 방향을 향해 서서 기도했어요. 그때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사실 용서한 게 아니더라구요. 나중에야 진짜 용서했어요. 그도 시대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마음으로 용서한 날, 나를 위로하고자 혼자 집에서 술을 많이 마신 기억이 나요.”
<인간시장>이 나온 지 한 달 만에 10만부가 나갔을 때 작가도 놀랐겠습니다. 상상은 안 되지만, 좋기도 하고 두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대중의 사랑과 더불어 협박도 많이 받았다고 들었어요.
“출판사에서 최신형 포니2를 사줬어요(웃음). 상상치 못한 사랑을 받은 거여서 놀라고, 고맙고, 기쁘고, 엄청 부담도 되었죠. 세상을 향한 분노와 독설이 쏟아지니, 협박을 많이 받았어요. 배후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살해 협박은 괜찮았는데, 아이들을 유괴하겠다는 협박을 받았을 땐 못 견디겠더라고요. 초등학생 아들도 협박전화를 직접 받았어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피신하기도 했죠. 그럴수록 수위를 높였습니다.”
차라리 김홍신을 구속시켰다면 더 화제가 되었을 텐데요(웃음). <인간시장>의 인기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었다지요.
“그 당시 가짜 김홍신이 여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기도 하고, 자신이 실제 장총찬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표지만 인간시장인 포르노 소설이 밀거래되기도 하고 그랬죠. 가짜 김홍신에게 사기당한 여성이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나를 만나기도 했어요. 만나고도 믿지를 못해서 안타깝기도 했어요. 가짜 장총찬과는 만나서 술도 마셨어요. 내 얘기를 어떻게 알고 이렇게 똑같이 썼냐고 큰소리를 치더군요(웃음). 이태원에서 만나서 제가 술을 사줬어요.”
‘<인간시장>은 문학이 아니라 무협지’라는 평가도 받으셨는데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가들이 흔히 겪는 일이지만, 작가에겐 상처가 되었을 것 같아요.
“나도 문학하는 친구들과 최인호 작가의 <별들의 고향>이 인기 있을 때 욕 많이 했었어요(웃음). 나중에 최인호 선생님께 고백하고 사과했더니 오히려 나를 안아주셨어요.”
<인간시장>을 다시 읽는 불행한 시대, 세상은 더 교묘하게 비뚤어지고 잔혹해졌다고 하셨는데요.
“옛날엔 들통이 났지만, 이젠 들통나지 않게 정치인들이 나쁜 짓을 하잖아요. 성완종 회장 사건을 보세요. 국민은 다 아는데, 법조계는 숨기려 합니다. 얼마나 교묘해요? 성 회장이 폭로하지 않았다면 더 교묘하게 은폐되었겠죠. 안 들키게 나쁜 짓 하는 기술만 더 발달했어요. 총리 된다는 사람들 보세요. 고위직에서 물러난 뒤 1년 몇 개월 지났는데 몇십억씩 재산이 불어납니다. 그에게 돈을 준 사람은 이익을 보았겠지만, 그 뒤엔 손해본 사람이 반드시 있죠. 그들은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길만 가고 정치 안 하시길 바란 독자들이 많았는데요. 어쨌든 정치를 시작하셨고, 그때부터 책은 급속히 안 팔렸어요(웃음). 글 쓸 때도 취재를 철저히 하는 성실한 작가로 평가받으시는데요, 15~16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헌정사상 유례 없는 ‘8년 연속 의정평가 1등 국회의원’이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찾아보니 의정자료집 제목이 <302호 오늘도 밤 새나요?>도 있던데요.
“의원직에 있을 때 책이 전보다 안 팔리기 시작해서 ‘국민이 놀라울 만큼 현명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국회에 있을 땐 미련하게 일했어요. 저와 보좌관들이 추석 명절에 한 번도 고향엘 못 갔어요. 추석 지나고 국정감사가 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밥을 가져가서 먹으며 준비했죠. 나는 글쟁이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꿈이기 때문에, 문학하는 사람은 솔직해야 하고, 내 역할 제대로 하고, 정직·공정·청렴해야 하며, 남의 돈 10원이라도 받아먹으면 고향으로 못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작가로는 안 봐주더라고요(웃음). 나는 ‘빈 라덴’, ‘여의도의 장총찬’이라는 별명까지 얻어가며 정직하게 일했습니다. 302호 의원실이 ‘보좌관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8년 연속 의정평가 1등 국회의원’이면, 8년 동안 의원들에게 미움 덩어리였을 텐데요.
