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저녁 같이 드실래요?>-로맨스에 음식이 들어가니 봐줄 만하네!

도희는 8년 동안 사귀던 재혁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 헤어진다. 그 뒤 3달 동안 외식을 한 적이 없다. 금요일 저녁 충동적으로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빈자리가 없어 대기를 하다 먼저 기다리는 남자 해경을 본다.

2015년은 후세에 어떤 시대로 기억될까? 절망의 시대, 우울의 시대, 혼돈의 시대… 아니면 부끄러움의 시대? 아!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가 더 좋을 듯싶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이건 어떨까, 음식의 시대. 2015년은 음식의 시대다. 여러 미디어에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가 쏟아진다. TV에는 아침, 저녁, 심야까지 음식방송이 넘친다. 맛집을 찾는 건 기본이고, 남의 집 냉장고를 가져와 요리를 한다. 찾아가서 먹고, 만들어 먹는다. 절망과 우울, 혼돈과 부끄러움 같은 신경증의 시대라 그런지 모르겠다.

웹툰은 영상보다 먼저 음식과 요리를 발견했다. <역전야매요리>(정다정), <오무라이스 잼잼>, <차이니즈 봉봉>(조경규), <코알랄라!>(Yami), <수상한 그녀의 밥상>(두순)과 같은 요리와 음식을 다룬 일상만화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웹툰 이전에도 음식만화가 있었다. 일본만화는 최고를 찾거나 겨루는 새로운 장르만화로 음식만화를 완성시켰다. 하지만 웹툰은 음식과 요리를 일상의 틀 안에서 발견했다. <맛의 달인>이나 <식객> 같은 음식만화가 픽션이라면, 음식과 요리를 다룬 웹툰은 논픽션 혹은 에세이에 가깝다.

박시인 작가의 만화 <저녁 같이 드실래요?> | 다음 만화속세상

커플 세트메뉴 할인에 이끌린 두 사람
음식만화의 인기는 장르만화로, 음식만화와 일상웹툰으로 음식만화를 넘어 새로운 장르 해석을 가져오기도 한다. 다음에 연재된 박시인의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사람들은 만나면 항상 밥을 같이 먹는다”며 만화를 시작한다. 주인공 도희는 “밖에서 식사를 했다는 건 곧 누군가와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뜻이다.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낯선 이들을 친근하게 만들어주고 이미 친했던 사이는 더 큰 유대감으로 엮어주는 그 30~40분가량의 소소한 식사시간들… 그리고 나는… 그런 소소한 시간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다.

도희는 8년 동안 사귀던 재혁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 헤어진다. 그 뒤 석 달 동안 외식을 한 적이 없다. 금요일 저녁 충동적으로 레스토랑에 들어간다. 빈 자리가 없어 대기를 하다 먼저 기다리는 남자 해경을 본다. 그런데, 직원이 둘을 커플로 오해하고 커플 세트메뉴가 할인 중이고, 샐러드도 서비스로 주고 있다는 안내를 해준다. 도희는 “혹시 괜찮다면… 같이 드실래요?”라고 제안을 한다. 그렇게 도희와 해경은 외식을 함께하는 사이가 된다.

대학 시절 먼저 고백하고 연애를 시작해, 남자 친구의 직장을 쫓아 새로운 도시에 와 취직을 한 도희. 그리고 만나는 모든 여자들이 좋아하고, 무려 15명과 연애를 한 해경. 두 주인공은 가끔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연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된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구조다.

로맨틱 코미디는 코미디와 구분되기 위해 무게중심이 로맨스로 가야 한다. 코미디는 달달한 로맨스의 거부감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길 필요도 없고, 로맨스로 진입을 유도하기만 하면 된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기본에 충실하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설정으로 독자의 관심을 끈다. 많은 여성 독자는 여자 주인공 도희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혹 남성 독자가 이 만화를 본다면 어렵지 않게 해경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여기에 ‘음식’, 구체적으로 ‘외식’이라는 비기를 더한다. 음식은 판타지한 로맨스가 아니라 현실이니까.

[만화로 본 세상]<저녁 같이 드실래요?>-로맨스에 음식이 들어가니 봐줄 만하네!

과거와 현재를 소환하는 음식들
음식을 앞에 놓고 과거를 떠올리면, 작가는 자연스럽게 음식-과거-음식-현재로 화면을 이동시킨다. 몇 화를 연속적으로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음식은 과거를 소환하고, 다시 음식이 현재를 소환한다. 41화 식사 없는 저녁, 43화 해경, 44화, 45화 마지막 식당을 뺀 41화의 소제목은 모두 음식이 대신한다. 음식은 로맨스의 거부감을 완전히 희석시킨다.

도희와 해경은 미묘한 관계를 지속한다. 작가는 이 둘은 연결될 것이라는 단서를 작품 곳곳에 배치한다. 상투적인 기법이지만, 음식이 전면에 나서면서 이미 독자들은 로맨스 안으로 들어온 상태이니 크게 어색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이다. 도희가 전 남자 친구와 바다낚시를 갔을 때, 해경은 낚시를 좋아하는 전 여자 친구와 낚시를 온다. 각각 전혀 다른 시점이었지만, 남자 친구를 기다리던 도희에게 여자 친구가 떠난 해경이 막 사온 갯지렁이를 주고 간다. 이런 작은 단서들을 통해 독자들은 도희와 해경의 로맨스가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로맨틱 코미디는 등장인물의 두근거림과 독자들의 두근거림을 효과적으로 교차시켜야 한다. 뛰어난 이중창처럼 때론 같이, 때론 순차적으로 두근거림이 이어져야 한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두근거림을 이어가기 위한 역할도 ‘음식’이 맡는다.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통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두 주인공을 응원한다. 아니, 이미 내가 그/그녀가 되었다. 등장인물의 두근거림과 독자의 두근거림의 파장이 30화가 되어 일치한다. 해경이 우연히 중학교 때 사귀었던 노을이를 만난다. 노을이 해경에게 자신이 임시로 기거하는 모텔로 가자고 하자 해경이 정색한다. “그리고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독자들은 모두 두 남녀의 사랑을 응원하는 큐피드가 된다. 30화의 베스트 댓글이다. (수정하지 않음) “그라취!!!!!!!!!!!!해경아 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너도 알고 우리도 아는 그 갈색머리 아가씨!!!!” ‘좋아요’가 1만 개를 넘었고, 댓글의 답글이 416개다.

만화로 본 세상

마침내 독자들은 적극적으로 댓글로 둘에게 요청한다. ‘라면 먹어라’, ‘달달한 신혼부부 같다’, ‘결혼해라’ 등등. 웹툰 특유의 댓글 플레이는 완벽하게 현실과 픽션의 공간을 허문다. 그리하여 <저녁 같이 드실래요?>의 로맨스는 독자의 로맨스가 된다. 잘해 보려고 해도 어긋나고, 전혀 예기치 않은 인연으로도 연결되는 게 사랑이다. 말도 안 되는 사랑을 말 되게 바꾸는 것이 로맨스 장르의 힘이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로맨스 코미디풍의 황당 설정을 음식을 통해 가장 현실적으로 끌어낸 매력적인 로맨스 만화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