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아버지의 시가 삶의 깃발이 되었다

동규, 동명, 남규, 문규, 신규 다섯 남매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과 지혜로운 어머니 밑에서 문학가, 화가, 디자이너, 과학자로 성장했다. 시인 남편을 존경했던 아내는 목월 시인이 떠난 후 차근차근 시작 노트를 묶어서 300여권으로 정리해두었다.

“아버지의 시가 내 삶의 깃발이 되었어요. 나에게 인간다운 삶의 이상을 그리게 하고, 가진 것은 없어도 향기를 뿌리는 힘을 주셨어요.”

박목월 시인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목월 시인의 발자국을 따라 이틀간 그와 함께 걸었다. 76세. 백발 노교수의 얼굴에는 맑은 소년의 웃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시를 삶의 깃발로 삼고 살아온 얼굴은 세월의 흔적마저 평안하고 소박했다.

‘산이 날 에워싸고/씨나 뿌리며 살아라한다/밭이나 갈며 살아라한다//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아들 낳고 딸 낳고/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들찔레처럼 살아라한다/쑥대밭처럼 살아라한다//산이 날 에워싸고/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모습/그믐달처럼 살아라한다/그믐달처럼 살아라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박목월 시인의 장남이다. 아버지가 그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 박상미

시인 박목월은 아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찔레꽃처럼 아니 쑥대밭처럼 살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해다오.’

갓 서른을 넘긴 시인의 동생은 폐결핵으로 고향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요절했다. 그가 남긴 일기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들찔레처럼 자리를 가리지 않고 꽃을 피우며, 보는 이 없어도 향기 피우며 뻗어가는 생명력을 지니고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쑥대밭처럼 무성하게 살다가 가을이 와서 줄기조차 시들어도, 바람이 불면 울 줄 아는 삶을 사는 게 꿈이다.’

시인은 요절한 동생을 가슴에 묻을 때, 이 시를 읊으며 울었으리라.

‘관이 내렸다/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주여,/용납 하옵소서/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좌르르 하직했다//그 후로/그를 꿈에서 만났다/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형님!/불렀다/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이제/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중략)’ <하관>

본명은 영종. 그가 좋아했던 수주(樹州) 변영로의 호 ‘수’(樹)자의 목(木)과 시인 김소월의 ‘월’(月)을 따 ‘목월’이라는 필명으로 시를 썼다. 박목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와 학술제, 특별전이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일찍이 ‘북에는 김소월, 남에는 박목월이 있다’고 정지용 선생이 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문학 교과서를 통해서 가장 많이 만나고 암송한 시는 박목월의 것이 아닐까.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나그네>

이 시를 암송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짧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마을의 풍요와 대비되는 나그네의 고독은 우리의 후각과 시각을 자극하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노래처럼 흐르는 짧은 시는 목월 시인을 오래도록 추억하게 만든다.

(왼쪽부터)박목월의 시 ‘가정’과 함께 실린 시인 박목월의 가족사진. 박목월의 시 ‘바람소리’. / 경향자료

지금도 한밤에 자다가 깨면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는 듯한 환상에 빠질 때가 있다는 문장을 수필집에서 읽었어요. 묵직하고 뜨거운 아버지의 사랑을 노래한 시 ‘가정’, ‘밥상 앞에서’는 누구나 자기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짓게 하는데요.
“부모님이 곁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비오는 거리에 비를 그대로 맞고 서 있는 듯한 처량함을 느끼게 되지요. 내 핏줄 속에는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이 여전히 살아 있어요. 아버지의 인자한 마음은 작은 상처 하나도 따뜻하게 달래주고, 찬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던 어머니의 새벽기도는 지금도 제 마음을 뜨겁게 데워 줍니다. 가족은 생명을 함께하는 행복의 공동체죠.”