“당의 왕따여서 많은 일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어요. 당론이라 하더라도 옳지 못하면 절대로 수긍하지 않았어요. 의원총회에선 ‘김홍신 출당시키라’는 얘기가 자주 나왔죠. 당론이 옳지 못하면 야당 편을 들었으니까요. 출근저지를 당한 적도 있고요. 기초생활보장법 만들어서 3조~4조원씩 갖다 쓴다고 미움 많이 받았죠. 국회에 들어가 보니 이해할 수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떻게 수긍합니까. 나는 글 쓰는 사람인데 어떻게 거짓말을 합니까. 제가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 돕는 ‘스킨 클리닉’에서 2년간 일한 적이 있어요. 그들이 먹는 독한 약을 6개월 같이 먹어 가면서요. 소록도의 한센병 노인들 기저귀 값이 1년에 5000만원 정도 들어요. 그걸 지원해주자고 주장했죠. 국회의원 바둑 친목회 예산 3000만원 빼고, 소록도에 5000만원 예산을 주자고 했는데, 국회 통과하는 날 보니 바둑 친목회에 3000만원이 고스란히 다 간 거예요. 소리 지르고 난리쳤더니, 나중에 추가 예산편성으로 해결됐어요. 의·약분업 앞장섰다고 온갖 협박을 다 받았었고요.
또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모 대학 의대에서 미국 다국적 제약사에서 백신 실험을 의뢰받으면 우리나라 고아원 아이들에게 가서 실험을 한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왜 한국에 와서 하느냐면, 우리 의사들 실력이 우수하고, 통계 분석이 완벽한 데다가, 모여 사는 고아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면 논문 정확도가 가장 높답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실험대상이 되다니! 분노해서 내가 나서서 법을 바꿨어요. 친권자 허락 하에서만 아동에게 실험할 수 있도록 말이죠. 오랜 시간 우리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인체 실험국가였습니다.
2003년엔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에 23번 정도 협박했어요. 약값 올리라고. 내가 그걸 공개하고 약값을 못 올리게 했어요. 내게 제보해 오는 공직자가 많았어요. 철저히 제보자 지켜주고, 제보가 들어오면 반드시 법률 개정하려고 나서서 싸웠습니다. 7000억 정도가 펑펑 사용되는 특별교부금도 사용처를 밝히라고 압박을 넣었던 게 접니다. 당의 왕따여서 소신 있게 할 수 있었어요. 힘들었지만 후회 없는 시간이었어요.”
<인간시장> 후속편을 쓰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정 출간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최근에 펴낸 <단 한 번의 사랑>도 인기가 많습니다. 8년간의 정치생활을 접은 후 대하소설 <대발해>를 출간하면서 작가 김홍신으로 돌아와서 많은 사람들이 반겼었는데, 이후 7년 동안 작품을 못 쓰셨어요.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무렵에 갑자기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들고 나타나셨어요.
“누구나 사랑을 해봤지만, 왜 그때 더 미쳐서 사랑하지 못했나 아쉬운 마음이 있지요. 영혼이 불타고 육신이 말라비틀어지도록 진저리를 치면서 사랑할 걸… 지금이라도 세상에 없는 미친 듯한 사랑을 해보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있어요. 그걸 말해보고 싶었어요. 정신적 사랑을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괴로움을 버리고, 비로소 자유로운 삶을 찾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의 원론을 건드리고 싶었던 거죠.”
