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단결툰>-세상을 알아가면서 세상과 통하는 방법

<단결툰>은 ‘사람’을 더욱 더 중심으로 놓으면서도 비일상처럼 여겨지는 ‘투쟁’을 노동자의 일상으로 되돌린다. 게다가 출판만화가 아니라 웹에서 볼 수 있는 만화라는 점에서 ‘공유’라는 방식으로 더 쉽게 퍼져 나갈 수 있다.

“지금 네가 흘린 눈물만큼 한국에 살다 가게 될 거다.”

방글라데시 청년 마문이 처음 한국 땅에 와 고생하던 무렵 모국 어르신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타지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마문은 일을 하며 사귄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족구도 하며 한국 생활에 정을 붙여갔다. 몇 년이 흘러 미등록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퇴직금도 없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을 겪을 때, ‘이주노조’에 찾아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주노조의 전화 한 통에 사장은 퇴직금을 내놓았다. 사례를 하러 이주노조를 찾아갔지만 그저 집회에 한 번 나오라는 권유를 따뜻하게 건넬 뿐이었다. 그날 집회에서 ‘철의 노동자’라는 노래의 가사가 마음에 꽂혔다.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마문의 이주노조 활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반지수 그림, 홍명교·김유미 구성의 만화 <단결툰>. / 웹진 오늘보다

불법체류자, 비정규직 등 노동자 이야기
위에 간략히 정리한 마문의 이야기를 나는 짧은 만화 한 편을 통해 접했다. 한 사람의 삶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알아간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 만화는 내게 하나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되어준 셈이다. 문을 열자 마문의 삶이, 그리고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노동환경과 이주민을 향한 시선이 부족하나마 조금씩 이해되었다. 어지간한 고용주는 이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은 이주노동자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갈’ 거라고만 생각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 왔다. 하지만 사는 이가 사람이라는 것도, 사는 것이 돈을 버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다는 것도 많은 경우 잊혀진다.

그래도 마문에겐 좋은 한국 친구들이 있었다. 그가 강제출국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지켜주려던 노조 친구들, 그리고 “아직 결혼할 만큼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프로포즈했다는 그의 한국인 여자친구. 불법 체류자 신분에서 혼인신고를 통해 합법적 체류자가 되어 이주노조 활동을 이어간 그의 이야기는 그 후로도 10년이 더 이어진다. 그 친구와 올해 12월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는 뭉클한 소식은 덤이다.

월간 웹진 <오늘보다>에서 연재되고 있는 <단결툰>(그림 반지수, 구성 홍명교·김유미)은 이처럼 노동자의 사는 이야기를 편편이 담아내고 있다. 가장 최근 마문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대형마트 노동자와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가 한 사람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그려졌다. ‘두원정공 노동자들의 다시 피어난 꿈’ 편처럼 개별 노조의 이야기를 담은 경우도 있다.

편당 3분가량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단출한 구성이지만, 그려진 이들의 삶의 무게와 깊이만큼 만화도 몹시 옹골차다. 취재와 구성, 연출 모두 공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많은 미덕을 지닌 시리즈이지만 이 미덕들의 총합을 간추려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다양한 정서와 정보를 담아내고 전달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그리하여 한 세계를 알아 나가도록 넌지시 부추기는 만화의 입김이 무척이나 따뜻하다고.

반지수 그림, 홍명교·김유미 구성의 만화 <단결툰>. / 웹진 오늘보다

넌지시 부추기는 따뜻한 입김
르포 만화 혹은 다큐멘터리 만화로 불려온 유사 만화들의 목록을 떠올려 볼 때, <단결툰>의 시도가 잇닿는 작품들이 몇 가지 있다. 여섯 명의 만화가가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내가 살던 용산>과 그에 이은 철거민들의 이야기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무크지로 두 호가 발행되었던 <사람 사는 이야기> 역시 닿아 있다.

특히 <내가 살던 용산>은 언론을 통해 경찰특공대에 진압당한 ‘테러리스트’이며 ‘폭력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 범죄자’로 재현당하던 철거민들을 ‘생활인’으로서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중심으로 다시 재현하여 투쟁 이전의 일상과 투쟁 이후의 비일상을 오롯이 담아내었다. 그렇게 ‘사건’보다 ‘사람’이 다시금 중심이 되고, ‘사건’의 비극성이 부각된다.

하지만 <단결툰>은 ‘사람’을 더욱 더 중심으로 놓으면서도 비일상처럼 여겨지는 ‘투쟁’을 노동자의 일상으로 되돌린다. 게다가 출판만화가 아니라 웹에서 볼 수 있는 만화라는 점에서 <단결툰>은 책을 구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유’라는 방식으로 더 쉽게 퍼져 나갈 수 있다. 독자의 연대행위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SNS의 시대 초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이 널리 퍼지면서 ‘트위터로 세상을 바꾼다’는 미망을 꿈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발화행위의 맹점은 어쩌면 너무나 직접적인 ‘바꾸려는 발언들’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의견을 가진 ‘그들’은 같은 의견을 가진 ‘우리’에게서 너무나 분리되어 각자의 골방에서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만화로 본 세상

이 상황에서 <단결툰>과 같이 ‘삶을 드러내는’ 만화가 연결점이 될 수는 없을까? 현실을 바꾸기에 앞서 현실을 바르게 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만화를 통해 그 현실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결을 함께 바라보려 할 때, 어쩌면 틈새가 생겨날는지도 모른다. 만화라는 문턱이 낮은 형태로 그려진 이 이야기들을 따뜻한 한마디와 함께 ‘공유’하며 세계를,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를 알아갈 때, 세계를 바꾸는 것이 작은 우리들만의 주장이 아니라 큰 우리들의 꿈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런 생각과 함께 <단결툰>을 여러분에게 공유한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