시 ‘밥상 앞에서’를 읽고, 아버지의 ‘이만큼 벌린 팔’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무슨 짓’으로 돈을 벌까 고민하는 가장의 고뇌가 동시에 담겨 있다는 걸 알고 울어버린 기억이 나요. ‘낼은 아빠 돈 벌어가지고/이만큼 선물을/사갖고 오마/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비가 변한 눈 오는 공간/무슨 짓으로 돈을 벌까/그것은 내일에 걱정할 일/이만큼 벌린 팔에 한 아름/그것은 아버지의 사랑의 하늘…’.
“누구나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시인의 집은 좀 더 가난했지. 초등학교 입학식에 신고 갈 신발이 없었어요. 입학식 전날 밤, 어머니는 시집오던 날 입었던 아끼는 비단치마를 잘라서 빨간 덧버선을 만들고, 아버지는 나를 앞에 앉히고 한지를 잘라서 굵은 실로 꿰맨 노트를 만들어 주셨어요. 먹을 갈아서 박동규, 세 글자를 써주셨는데, 아버지의 눈물이 내 이름자에 떨어져서 글자가 번졌어…. 아버지의 눈물 자국이 선명한 노트를 들고, 빨간 덧버선을 신고 학교에 갔어요. 아이들이 ‘중국 놈~ 비단장수~’ 어찌나 놀리던지(웃음) 수줍음이 많은 나는 더욱 기가 죽어서 밖에 나가 놀지 않고 앉아 있었어요. 노트를 만들어서 들고 온 아이도 나밖에 없었지. 선생님이 ‘너는 왜 밖에 나가 놀지를 않느냐?’ 묻길래 슬그머니 내 발을 보여줬어요. 내 덧버선을 물끄러미 보던 선생님이 ‘아버지 뭐하시냐?’ 물어요. ‘우리 아버지는… 시인입니다.’ 답을 하고는 눈물이 터져버려서 선생님 품에 안겨 울었던 기억이 나요.”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치마를 잘라 만든 덧버선, 아버지가 눈물로 아들 이름을 새긴 수제 노트…. 시인의 아들은 돈이 대신할 수 없는 정성과 사랑 속에서 컸군요.
“아버지는 원고지에 연필로 시를 썼어요. 밤에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와 우리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아버지가 시 쓰기를 기다렸어요. 가장 경건한 시간이었죠. 어머니는 아버지가 쓰다가 버린 원고지를 경대 위에 차곡차곡 쌓아 두셨는데, 우리 오남매가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면 말 없이 손을 잡고 안방으로 가서 그 원고지 더미 위에 어머니와 내 손을 포개어 올려놓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글 쓰는 집안이라 돈이 없구나.’ 돈이 없어서 줄 수 없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글 쓰는 집의 명예로움을 마음에 새기고 가난의 서러움을 잊도록 키우신 어머니의 지혜로움은 아버지의 사랑 못지않게 깊어요.”

어머니 유익순 장로. 선생님께서 쓰신 수필집에도 아버지 목월 시인 못지않게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이 나오는데요, 목월의 시 팔 할은 아내의 내조가 만든 창작물 아닐까요.
“어머니는 시 쓰는 남편에 대한 자긍심이 컸어요. 아버지가 시 쓰는 데 방해될까봐, 칭얼대는 여동생을 업고 집 밖에 나가서 눈보라 속에 네 시간을 서 있던 분이셨어요. 생활비를 훌쩍 넘는 돈을 떼어서 아버지가 책을 사와도 불평하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첫 독자이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대요.”

내조의 여왕을 만든 건 아내를 존중하는 남편의 배려였군요. 다섯 남매를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의 화법은 감동적이었어요. 책으로 엮어도 젊은 엄마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어요.
“평생 잊지 못할 가슴 아픈 기억을 꺼내야겠네요. 아버지 없이 떠난 피난길에서 우리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쌀자루를 제가 잃어버렸어요. 건장한 청년이 제가 진 쌀자루를 대신 져주겠다고 해서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건네주니,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버렸어! 내가 그를 따라가면 어머니가 날 찾을 수 없게 되니까 어머니가 올 때까지 길에 앉아 울었지…. 동생을 업어서 걸음이 느렸던 어머니와 한참 후에 만났죠. 어머니는 내 얘기를 듣고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전쟁 끝나고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 자식을 버리지 않은 엄마가 되게 해줘서 고맙다. 내 아들이 똑똑해서 엄마를 살렸네!’ 하시며 내 머리를 안고 우는 거예요. 어머니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만들었어요. 어머니께 보답하는 아들, 칭찬받는 아들이 되고자 열심히 살았어요.”

