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돈만 벌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할 거 같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4천 회 동안 공연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어느 날, 중단해 버린 문화적 사건을 가리킨다. 15년 동안 무려 71만 명이 관람한 이 뮤지컬을 김민기는 돌연 중단해 버렸는데, 그 이유가…

4월 초에 음악가 김민기에 대한 인터뷰를 읽었다.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김민기를 설득해 일간지 한 면 전체를 두 번이나 크게 활용하여 게재된(이 정도면 일간지로서는 대단한 양이다) 인터뷰였다. 읽을 만했고 또 생각할 만한 게 많았다. 읽는 도중에 가슴이 점점 묵직해져서 신문 한 장의 무게가 단단한 벽돌 이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 대목을 간추려 SNS에 올렸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인터뷰를 읽고 난 감상을 서로 퍼나르고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래서 따로 메모하여 기록한 것은 “돈만 벌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할 거 같다”는 말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그의 음악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중적인 인기까지 확보하여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4000회 동안 공연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어느 날, 중단해 버린 문화적 사건을 가리킨다. 15년 동안 무려 71만명이 관람한 이 뮤지컬을 김민기는 돌연 중단해 버렸는데, 그 이유가, 그 인터뷰에 따르면 “돈만 벌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할 거 같아서”이다.

가수 김민기의 2010년 모습. / 서성일 기자

도사인 척하지 않는 전우익 선생
이렇게 결심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요즘 도처에서 들려오는 얘기가 ‘문화가 돈이 된다’는 소리들 아닌가. 21세기 들어 문화와 예술이라는 말에 어김없이 덧붙는 용어가 ‘콘텐츠’이고, 이 말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부가가치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 큰돈을 벌어보자는 식으로 확장되어 급기야 한 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이 이 말로 수렴되고 또한 확산되는 지경에 이르러, 그에 부합되지 않는 작품이나 정책이나 의견은 손쉽게 무시되는 세태가 십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판국이다.

이를 위하여 전통사회 때 형성된 오래된 문화예술에서, 그 본질 대신 소재나 외피만 끌어다가 ‘한류문화 콘텐츠’를 창작, 아니 생산하는 게 도처에서 횡행하여 결국 퓨전이니 뭐니 하는 군더더기만 덧붙은 괴이한 작품들이 헐값으로 떠돌아다니는 풍경이 지배적이다. 한 국가의 문화정책이 그러하니 여러 지자체에서도 자기 마을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만이 급선무가 되고, 곳곳의 대학들에서도 예술 창작 대신 콘텐츠 생산만이 살 길인 듯 거친 소리들이 난무한다. 이런 때에 들려온 김민기의 일갈, 즉 “돈만 벌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할 것 같다”는 토로는 대학과 그 언저리에서 문화예술을 가르치고 또 몇 줄이라도 쓰며 살아가는 내게 새벽의 차가운 물처럼 청신한 소리였다.

이 인터뷰와 더불어 최근 읽은 묵직한 사람 이야기로는 얼마 전 <주간경향>에 게재된 전우익 선생에 관한 글이었다. 투철한 신념과 가치관을 생의 말년에 이르도록 스스로 퇴색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하게 실천한다는 것, 그러한 삶의 외로움과 강렬함을 느꼈는데, 이 감정 또한 여러 사람들과 나눌 만하다 싶어 주요 대목을 인용하여 SNS에 올리고자 하였는데 벌써 몇 사람이 저마다의 소감과 기억을 올리고 있었다.

베토벤이 50살이던 1820년에 그려진 초상화. 독일의 화가 요제프 카를 스티엘레가 그렸다. / 위키백과

‘평온하지 않은 긴장’ 보여주는 베토벤
예리한 모더니스트였다가 장시 ‘한라산’으로 문단과 세상에 충격을 던진 시인 이산하는 2013년에 <녹색평론>에 썼던 글을 간추려 ‘전우익 선생과의 추억’ 한자락을 올려 놓았다. “선생이 타계하기 1년 전 대구 한방병원 중환자실에서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까지 했던 이산하는 투병 중이던 선생이 “병원 창문 밖의 붉은 석양”을 보며 큰소리로 “아~ 불탄다, 불 타!” 하고 감탄하던 순간을 다시 기억했다.

나는 그와 같은 개인적 인연과 가르침을 직접 배울 만한 일은 없었으나 어느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에서 경북 봉화의 산자락에 사시던 전우익 선생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화면 속에서 전우익 선생은 도시 사람들이 상상하고 또 기대하는 모습, 그러니까 만년에 이르러 원만해지고 여유로워진 어떤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셨다.

이파리 달인 물을 그럴싸하게 마시면서 도사인 척, 깨달은 척, 달관한 척하는 낙향거사의 이미지는 한 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자연적 수명으로는 노년이었지만 화면 속의 전우익 선생은 강직한 신념과 자애로운 눈매와 함께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열렬한 욕망을 결코 숨기지 않으셨다.

이 두 개의 글, 그러니까 이 두 명의 강렬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개념을 제시하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 지평을 적극적으로 넓힌 ‘말년의 양식’을 떠올렸다.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 등에서 베토벤의 후기 작품, 그러니까 말년의 작품에 대해 세상의 공전과 자기 삶의 자전이 일그러진 상태를 애써 봉합하기보다는 그 비타협적 상황을 끌어안고 새로운 양식적 실험에 과감히 돌입하는 격렬함의 의미를 추구한다.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대하여>에서 이러한 태도의 다양한 예술적 변용들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이들의 생각을 요즘 우리 시대의 문화 풍경에 흡착시켜 응용해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문화예술계의 중진들이 노년에 이르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과 예술적 욕망에 휩싸여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갑자기 ‘저명인사’, ‘국민작가’, ‘지도층 인사’ 놀이를 슬슬 즐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도권 예술의 최상층에 앉아서 권세를 맛보거나 이런 저런 행사에 나가 거들먹거리는 풍경 말이다. 이런 풍경은 아도르노와 사이드가 말하는 ‘말년의 양식’과 거리가 멀다. 아니,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혐오와 비판의 대상이다.

그런가 하면 오랜 경륜과 지혜로 화해와 평온을 추구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서푼어치의 값싼 권유, 즉 자칫하면 자기계발이나 기업 성공학 강의 수준으로 전락하기 쉽다. 한국문학의 당대 최고 작가들이 갑자기 청년 멘토 식의 작품을 내놓는 풍경이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조화와 해결의 징표가 아니라 비타협, 풀리지 않는 모순”에 집중하여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성숙함이 느껴지는 평온함”보다는 그러한 것으로부터 “벗어난 파국”을 그려내면서 “관객을 전례 없이 당혹스럽고 불안하게” 만드는 “평온하지 않은 긴장”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말년의 양식이다.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이 경지에 최고 수준으로 부합하는 예술가가 베토벤이다.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 특히 후기 현악사중주집과 후기 피아노 소나타 30번, 31번, 32번은 “기존의 사회 질서와 교감하기를 과감히 포기하고, 모순적이고 소외된 관계를 새롭게 맺은” 작품들이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원로 작가’니 ‘국민작가’니 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사랑스럽게 굴거나 환심을 사려는 생각” 따위는 한 줌도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이 쌓아올린 예술적 성취를 사회적 권위로 교환하기 위해서 사회적 명망의 시장에 나가 어슬렁거리는 시늉이란 눈곱만큼도 없다.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위험하고 극단적인 세계로 한 걸음 더 나가 버린다. 이런 ‘위험한 태도’가 지금 우리 시대에는 더없이 귀하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