<단 한 번의 사랑>에서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은 사람이 죽어도 누군가 기억하고 있는 한 사사(sasa)의 시간에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으면 죽은 이는 그때서야 비로소 진짜 죽은 것으로 인정하는 자마니(zamani)의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녀는 죽어도 시진의 ‘사사’로 존재할 것만 같았다’는 문장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저도 그 구절이 좋아요. 아내 생각이 많이 났어요.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던 아내가 떠난 뒤에, 3년 동안 <대발해>를 쓰면서 문 밖에 나가질 않았죠. 주변에서 ‘너 그러다 죽는다’고 걱정했죠. 저는 글 쓰다가 죽는다는 마음으로 글만 썼어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탈출구로 글을 썼죠. 그리고 제대로 작품 쓰고 글쟁이로 고향에 돌아가려면 죽도록 쓸 수밖에 없었고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엔 아내 전화기에 전화를 걸기도 했어요.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오니….’ 그 멘트를 들을 때의 심정을 시로 써서 <단 한 번의 사랑> 속에 넣었죠.”
소설 속에서처럼 다시 사랑이 찾아온다면, 재혼하셔야지요. 11년이 지났어요.
“이름 알려진 사람은 그게 어려워요. 그리고 내 배우자는 더 힘들 거예요. 저는 정치까지 했으니…(웃음) 그리고 이제 우리는 늙어갑니다. 내가 아프면 아내 될 사람은 수발을 들어야 해요. 나는 아내 병수발을 오래 해봐서 알아요. 젊어서 만나 평생 같이 살면 정과 의리가 있으니 병수발을 할 수 있죠. 이제 만나서 내가 아프면, 상대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에요. 나는 글로서 얼마든지 사랑을 할 수 있고 쓸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단 한 번의 사랑>은 사랑뿐만 아니라, 친일파 문제도 깊게 파고드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를 심사했었다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진짜 쓰고 싶었던 사랑이야기, 친일파 청산문제를 이 책에 다 녹여냈어요. 제가 국회 있을 때 가짜 독립유공자 잡아내고 현충원에서 묘 이장까지 시키고 했어요. 그걸 소설로 꼭 쓰고 싶었어요. 읽으면서 뜨끔할 사람 많을 겁니다.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를 심사해 왔어요. 아직도 가짜 독립유공자는 많아요. 국회 내에도 친일파 후손들은 아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죠. 친일파 청산은 아직도 까마득해요. 뿐만 아니라, 국기를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통일 이전에 우리 동서화합부터 해야 합니다. 호남 표로 당선된 사람들도 호남 인사를 등용하지 않았어요. 그것부터 정치는 반성해야 해요. 전라도 사람들의 한은 쌓일 수밖에 없어요. 동서 간의 화합부터 해야 그 다음 통일이 가능합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으세요.
“사학비리를 다루고 싶어요. 배고픈 사람 밥 뺏고, 아픈 사람 약 뺏고, 배우고 싶은 자 학비 뺏는 게 가장 큰 죄악입니다. 밥 먹이고 약 먹이고 가르쳐야죠. 법륜 스님과 내 의견이 일치해서 같이 활동하는 뿌리가 이거예요. 그리고… 절박한 사랑 말고 뜨겁고 예쁜 사랑이야기도 쓰고 싶어요. 그렇게 외로움을 견디며 글로 사랑을 완성할게요. 독자들에게 받은 과한 사랑을 갚으려면 죽는 날까지 쉬지 않고 글을 써야 합니다.”
깊은 밤이 되어서야 선생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문앞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30년 넘게 살고 있는 집앞에 닿자, 선생은 집에 깃든 아내와의 추억을 많이 꺼내놓았다. 영원히 김홍신 작가의 ‘사사’의 시간에 살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왜 다들 병들어 죽어야 하는 거지? 왜 오래 살 수 없는 거야?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하늘을 분노하게 한 걸까. 내가 죄를 지었으면 나한테만 벌을 내리던가.’ 소설의 한 구절이 그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젖어 왔다.
멀어지도록 손을 흔들고 서 있는 선생을 백미러로 보며, 마음의 인사를 건넸다. 뜨겁고 예쁜 사랑이야기도 쓰시고, 글로 외로움도 달래세요. 그러나 언제든 또 다시 사랑이 오면, 막지 말고 또다시 ‘단 한 번의 사랑’에 빠지세요.
<박상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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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숙취’ 해소 될까?
“민심은 옳다…나부터 반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