한 가정의 지혜로운 어머니이자, 한 마을의 어머니이기도 하셨다구요.
“어머니의 발은 성한 날이 없었어요. 온종일 시장을 돌아다니며 영세상인들을 만나셨죠. 물건도 사주고, 삶이 고단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아랫집 윗집 싸움이 나면 화해시키고…. 마을에서 계를 여러 개 만들어서 관리하셨어요. 계라는 것이 돈 관리가 잘못되면 이웃간의 정도 살림도 다 깨어지는 거잖아요? 가난한 동네에서 계가 잘 운영되면 푼돈 모아 목돈을 만들 수 있으니 유용한 거 아닙니까. 사람들이 우리 어머니는 무조건 믿으니까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넘쳤고, 꼭 밥을 해 먹여 보내셨어요. 힘드니까 그만하시라고 하면, ‘나 아니면 누가 저것들을 거두니?’ 하셨어요. 아버지 장례 때보다 어머니 장례 때 문상객이 더 많아서 다들 놀랐죠. 어머니를 따라다니던 개도 장례식이 끝나니 바로 어머니를 따라 가버렸어요. 모두의 어머니로 살다 가신 분입니다.”

부부가 다 인정 많고 지혜로운 분이셨군요. 집에 든 도둑과 네 시간의 대화를 나누신 건 잊지 못할 일화인데요.
“1950년대, 내가 고 2때 원효로 3가 산꼭대기에 살 때였는데, 그 시절은 가난해서 도둑이 방 유리창을 빼가기도 했어요.(웃음) 여름밤 자정에 내 방에 찾아든 도둑을 잡았는데, 아버지가 신고는커녕 마주 앉아 밤새 얘기를 나누는 거야. 새벽에 통금 사이렌이 울리고서야 도둑을 보내주었는데, 어머니는 장롱에서 돈을 꺼내 와서 도둑의 주머니에 넣어 주었어요.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도둑을 왜 그리 대하셨냐고 여쭈었죠. ‘도둑도 다 사정이 있지.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먹을 게 없다는 거야. 우리 집도 별 거 없지? 하니까 고개를 끄덕여. 도둑질 말고도 좋은 일이 많다고 타일렀다’ 하시더라구. 새벽에 보낸 건 전과 있는 사람을 통금 때 내보내면 순경한테 잡혀가서 곤란을 겪을까봐 새벽까지 숨겨준 게 아니겠어요? 그 후로 우리 집엔 단 한 번도 도둑이 들지 않았어. 목월 시인 집엔 가지 말자고 마을 도둑들이 회의를 한 게 아닐까?(웃음)”

세간에 떠도는 풍문에 대해 여쭙고 싶은데요, 목월 시인이 전쟁 후에 만나 사랑에 빠진 여대생과 제주도에서 사랑을 나눈 시간이 있었고, 제주 살림집을 찾아간 어머니는 목월 시인과 여인이 겨울을 지낼 수 있도록 한복 두 벌과 생활비를 담은 봉투를 말 없이 두고 오셨다는. 그 후에 여인과 목월 시인이 헤어질 때,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 박목월 작시 <이별의 노래>라던데요.
“어머니의 인품을 미화한 풍문입니다. 제가 아는 시인이 소설을 만들어낸 거지요. 어머니께 구체적으로 여쭌 적도 있는데, 그저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시인의 삶에는 신화가 만들어진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제주에 간 적도 없고, 그 정도로 마음 넓은 여자는 결코 아니다.’(웃음)”

문학을 전공하신 건 아버지의 뜻을 받든 것이었나요.
“경제학과에 갈까, 영문학과에 갈까 고민했죠. 그런데 묵묵히 지켜보던 아버지가 ‘한국문학을 공부하면 아버지와 함께 책도 쓸 수가 있고… 나는 시를 쓰지만 너는 대학에서 문학이론을 공부하면 아버지보다 좋은 학자가 될 거다’ 하시는 거예요. 문학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과 신념이 느껴졌죠. 언젠가 아버지가 ‘까만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흰 종이에 글자로 영원히 빛날 별을 새겨 넣는 일이 글 쓰는 일이야’ 말씀하신 게 떠올랐어요. 국문학을 선택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책을 쓰는 건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서울대 교수가 되고 나서 논문집을 한 권 갖다 드렸는데, 며칠 뒤 빨간 펜으로 꼼꼼한 첨삭을 해서 주시는 거예요.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분이라는 걸 느꼈어요.”

<가정>이라는 시에서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온 아버지는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지상의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해 굴욕의 길을 걷고도 스스로를 ‘어설프다’고 느끼는 눈물겨운 존재인 거 같아요. 아버지로서 박동규 교수는 어떤 분이십니까.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들고 살았던 행복을 잊을 수 있을까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털 오바를 사달라는 어린 딸 앞에서 연필을 쥔 손이 파르르 떨리던 모습, 나는 털장갑 하나면 족하다는 거짓말을 한 뒤 속상해서 이불을 쓰고 울던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게 철이 들어서…’ 하시며 같이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밥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고,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고 나서야 식사를 시작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제 제 모습에서 발견합니다. 제가 그 자리에 앉아서 딸과 아들을, 그리고 제 아내를 바라보지요.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저에게 ‘아버지, 고생하셨지요’ 하며 뛰어나오는 내 가족을 보면, 아버지 그리고 그 인사말을 가르친 내 어머니가 떠올라서 책상에 엎드려 울기도 합니다.”

동규, 동명, 남규, 문규, 신규 다섯 남매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과 지혜로운 어머니 밑에서 문학가, 화가, 디자이너, 과학자로 성장했다. 시인 남편을 존경했던 아내는 차근차근 시작 노트를 묶어서 300여권으로 정리해두었다. 목월 시인이 떠난 후, 수없이 도둑이 들어서 시인의 유품을 가져갔지만, 시작 노트는 장남만 찾을 수 있는 곳에 숨겨 두어서 원본 그대로 보존이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창작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한 박동규 교수는 노트 속에서 발견한 미발표 시 80여편을 정리하며 매일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닐 우산을 쓰고/직장을 나선다/날씨를 근심하면서/인사를 하면서/비닐우산 속에/모든 얼굴은 젖어 있다/가난한 생활인의/호젓하게 외로운 심령/물론 그들의 눈에/비닐우산이 보일 리 없다.’ 미발표 연작시 <오월 A>

76세. 노교수는 하루도 쉴 틈 없이 바쁘다. 아버지가 지은 ‘시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쉴 수 있도록 흙길을 포장하고, 정원을 가꾸고, 대청마루를 넓히느라 남은 생은 더 분주할 것이다. 1973년 목월 시인이 창간한 월간 시 전문지 <심상>을 현재까지 발행해오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정보를 찾을 수 없고, 공들여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구독신청을 해야만 종이책으로 만날 수 있는 월간지.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홈페이지조차 없는 <심상>을 만드는 일은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고된 일이다. 하지만, 시만큼은 종이로만 읽혀지길 바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전해들을 때에는 ‘02-3462-0290’이라는 전화번호를 여쭈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전후소설에 관한 평론을 발표하면서 평론가로서 주목을 받았고,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오랜 시간 강단에 섰다.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을 통해 문학과 문화를 쉽게 읽어주는 친숙한 평론가로 활동해 왔으며, 퇴직 후에도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서로가 있기에 살아 있음이 증명되는, 가족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책도 꾸준히 펴내고 있다.

그는 요즘 목월 선생이 계시는 용인 공원에 목월 공원을 만들고 있다. 시비를 세우고 편안한 의자를 만들어 누구나 찾아와서 시를 읽고 명상에 잠기어 쉬다 갈 수 있는 공원을 만드느라 76세의 아들은 들떠 있었다.

박상미의 공감 스토리텔링

글썽, 눈물이 맺힌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을 바람에 문풍지만 떨려도, 빈 종이에 별을 새겨넣어서 우리를 키워 낸 아버지가 떠올라서 온몸이 떨립니다.” 나와 둘이서 봄길을 걸은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소년 옆에 목월 시인과 그의 어머니가 봄 햇살보다 따뜻하게 웃고 계셨다.

<박상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